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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2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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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욜로 정권의 곶감 빼먹기는 죄악이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5월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추경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전임 박근혜 정부로부터 청산해야 할 적폐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선물도 받았다. 바로 세수 호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첫해인 2017년에 11조2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을 편성했는데, 그중 9조9000억원이 전임 정부가 남겨준 초과세수였다. 세계(歲計)잉여금(초과세입과 쓰지 않고 남은 세출불용액을 합한 금액)은 2015년부터 작년까지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정부의 세수 추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반도체 호황과 국내 자산시장 활성화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세수 호황이 끝나는데 정부의 씀씀이는 날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반도체 가격 하락, 부동산 거래 절벽 등으로 올 1분기 국세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00억원 줄어들었다. 반면 내년 예산안은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500조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 4월 24일 정부가 발표한 올해 추경 예산안에는 총 재원 6조7000억원 중 3조6000억원을 적자국채 발행으로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추경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적자국채 발행은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작년 초과세수가 25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는 점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작년 세계잉여금은 13조2000억원으로 최근 11년 사이 가장 많았지만, 지방교부금 지원, 국채상환 등으로 629억원밖에 남지 않았다. 세계잉여금은 국회의 동의 없이 쓸 수 있는데, 국가채무가 줄지 않은 걸 보면 지방에 많이 푼 것으로 보인다. 만일 올 추경이 통과되어 3조6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하게 되면, 연 이자부담만 720억원가량 늘어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0% 이하여야 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며 적자국채 발행에 방아쇠를 당겼다.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39.5%로 미국(136.0%), 일본(233.0%), OECD(36개 국가) 평균 113% 등과 비교하면 양호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버블 붕괴 시점인 1991년 일본의 국가채무 비율은 64.1%로 당시 OECD 평균인 59.4%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오히려 미국이 67.7%로 일본보다 높았다. 그러던 것이 2012년 219.1%로 OECD 평균인 108.8%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미국 106.3%).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수치가 아니라 변화의 추세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1997년 11.4%에서 2009년 31.2%, 2018년 39.5%로 급증하였다. 한국은 고령화의 속도뿐만 아니라 국가채무 증가 속도에 있어서도 일본보다 빠르다.
   
   적자국채의 급증과 재정건전성의 악화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국가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쳐 국가신용등급이 내려갈 위험성이 커진다. 무디스와 S&P가 평가한 2018년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은 GDP 세계 3위인 일본이나 G2로 불리는 중국보다 두 계단 높다. 국가신용등급은 한 나라가 빚(국채)을 갚을 능력과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등급으로 나타낸 것이다. 일본은 고령화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국가부채의 급증으로 신용등급이 급락했다. 한국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투자 자금의 유출 위험성이 높아진다. 일본은 기축 통화국이라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한국은 다르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는 가능한지 허구인지를 놓고 충돌했다. 이후 ‘배신의 정치 심판’은 진박 감별과 공천 파동으로 이어지며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참패를 안겨주었다. 담세수준과 복지수준 간의 연관성이 높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저(低)부담-저(低)복지를 중(中)부담-중(中)복지 내지 고(高)부담-고(高)복지로 바꾸자는 얘기도 이러한 상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담세수준과 복지수준이라는 두 개의 변수만 고려하면 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국가부채라는 또 하나의 중대 변수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적자국채를 발행하면 증세를 하지 않고도 복지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박근혜 정부 초기 3년간 적자국채 발행액은 91조8000억원으로 이명박 정부 5년 92조6000억원에 근접한 수치였다. 박근혜·유승민 논쟁은 경제학적으로 무의미한 것이었다.
   
   적자국채는 증세 없는 복지를 가능케 한다. 따라서 담세수준과 복지수준 두 가지만 따지는 접근법은 3차방정식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2차방정식으로 푸는 격이다. 이제껏 한국 사회는 2차방정식을 푸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저부담-저복지냐, 고부담-고복지냐의 표면적 논쟁과 달리 정치권은 표를 앗아갈 증세보다 적자국채 발행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해왔다. 증세의 경우 사회적 반발이 격렬하지만, 적자국채 발행의 경우 일반인들은 거의 모르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현역세대의 부담(증세)을 미래세대의 부담(적자국채)으로 돌리는 ‘영리한 정치’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최근의 국가채무비율 40% 논란은 ‘영리한 정치’를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일반적으로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초고속 고령화가 몰고 올 연령지진을 견뎌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원의 지속가능성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이 도래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실세들은 대부분 86세대다. 86세대는 군홧발에 맞서 저항하다 감옥과 군대에 끌려갔지만, 취직만큼은 잘 됐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1980년대 중반의 3저(저유가·저달러·저금리)호황 덕에 일자리는 넘쳐났다. 기업들은 1981년 졸업정원제 시행으로 2배 이상 늘어난 대학 정원을 남김없이 수용했다. 데모하느라, 연애하고 노느라 학점이 엉망이었어도 졸업장만 있으면 웬만한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86세대는 혜택받은 세대다. 억압적 권위주의체제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하면서도 경제성장의 파이 나누기에서 소외되지 않았다. 민주화의 훈장도 달았고, 산업화의 과실(果實)도 맛보았다.
   
   그런 호시절은 완전히 끝났다. 지금의 청년세대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로 들린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원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하지 못하는 대학 졸업생이 부지기수다. 이들의 대다수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유소년 시절을 보내며 부모세대의 명예퇴직과 경제적 몰락 등을 체험한 ‘IMF에코세대’다.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죄(?)가 이토록 큰 것이다. 그런 점에서 3저호황의 단맛을 본 86세대는 불황의 쓴맛을 보고 있는 IMF에코세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과감한 적자국채 발행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2016년 국가예산 386조원 중 적자국채의 이자로만 13조원이 지출되었다. 일본은 예산의 20% 정도를 이 용도로 지출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자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유행이다. 이 정권의 살림살이가 딱 그렇다. 미래세대의 부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자국채라는 곶감 빼먹기에 열중한다. 이건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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