이번주 배용진 기자가 쓴 김일성 관련 커버스토리를 읽다 보니 1980년대 서울대의 한 강의실이 떠올랐습니다. 1989년 3월로 기억합니다. 당시 봄학기에 선보인 서대숙 하와이주립대 교수의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강의는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대학 강단에서 금기시됐던 ‘김일성’에 대한 강의가, 그것도 김일성 연구자로 이름난 해외 학자에 의해 처음 선보인다는 사실에 다들 흥분했습니다. 대학 강단에 등장한 김일성 강의가 시대의 변화상을 보여준다는 기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역시 복학생 신분으로 잽싸게 이 강좌를 신청해 수업 첫날부터 강의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첫 ‘김일성 수업’이 진행되던 이날 대형 강의실은 수강생들로 넘쳐났고 긴장감으로 터질 듯했습니다. ‘가짜 김일성’론에 식상했던 학생들 모두가 뭔가 새로운 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미 대학가를 점령했던 주사파 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던 항일투쟁 영웅담이 권위 있는 학자의 입을 통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가짜 김일성’론을 여전히 믿고 있던 일군의 학생들은 서 교수의 이설(異說)을 맞받아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날 ‘김일성 수업’은 김빠진 사이다 같은 것이었습니다. 강의실에 팽배하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사그라들 만큼 강의는 무미건조했습니다. 서 교수는 도발적인 질문들을 애써 피해가며 ‘회색 지대’를 끊임없이 배회했습니다. 김일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별로 관심이 없다는 투로 사료와 기록들을 들이댔습니다.

이후 서 교수가 서울대에서 김일성 수업을 하면서 겪은 얘기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꽤 알려졌습니다. 수업 중 그가 “김일성은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했던 운동가”라고 하면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른 반면 “그런 김일성이 소를 훔쳐다 잡아먹기도 했다”고 하면 학생들이 “어떻게 항일 운동가가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라며 반발했다는 것입니다. 주사파 광풍이 불던 당시 대학가 분위기를 보여주는 후일담입니다.

제가 1980년대 ‘지루한’ 김일성 강의를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느꼈던 것은 학문과 소설은 다른 영역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문은 소설처럼 상상의 영역이 아닙니다. 엄격하게 검증된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학문의 영역이라고 배웠습니다. 학문의 영역으로 끌려내려온 ‘김일성’이야말로 그런 엄격한 검증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주 주간조선 커버스토리가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간조선이 커버스토리를 통해 공개한 ‘김일성 이력서’는 소련군 앞에 섰던 29살의 김일성이 작성한 객관적인 자료로 보입니다. 이 자료를 검토한 6명의 학자 모두가 “김일성 논란을 바로잡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 자료를 주간조선에 건네준 러시아 학자 표도르 째르치즈스키씨에게 이 지면을 빌려 고마움을 전합니다.

학문적 엄격함과 객관성이 어느 때보다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이 옳다고 악다구니를 쓰면 진실은 더 숨어버립니다. 판사도 정치 격문 같은 판결문을 쓰는 시대입니다. 학자는 학자다운 글을 쓰고, 판사는 판사다운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런 엄격함이 실종돼 버린 시대가 안타깝습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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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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