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꽤 오랫동안 해외여행을 하다가 돌아온 지인 두 분께서 귀국 소식을 문자로 알려왔습니다. 그런데 귀국 소감이 빼닮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여전히 우울한 뉴스밖에 보이질 않는다’는 한탄이 빠지지 않더군요. 우울한 뉴스가 잔뜩 살포된 우물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사실 우물 안이 얼마나 혼탁한지 잘 모르기 십상입니다. 우물 안을 잠시라도 벗어났다 돌아와 봐야 자신이 몸담은 곳의 실상을 깨닫게 되나 봅니다.

두 분의 귀국 문자를 접한 후 작심하고 ‘밝은 뉴스’를 찾아보려 했지만 역시 잘 보이질 않더군요. 요즘 뉴스면이 온통 어두운 얘기로 도배돼 있다시피 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반면 우울하고 불쾌한 뉴스는 차고 넘쳤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젊은 연예인들의 마약과 성폭행 뉴스부터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경제성장률 추락 소식에 정신질환자의 살인극, 거기다가 막장극으로 치닫고 있는 여의도 정쟁(政爭)까지 우울한 뉴스들이 백화점식으로 망라돼 있더군요. 국민들 속을 긁는 데 일가견이 있는 국회는 이 와중에 한 건 했습니다.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설치를 둘러싼 패스트트랙 충돌에 국회의장 성추행 논란까지 버무려서 제대로 된 막장극을 보여줬습니다. 먹고살기 고달픈 국민들이 화병이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것이 신기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이번주 커버스토리는 애써 밝은 뉴스를 찾아서 실었습니다. 보셨겠지만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축구 스타 손흥민 선수 얘기입니다. 취업난 등으로 의기소침한 요즘 젊은이들의 눈이 그래도 반짝이는 순간은 손흥민 선수 소식을 접할 때밖에 없다는 말을 누군가 하더군요. 저는 축구에는 큰 관심이 없어 손흥민 선수가 뛰는 프리미어리그를 밤새워 지켜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프리미어리그 광팬인 막내 곽승한 기자에게 왜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잠도 안 자며 보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원래 박지성 때부터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밤새서 봤는데 손흥민은 골을 넣고 팀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장면을 많이 만들기 때문에 더 볼 맛이 납니다. 박지성이 ‘뛰어난 아시안’ 느낌이었다면 손흥민은 말 그대로 팀 내 ‘에이스’이자 ‘영웅’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손흥민의 세계’는 어둠을 떨쳐버리는 빛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우울하고 짜증나더라도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뛰는 또래를 보면서 우리 젊은이들이 ‘미래’와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면 손흥민 선수는 역할을 다하는 셈입니다. 손 선수도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밤새서 나를 지켜보는 한국 팬들에게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하더군요. 우리 젊은이들에게 ‘미래’와 ‘희망’이라는 단어가 살아 있음을 비춰주는 등대 같은 존재가 손흥민 선수일지 모른다는 의미에서 이번 호 표지 제목으로 ‘런던의 손샤인(SONshine)’을 썼습니다.

런던에서 커버스토리 글을 보내온 권석하씨에 따르면, 영국인들이 손흥민 선수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축구를 잘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악동 루니도 아니고, 기술자 베컴도 아닌 새로운 유형의 스타에 열광한다는 것인데, 무엇보다 손 선수의 인간 됨됨이에 매료됐다고 합니다. 5월 손 선수가 출장하는 챔피언스리그 4강전 때문에 또 밤을 새는 젊은이들이 많을 듯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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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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