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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의 벗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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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피니언
[2561호] 2019.06.10

北의 벗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필자 김의성(가명·28)씨는 북한 함흥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2014년 학문에 대한 갈증 등을 이유로 탈북했다.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 달간의 고된 여정 끝에 서울에 도착해 현재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고 있다. 김의성씨는 작년 5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에서 북한의 친구에게 편지를 띄웠고, 김씨의 편지는 작년 5월 14일자 주간조선에 ‘北의 벗에게 보내는 한 20대 탈북자의 편지, 미국 땅을 밟고 알았지 3억을 향한 2500만 인민의 증오가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로 소개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후, 김의성씨는 제재를 견디고 있는 북의 벗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 그의 편지에는 이 시대 젊은 탈북자들의 고뇌와 아픔이 여전히 담겨 있다.
   
   
   친구야, 잡지사에서 전화가 왔다는 소식으로 안부 인사를 대신하지. 작년 봄 네게 보냈던 첫 번째 편지의 후속편을 써줄 수 있겠냐고. 이건 분명 좋은 소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잡지사가 글을 요구한다는 건 원고료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며, 원고료-돈이라는 것이 이곳 가난한 학생의 심신 안녕에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하리라는 것쯤은 너도 짐작할 수 있을 테지.
   
   나는 제안을 받고 무척이나 기뻤었다. 그러나 그 기쁨이 너에게 편지를 또 할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아니면 원고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나도 정확히 분간하기 어렵구나. 내 말에 너무 노여워하지 마라. 우리의 우정이 몇 푼 원고료와 비교될 것이 아님을 나는 알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노여움으로 말하면 오히려 내가 더 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네게 첫 편지를 보낸 후, 멍청한 짓인 줄은 알면서도 나는 내내 너의 답장을 기다렸던 것 같아. 그 부질없는 기다림의 한가운데로 이성이 되돌아오는 순간마다 나는 좌절했다. 정작 너는 편지를 받았는지조차도 알 길이 없는데 이곳의 나는 혼자 애꿎은 너를 탓하며 근거 없는 노여움만 서서히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겠지. 이제 나는 이 편지의 글줄을 읽어나갈 너의 숨결 하나하나로 묵은 책에 먼지를 털어내듯 마음속 노여움을 훌훌 날려버릴 상상 때문에 기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쟁여둘 새 답장에 대한 기대와 그것을 갉아먹으며 다시금 애달픔이 꾸역꾸역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상상마저도 좋은 것이다.
   
   
   일장춘몽같이 스러져간 날들
   
   그 사이 일들이 꽤 있었지. 우리의 시선을 같은 곳에 머물게 했고, 우리의 가슴을 같은 박동수로 뛰게 했던 판문점과 평양, 싱가포르와 하노이의 나날들도 일장춘몽같이 스러져가고, 진달래는 한 번 피고 지고, 네 아이는 다섯 살이 됐고(아들이었나 딸이었나), 우리의 20대는 저물어가고…. 참, 나는 지난 가을부터 올봄까지 미국에서 두 학기 간의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 달 전에 귀국했어.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까지 가족에게 보냈던 네 차례의 돈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30%의 수수료를 떼기로 했던 브로커가 부모님에게 갑자기 50%를 떼겠다고 했고, 어머님은 내 아들이 어떻게 모아서 보낸 돈인데 그럴 거면 받지 않겠으니 다시 돌려보내라고 했다는 거야. 어머니도 참 그거라도 그냥 받으시지.
   
   그 얘기를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분노도 느낄 수 없더라. 이게 어떤 개인적인 분노나 슬픔이기보다는 시대의 아픔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을 초연하게 만드는 것 같아. 대신 그동안 조금이나마 돈을 부쳐드렸다는 생각에 안도했던 마음이 죄스러울 뿐이란다. 물어보면 주변에 나처럼 당하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더군. 조만간 풀릴 것 같았던 제재도 계속되고, 올해 북한의 농사 작황도 시원치 않다는데 부모님은 어찌 지내시는지. 작년 이맘때의 냉면을 찾게 하던 화해의 열기는 어느새 싸늘해져 가까운 시일에 뭐가 잘될 것 같은 기미도 없고, 다만 북한의 쌀가격이 안정됐다는 소식을 위안 삼아 다음 소식을 기다릴 뿐이야. 너는 그곳에서 지난 1년간의 변화를 어떻게 지켜봤는지가 궁금하구나.
   
   처음엔 이 편지에 미국 동서부를 횡단했고, 알래스카의 북쪽 땅끝까지 차를 몰아 갔던 내 여행 얘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을 생각이었어. 하지만 오늘 23살의 ‘철학자’를 만나고 내 마음이 바뀌었어. 철학자라면 오금을 못 쓰던 너, 그의 얘기가 내 여행기보다는 네 마음을 더 흔들어놓을 거라 생각되는군.
   
