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날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오늘이 벌써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입니다. 노무현 재단이 올해 고인에 대한 추모 행사의 슬로건을 ‘새로운 노무현’으로 잡았다는데, 이를 두고 사실상 ‘탈상(脫喪)’ 선언이라는 해석도 나오는군요.

매년 이맘때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각자의 방식으로 불러내는 회고와 추억이 넘쳐납니다. 올해는 10주기라서 더욱 뜨거운 분위기입니다. 특히 여권 정치인들은 고인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고 있습니다. 조국 민정수석도 페이스북에 ‘기득권 동맹과 온몸으로 부딪치며 실용주의적 진보의 길을 열어나간 열혈남아’라는 글을 남겼더군요. 결국 고인을 추모하는 여권의 시선은 내년 총선을 향해 있다고 봅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 불평등과 차별을 걷어내고 진정한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면서 “사람이 중심이고 사람이 먼저인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총선 승리의 길로 매진할 것을 거듭 약속한다”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보 진영에 얼마나 깊게 뿌리박혀 있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추모 열기입니다.

저 역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몇 가지 추억이 있지만 2017년 1월 주간조선에 썼던 ‘노무현의 마지막 인터뷰’ 기사를 마감날 다시 들춰봤습니다. 이 기사는 박정희 시대 연구자인 호주국립대 김형아 교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5개월 전 봉하마을을 찾아가서 3시간 동안 나눴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기사입니다. 김 교수가 노 전 대통령을 인터뷰했던 2008년 12월은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를 파헤치던 검찰 수사의 칼이 노 전 대통령을 겨누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김 교수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꾸밈이 없었고 솔직했으며 자신의 절망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A4 용지 37쪽에 이르는 방대한 인터뷰 기록에서 주목한 대목들은 진보 진영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평가와 시선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는 진보 진영이 자기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목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또 그들은 매우 적대적인 내부 경쟁을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중도실용주의’를 받아들인 것을 진보 진영에 영향을 미친 세 가지 요인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나는 광범위하게 중도실용주의에 동의했다. 목표와 현실 사이의 차이만큼 후퇴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넘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는 가버렸다. 실용주의 선까지 가버린 것이다. 나는 실용주의적인 입장과 현실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나는 권력자가 마주치는 현실의 한계를 받아들였고, 그 이상으로 실용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진보 진영, 특히 지금의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말을 꽤 많이 했습니다. 자신이 평생 추구해온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도 그중 하나입니다. “권력층이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첫 번째 요소다. 그것이 법의 지배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법을 준수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권력층이 법과 법의 원칙을 존중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권력을 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권력이 스스로를 절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는 권력의 자기 절제라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가 민주주의의 (두 번째) 핵심 요소다.”

‘권력의 자기 절제가 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엇보다 와 닿는 노무현 10주기 저녁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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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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