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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2호]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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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법치주의가 울고 있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난 3월 26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구상에 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는 나라는 많으나, 제대로 된 공화국은 그리 많지 않다. 진정한 공화국과 사이비 공화국을 가르는 잣대는 무엇인가? 법의 지배, 법치주의가 온전히 실현되고 있는가 여부다. 인치(人治), 즉 권력자의 자의적(恣意的) 지배가 횡행하는 나라는 설령 공화국 간판을 달고 있다 해도 사이비 공화국일 뿐이다. 북한 당국자들은 말끝마다 ‘우리 공화국’을 반복하는데, 헌법보다 수령이 우위에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공화국을 참칭(僭稱)하고 있을 뿐이다.
   
   법치를 이해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한비자로 대표되는 동양의 법가(法家)사상과 법치주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儒家)의 덕치(德治)와 달리 법가는 법과 술(術·군주의 신하 조종법)을 국가 통치의 기본 방편으로 삼는다. 그런데 방편만 다를 뿐, 법가와 유가 공히 왕의 나라에서 신민(臣民)을 다스리는 제왕학(帝王學)이다. 반면, 근대 법치주의는 통치자의 권력행사를 법의 틀 안으로 제약함으로써 자의적 지배를 방지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비자가 민(民)에 대한 통치수단으로 법을 강조했다면, 법치주의는 권력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법을 논하고 있다.
   
   선진국 중에 기획사정과 하명(下命)수사라는 말이 존재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말고 없다. 그릇된 일을 바로잡는 사정(司正)은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곧 법치의 안정성과 일관성 그리고 공정성을 의미한다. 정치 상황에 따라 수사의 표적이 옮겨 다닌다면 제대로 된 법치국가라 할 수 없다. 불행히도 한국은 그래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최근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의 귀국 일성은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의 철저한 수사였다.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검찰청법 제4조에 규정되어 있으나, 대통령의 이 같은 특별지시가 떨어지면 검찰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흔히들 검찰을 대통령의 충견이라 부른다. 대통령이 미워하는 사람들을 손보는 데 물불 안 가린다는 얘기다. 1997년, 입이 무겁기로 소문났던 문종수 청와대 민정수석은 “청와대가 봐줄 힘은 없지만, 조질 힘은 있다”고 했다. 세 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그 같은 폐습은 여전하다. 기획사정은 현대판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이다. 한비자는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를 역설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기원전 3세기의 법가사상만도 못하다.
   
   검찰이 행정부에 속한 준(準)사법기관이라면, 법원은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를 대표한다. 검찰에 비해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검찰청법 제7조) 반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검사의 정치적 중립은 법률에 규정되어 있으나, 판사의 독립성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 혐의를 받고 있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 3월 26일 기각되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한 불구속 재판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한 지켜져야 마땅하다. 따라서 해당 재판부의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각 사유 전문을 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졸문(拙文) 중의 졸문이다.
   
   먼저 일괄사직서 청구 및 표적감사 관련 혐의(찍어내기)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하여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되었던 사정에 비추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하였다. 2007년 1월에 제정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은 공공기관의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제1조), 이를 위해 정부는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다(제3조). 이 법의 별명은 ‘낙하산 방지법’이다. 그런데 담당 판사는 법의 취지와는 달리, 행위 시점의 상황적 특수성을 고려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설상가상인 것은 그 다음이다. 임원추천위원회 관련 혐의(꽂아넣기)는, 관련 법령의 해당 규정과는 달리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장시간 있었던 관계로 피의자의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인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담당 판사는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심판한다는 헌법정신과 달리, 관련 법령을 무력화하고 있다. 찍어내기에 있어서는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꽂아넣기에 있어서는 관행을 이유로 면죄부를 주고 있다. 법리 해석 및 적용에 골몰해야 할 판사가 정무적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가관인 것은 찍어내기의 면죄부 발급 사유와 꽂아넣기의 그것이 모순된다는 점이다. 앞에서는 국정농단과 탄핵이라는 상황의 특수성을 이유로 들더니, 뒤에서는 오랜 관행을 이유로 들고 있다. 앞의 논리가 정당하다면, 국정농단에 대한 사회적 분노와 이로 인한 정치적 각성이 극에 달해 있던 시점에 나쁜 관행에 입각해 낙하산 인사를 한 것(이게 바로 적폐다)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한마디로 기각 사유는 법률 무시 및 논리 모순의 범벅이다. 왜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문장이 나왔을까? 판사의 법리 전개 능력이 정치적 판단을 가려주고 녹여줄 만큼 탄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판사는 “재판은 정치다”라고 외쳤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만,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솔직한 언사였다. 재판을 정치투쟁의 도구로 삼고 싶은 것이다. 이런 사고의 소유자들에게 법치는 정치와 다르다고 아무리 강조해봤자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정치적 저의를 서투른 법리로 포장했을 때, 날카롭게 비판하고 준엄하게 꾸짖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행사되는 검찰권은 정치와 사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하여 법의 지배라는 민주공화국의 핵심 메커니즘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법치와 정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판사들의 일탈은 삼권분립을 위태롭게 만든다. 신뢰와 공정이 핵심인 ‘사회적 자본’ 평가에서 한국이 OECD 하위권에 머무는 것은 법치주의의 불안정성 및 불확실성에 기인한 바가 크다. 현 집권세력은 말끝마다 촛불혁명을 강조하지만, 그들의 혁명 프로그램에 법치주의 강화는 없다. 거꾸로 적폐청산의 소용돌이 속에서 법치주의는 울고 있다. 전진은커녕 후퇴하고 있다. 같은 법의 적용대상인데도 경쟁자를 때려잡을 때는 적폐이고 자신들을 보호할 때는 관행이 된다. 국민 분열은 심화되고 사회적 신뢰는 저하되고 있다. 당하는 쪽은 ‘정권 잡기만 해봐’라며 이를 갈고 있으며, 집권세력은 ‘어떻게 잡은 정권인데’라며 적진을 초토화시킬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적대와 증오의 음습한 기운이 온 사회를 휘감아 돈다. 이건 진정한 공화국의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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