   
   12살의 탈북 철학자
   
   오늘 내가 만났던 친구는 북한 출신이야. 12살에 북한을 떠나서 6개국을 거쳐 13살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남한에 왔어. ‘위대하신 수령님’이 12살에 평양에서 장백 팔도구까지 혼자서 걸어갔었다는 ‘배움의 천리길’이 생각나는군. 이 ‘철학자’에게 있어서 그 머나먼 장정은 ‘배움의 만리길’인 셈이었지. 15살의 그는 중학교 1학년이 되었어. 그의 말투에 철철 흘러나오는 북한 악센트는 친구들에게 “나 북한에서 왔어!”라고 고스란히 어필하기에 충분했고, 학급 친구들은 장난기 많은 그 시절의 아이들이 상상해낼 수 있는 갖은 방법을 다해 그 애를 놀려댔어. 그 친구는 그때를 회상하며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더군.
   
   12살의 아이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상상이 돼? 만약 쉽지 않다면, 내가 도움을 좀 주지. 일단 로댕의 작품을 떠올려봐. 네가 떠올린 크기의 3분의 1로 사이즈를 줄이고 울퉁불퉁한 근육들을 제거해. 눈가에 물기를 추가하고 배경을 어둡고 짙은 회갈색으로 바꿔. 그 얘기를 듣는데 내 가슴 안쪽이 송곳에 쿡쿡 찔리는 느낌이 들더군. 정작 본인은 냉철한 이성을 가진 철학자답게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데 말이지. 그래서 그 친구가 찾아낸 생존 전략이 무엇인지 알아? 그 답은 변신이야. 이곳의 사람들과 완벽하게 같아지는 것이 자신이 이 땅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도라고 판단한 거야. 내 보기에 그 전략은 아주 잘 실행된 것 같았어. 그를 처음 봤을 때, 그가 북한 출신일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을 못 했으니까. 고등학교로 진학할 무렵에 그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고, 결국 고등학교에서는 누구도 그가 북한에서 온 줄을 몰랐다지. 그러다 보니 이전에 연락하며 지내던 북한 출신 친구들과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고, 대신 새로운 친구들 사귀기는 훨씬 수월했대. 하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늘 감추고 사는 괴로움 때문에 마음은 늘 불안했지. 이때가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였대. 게다가 이 시기에 정체성 고민까지 겹쳐 더욱 힘겨웠었다는군. “나는 북한인인가, 남한인인가, 아니면 세계인인가?”
   
   “탈북의 노정에서 깜깜한 이국의 하늘 아래 차가운 이슬을 맞으면서도, 숨 막히는 열대의 철창 속에서 더위와 싸우면서도 앞으로의 희망 때문에 12살 꼬마의 고개는 들려 있고, 눈빛은 항상 반짝였었는데, 19살의 제 눈빛은 흐릿했고, 고개는 항상 떨어져 있었던 것 같아요.” 방황의 시간은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끝났대. 생각해보니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변하는 것이 아니더래. 그리고 스스로도 인정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대.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그 친구는 철학도가 되었고, 자신이 북한 출신임을 스스로 밝히게 되었어. 자신을 부끄럼 없이 당당히 밝힌 이후부터는 뭔가 마음이 훨씬 편하다는 거야.
   
   벌써 박수 보낼 준비는 하지 마. 시련은 그때부터 시작된 거야. 많은 고민과 심사숙고 후에 내린 결심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에서 생활은 쉽지 않았대. 아까도 말했지만, 모르는 사람이 봐서는 그가 북한 출신이라고 생각할 만한 어떠한 단서도 발견하기 어려울 거야. 완벽한 서울 말투부터 시작해서 온화한 외모까지 서울의 일반 사람들과 외적으로는 아무런 차이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가 “나 북한에서 왔어”라고 말하는 순간을 경계로 친구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지더라는 거야.
   
   
   우리를 향한 싸늘한 냉기
   
   그것은 12살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과는 차원이 다른 싸늘한 냉기가 풍기더라는 거야. 그 싸늘한 냉기의 실체가 무엇인 것 같냐고 물어봤어. 한참을 생각하더니, “뭔가 확실한 증거를 잡을 수 없는 은밀한 무시, 그리고 일정한 심리적 반경 안으로 상대가 들어오기를 원하지 않는 듯한 차가운 친절함 같은 게 아닐까요”라며 되묻더군. 그러면서 고등학교 때에는 뭔가 자기가 잘못한 일에 대해 친구들이 당연히 간혹 실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봐주었다면, 대학교의 친구 관계에서 간혹 생기는 실수에 대해서는 마치 그것이 북한 출신의 속성처럼 “걔 북한에서 왔잖아!”라는 말로 설명을 하려는 데 당황했었대.
   
