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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피니언
[2564호]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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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열성 경쟁’의 수렁에 빠진 한국 정치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 지난 5월 3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드러누워 ‘좌파 독재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경쟁은 세상을 바꾸는 추동력이다. 경쟁 과열의 부작용도 있지만, 선의의 경쟁은 낡은 것을 혁파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 경쟁이 없는 사회는 고인 물과 같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몰락이 대표적 사례다. 경쟁은 인간만의 행위가 아니다.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식물도 햇볕, 수분 등 필요한 자양분 획득을 위해 경쟁한다. 경쟁은 존재계의 법칙인 것이다.
   
   경쟁이 끝나면 우열(優劣)이 가려진다. 일반적으로 경쟁은 ‘누가 더 잘하나’ 게임으로 진행된다. 승부욕은 남들보다 잘하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쟁의 일반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바로 ‘누가 덜 못하나’ 게임을 반복하고 있는 한국 정치다. 이 희한한 게임의 목적함수는 ‘우성(優性)의 극대화’가 아니라 ‘열성(劣性)의 극소화’다.
   
   정치의 평가방식은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다. 내가 잘 못하더라도 상대가 더 잘 못하면 반사이득(反射利得)을 얻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실정치는 반사이득 챙기기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경제학 용어로 설명하면, 선거에서의 상품은 후보자들이다. 상품이 물건인 경우 소비자는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구매를 결정한다. 그러나 선택 대상이 사람인 경우 호감보다는 반감이 더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평론가 프랭클린 애덤스는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투표의 본질은 심판과 응징에 있다. 정치인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높은 나라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심화된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렇다. 한국의 선거는 예쁜 놈 뽑아주는 게 아니라 미운 놈 떨어뜨리는 의식(儀式)이다. 결과적으로 미움을 덜 받은 차악(次惡)이 승리한다.
   
   최근의 정치 흐름을 보자. 북한 목선의 대기귀순 사건은 경계 실패와 거짓해명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자유한국당은 안보 실종이라며 대통령을 군형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아들 스펙 발언이 공감능력 부족과 황당 해명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민주당과 정의당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고 있다.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국 정치는 주요 정책 이슈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논쟁보다는 대개 상대방의 실책을 최대한 부각시켜 반사이득을 챙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반사이득은 기본적으로 불로(不勞)소득이다. 자신이 쏟은 피와 땀의 결과물이 아니라 상대방의 실수나 실책을 자신의 이득으로 치환하는 얄팍한 술수의 결과물이다. 한국 정치의 비(非)생산성과 불(不)건전성은 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차악의 정치학’에 더해 정치권의 못난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갈수록 심해지는 진영논리와 확증편향이다. 흔히 여의도 정가는 먹고 먹히는 정글에 비유된다. 이런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피아(彼我)식별을 잘해야 한다. 피아식별은 편싸움, 진영대결로 발전한다. 그런데 진영논리는 진영대결의 악성종양이다. 흑백논리와 선악이분법에 사로잡혀 내로남불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싸우면서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상식적 진영대결의 범주를 벗어난다.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democracy)는 반대를 위한 반대인 비토크라시(vetocracy)로 변질된다. 세 번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지만, 공수 교체만 되었을 뿐 발목잡기 정치 문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과거 YS와 DJ가 보여주었던 ‘협력적 경쟁(coopetition)’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선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설 수 있는 중간토양이 아주 협소해진다. 최근 활성화된 유튜브 정치는 안타깝게도 확증편향의 플랫폼이 돼가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고도의 편식을 일삼는 성난 군중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은 배려와 절제라는 시민적 덕성 위에서 꽃을 피운다. 경쟁자를 적대와 배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증오정치는 공화국의 성숙한 시민이 아니라 폭민(暴民)을 정치무대에 끌어들인다.
   
   ‘누가 덜 못하나’의 열성(劣性) 경쟁은 정치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한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는 서로 삿대질하며 “너희들 때문에 나라가 망가진다”고 힐난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보수와 진보의 수준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경우는 없다. 한쪽이 A급인데 다른 한쪽이 C급일 수는 없다. 싸우면서 닮아간다고 보수와 진보의 수준은 수렴하면서 엇비슷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을 보수가 아니라 극우, 수구라며 신(新)독재라 규정하였다, 자유한국당은 최근 문재인 정권을 좌파독재라 비난한다. 누가 맞는 것일까. 세계적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은 2018년 7월 국회에서 열린 70주년 제헌절 기념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대통령은 선출된 독재자’라 표현하였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제도에 보수와 진보 어느 쪽이 들어가든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여야의 삿대질은 맹목적 비난에 불과하다.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상대방 흠집 내기에 골몰하고 있을 뿐이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증상이 시간이 갈수록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야생에 사는 혹멧돼지의 다리는 다른 돼지들에 비해 길다. 사자, 표범 등 포식자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한 결과다. 때로는 가장 빠르다는 치타의 추격도 따돌린다. 이처럼 적자생존에는 약육강식의 비정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화의 희열도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진화가 이루어지건만, 한국의 보수정치와 진보정치는 선대들이 물려준 유산을 계승·발전시키지 못한 채 오히려 퇴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치는 김대중 정치의 유연함과 포용력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문민개혁이라는 김영삼 정치의 유산을 계승하지 못한 채 5·18 문제로 헉헉대고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대한민국은 선거 결과에 따라 좌로 날 수도 있고 우로 날 수도 있지만, 높게 날아야 한다. 과거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힘차게 도약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의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 서울 종로다. 문재인 청와대의 첫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씨가 출마 의사를 밝힌 가운데 황교안 대표가 출마를 결행하면 최대의 빅매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공안검사 대 운동권’이라는 낡은 구도가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난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든다. 한국의 여야는 모두 과거를 먹고 살고 있다. 의식도 제도도 과거의 업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분권과 협치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는 새로운 국가 거버넌스가 탄생하지 않는 한, 현재와 같은 열성 경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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