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셋째 주는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조사한 ‘뮬러 특검 보고서’가 화제의 중심이었다. 뮬러 특검은 2017년 5월 출범했다. 거의 2년 동안 500여명의 증언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선 캠프와 러시아와의 공모 부분에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2년 동안 그렇게 요란하게 조사하더니 도대체 뭘 했느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한편에선 그 정도면 트럼프 대통령을 괴롭힐 만큼 괴롭힌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미국 언론들은 뮬러 보고서가 나온 즉시 그 내용을 분석·요약하고 이해하기 쉬운 그래픽으로 만들어 선보였다. 미국 정치에서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언론도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 원본을 웹사이트에 올리는 것은 물론 주제어로 쉽게 원하는 부분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해놓기도 했다. 그 결과물들을 보면서 미국의 신문사 편집국이나 방송사 보도국이 거의 뒤집어질 정도로 한바탕 난리를 겪었겠구나 싶었다. 저런 방대한 문건 하나가 툭 떨어지면 그걸 어떻게 ‘요리해내느냐’가 그 언론사의 실력과 창의성을 단번에 드러내기 때문에 아마 죽을힘을 다해 아이디어를 짜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약 보고서가 공개됐을 때 ‘뮬러 특검 조사 결과 내통 의혹은 없었음’이 밝혀졌다고 환호했던 것과 달리 미 언론과 민주당에선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고 주장해 후폭풍이 일고 있다. 하지만 야당 입장에서 ‘뮬러 보고서를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한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탄핵 주장 여부가 그중 하나이다. 당분간 미국 정치는 ‘뮬러 정국’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뮬러 보고서를 보면 트럼프는 참모들이 메모하는 걸 싫어했다고 한다. 지난해 초 트럼프가 뮬러 특검을 해임하려 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무렵, 트럼프는 대책회의 도중 도널드 맥겐 당시 백악관 법률고문이 메모를 하는 걸 보고 눈치를 줬다고 한다. 자신의 언행이 기록되는 걸 꺼렸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백악관 참모들은 뮬러 특검에 자신들의 메모를 제출했고, 결국 이 메모가 수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제프 세션스 전 법무장관이나 롭 포터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 등의 메모도 특검에 제출됐다고 한다.

앨라배마주 상원의원이었던 세션스 전 장관은 트럼프에게 미국 남부 주들의 표를 끌어다주는 역할을 했다. 트럼프가 당선 직후 앨라배마주를 방문한 일이 있는데 세션스 의원과 동지애가 끓어넘치는 덕담을 주고받던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다. 트럼프는 그런 공을 인정해 세션스를 법무장관에 기용했다. 하지만 세션스는 자신이 트럼프 대선캠프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법무장관임에도 수사지휘권을 포기했다. 트럼프는 자신을 도와줘야 할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법무장관이 스스로 손을 묶어버린 상황에 분노했고 결국은 그를 ‘잘라’ 버렸다.

뮬러 보고서를 읽다 보면 이 조사의 자료 중 일부는 트럼프 참모들의 메모이기도 하지만 트럼프 자신이 무수히 써올린 트위터 메시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논란이 있을 때마다 트럼프가 꼭 한마디씩 해서 정리를 해주곤 했었다. 특검 입장에선 고마운 자료였을 것이다. 트럼프는 잘못된 일이 있으면 참모든 누구든 늘 남 탓을 하지만, 이 보고서를 읽다 보면 ‘트럼프 최대의 적은 트럼프 자신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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