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전거 타기에 푹 빠져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오갔지만 그건 아이들의 위험한 모험 정도였습니다. 자전거 전용도로 하나 변변히 없던 시절 매연 가득한 차도로 자전거를 몰다가 차에 치일 뻔한 적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이제 50살 넘어서 생애 처음 제대로 된 자전거 장비를 갖추고 한강변 자전거도로를 달려봅니다. 그러면서 새삼 깨닫는 건 한강의 아름다움과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입니다.

주말에 한강 자전거도로로 나서 보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습니다. 서로 다른 모양의 자전거를 타고 속도도 제각각이지만 모두들 페달을 돌리며 어디론가 향합니다. 날씨까지 쨍하면 그야말로 평화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의 주말 풍경이 연출됩니다.

자전거 매니아인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의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강물이 생사가 명멸하는 시간 속을 흐르면서 낡은 시간의 흔적을 물 위에 남기지 않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2만5000분의 1 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 우마차로, 소로, 임도, 등산로들은 몸속으로 흘러오고 몸 밖으로 흘러나간다.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이 정도로 농밀한 사색을 할 능력은 못 되지만 자전거를 타다 보면 느린 속도의 매력에 빠져듭니다. 평일 내내 책상에 앉아서 빛의 속도로 오가는 뉴스를 검색하고 뉴스를 좇다가 주말에 몸과 정직하게 반응하는 속도를 접하면 신선합니다. 김훈이 설파한 대로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입니다. 물론 각자의 피와 근육으로 일구는 아날로그 세계를 깨뜨리는 침입자들이 있긴 합니다. 미니벨로 정도의 자전거가 믿기지 않는 속도로 쏜살같이 지나가면 십중팔구 요즘 유행하는 전기자전거입니다. 그들은 굳이 몸과 길 사이에 작은 모터 하나를 두고 아날로그 세계의 평화를 깨뜨립니다. 정직한 아날로그의 속도감에 뒤늦게 매료된 저에게 전기자전거는 일종의 반칙입니다. 팽팽한 근육을 자랑하며 쏜살같이 저를 앞지르는 젊은이들은 부럽지만 전기자전거는 불편합니다.

느린 속도가 선사하는 한강변의 풍경도 경이롭습니다. 퇴근길 차를 타고 지나가는 한강변 풍경과 자전거로 지나가는 한강변 풍경은 같지만 다릅니다. 아날로그 속도 속의 풍경에서는 마치 유화 속의 그것처럼 시간의 덧칠이 느껴집니다. 낡은 것과 새것,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들이 눈에 세심하게 잡힙니다. 그런 세심한 눈길은 어릴 적 봤던 한강변 풍경도 종종 기억 속에서 불러냅니다. 이윽고 아날로그의 속도는 머리와 눈으로 비교되는 놀라운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긴 시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반면 달리는 차 속에서 훑는 차창 밖 풍경은 빠르게 점멸하는 디지털 화면처럼 아무 감흥을 주지 않습니다.

서울이 근사한 한강변 자전거도로를 갖고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전거도로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호주 브리즈번에서도 자전거를 타봤지만 한강이 선사하는 풍경처럼 크고 넓지 않았습니다. 이미 외국 자전거 매니아들에게는 한강을 달리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번 주말 한강변을 달릴 축복을 미세먼지가 앗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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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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