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박’으로 분류되던 자유한국당 한 의원과 저녁 자리를 가졌습니다. 황교안 대표에 대한 의원들의 속내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의원은 황 대표보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걱정을 더 많이 하더군요. 총선을 앞두고 터져나올 ‘박근혜 변수’가 걱정이라는 투였습니다. 그는 연말쯤 현 정권이 박 전 대통령을 감옥에서 풀어줄 가능성을 100%로 점쳤습니다. 여권이 ‘박근혜 석방’을 보수진영을 분열시킬 필살의 카드로 보고 있다는 겁니다. 이 의원은 여권의 전략이 먹혀들 가능성이 높다면서 우울한 표정으로 “내년 총선이 절대로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이 의원에 따르면 자신을 포함한 몇몇 한국당 의원들은 그동안 박 전 대통령 면담을 몇 차례 요구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해들었다는 겁니다. 한국당 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뭐였을까요. 이 의원의 말을 정리해보면 ‘책임과 통합’ 정도였던 듯합니다. 적폐로 몰려 고생 중인 박근혜 정권 사람들의 잘못이 결국 내 잘못이니 다 용서해주기 바란다는 말과 함께 보수가 뭉쳐달라는 주문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만남을 거부했고 입도 열지 않았습니다.

이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나와 통합이 아닌 분열의 상징이 될 것을 가장 우려하는 듯했습니다. 진보와 맞서는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보수 안에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면 큰일이라는 겁니다. 이미 ‘박근혜’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수 분열의 상징이 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대한애국당은 ‘박근혜 뜻’이라면서 당명까지 바꿔버렸습니다. 이 의원은 감옥의 박 전 대통령이 또다시 일부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지 모르겠다는 걱정도 했습니다. 최순실로 곤욕을 치른 마당에 또 다른 최순실들이 감옥의 박 전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박근혜라는 정치인에 대해서 평소 품었던 의문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박근혜는 당초 정치인의 자질조차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 말입니다. 국민들이 선택해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물론 탄핵 사태를 불러온 그 잘못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섣불리 내리지 못하는 것은 제가 겪은 정치인 박근혜의 모습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2004년 천막 당사를 치고 나온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시절, 박근혜 위원장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식 인터뷰가 힘들 것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건 지 한참 지나 지하철 퇴근길에 답이 왔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저 박근혜인데요”라는 수화기 너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적잖이 놀랐습니다. 당시 박근혜 위원장은 기대하지 않았던 통화에서 제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해줬습니다. 전혀 답에 거리낌이 없었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습니다. 그때도 최순실이 옆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저와 통화할 때는 100% 박근혜였다고 확신합니다. 좋은 정치인의 자질이 소통과 결단, 균형감각 등이라면 당시 박근혜는 거기에 부합하는 인물로 보였습니다. 정치인 박근혜의 진짜 모습이 뭔가가 지금도 머릿속을 떠도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진짜 한국당의 우려대로 보수 분열의 상징이 될까요.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제 의문이 답을 찾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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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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