   물론 예상을 못 했던 건 아니지만 그런 일들은 여전히 상처로 다가왔고, 이번에 그의 타개책은 실수를 줄이는 것. 그런데 실수하지 않는 인간이란 로봇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니. 실수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속성이 아닐까. 실수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일 테지. 어느 수업시간에 어떤 교수님이 해주신 “철학을 하려면 혼자 밥 먹는 연습부터 해라”라는 훈시를 위안 삼고 대학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를 수개월. 이 대목은 나의 과거와 너무도 닮아서 손이라도 꼭 잡아주고 싶었지.
   
   확실히 탈북대학생이 북한 출신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그에 따르는 암묵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무모함이 될지도 모르는 그 용기로 해서 왕따 당할 수 있음은 탈북대학생에게는 상식이 되어버렸어.
   
   언젠가 학교에서 교내 탈북대학생 학업역량 강화를 위한 반나절 동안의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원래는 약 15명 정도 규모로 기획됐었는데, 정작 참가한 학생은 5명밖에 안 되었다. 프로그램이 워낙 훌륭한 강사들과 좋은 내용들로 구성돼 있어서 학교 측에서는 이왕이면 일반 학생들도 포함시키자고 제의를 했었지. 그런데 거기에 있는 한 친구가 자기는 지금까지 탈북학생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있어서 일반 학생들에게 탈북학생임이 알려질 경우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는 거였지. 그러면서 자기는 빠지겠다고 했다. 자신의 출신이 알려져 불안정한 관계마저 언제 깨질지 몰라서 항상 마음 졸이는 그 상황이 나로서는 굉장히 안타까웠던 경험이 있다.
   
   
   자신에 대한 존중부터 우선되어야
   
   알고 지낸 지가 꽤 된 한 친구가 있어. 누가 봐도 엄청 예쁘고 똑똑한 친구인데 대학교 새터(새내기 배움터) 때 자신이 북한 출신임을 숨겼었지. 그리고 학교에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어. 처음에는 조금 더 친밀해지면 말해야지 하면서 하루이틀 미루었는데 그만 타이밍을 놓쳐버린 거야. 하루는 어떤 경로를 통해 그 친구에 대해 알게 된 다른 학생이 남자친구에게 말했어.
   
   “너 여자친구가 새터민이라며?!”
   “하하 그래?! 그 친구가 예쁘긴 하지. 근데 새터 미인까지는 아니지. 듣기는 좋네.”
   “새터 미인이 아니라 새터민!”
   
   남자친구는 그때까지도 자신을 숨겼던 여자친구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결국 그들은 헤어지게 된 거야.
   
   종종 이런 경우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일들을 겪게 되는 원인이 결국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 나는 바람직하고 제대로 된 관계의 기초는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확신에 기초한 관계만이 정상적이며 공고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자면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부터 우선되어야 하겠지.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은 이곳에서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것에 대해 숨기거나 창피하게 여긴다면 자신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주장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혹독할지도 모르는 나의 주장이 가까운 친구에게도 자신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그 누군가의 마음의 종양을 제거해주는 메스가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상처에 기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대학교 새터 첫날 북한에서 왔음을 밝혔어. 물론 그로 인한 대가를 빼놓는다면 글의 신뢰성은 떨어질 거야. 거의 한 학기 동안 혼자서 학식을 먹어야 했지. 이 사회에는 분명 우리를 힘들게 하는 편견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어. 하지만 자신을 인정하고 공개하는 순간 사명감이 생긴다. 그것은 매 순간 나를 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살도록 추동해주고 그 과정에서의 자기수양은 덤이겠지.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친구가 슬그머니 학식을 들고 내 곁에 앉았어. 그리고 말했다. “형, 제가 형님 덕분에 이번 학기에 세상에서 가장 나쁜 개 두 마리를 잡아버렸어요. 선입견과 편견이요.”
   
   그 말이 너무도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가 북한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왔지만, 자기의 정체성에 기초한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신만의 틀 속에 갇혀 산다면 오히려 더 좁은 세상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철학자 친구가 어떻게 되었냐고. 그 친구는 힘겨운 시간을 이겨냈어. 먼저 다른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보여줬고, 외면하는 친구들을 탓하지 않는 아량 또한 갖추게 되었지. 그는 3년 만에 수석으로 대학교를 졸업했고, 지금 다음 달 미국으로의 유학을 앞두고 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의 껍데기를 깨고 탄생하는 병아리의 그 형상을 떠올렸다. 12살부터 존재의 의미와 이유에 대해 고민한 아이, 이런 친구가 철학을 하지 않으면 누가 철학자가 될까. 지금 나는 이 철학자의 앞날이 기대되고 축복하는 마음이다. 너도 나와 함께 축복해주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 줄이련다.
   
   이 편지가 끝내는 네가 받지 못하는 나의 독백으로 남는다 할지라도 네게 편지를 쓰는 이 시간을 내가 항상 즐기며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항상 준비!
   
   서울에서 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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