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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7호]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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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불화수소 한 방에 흔들리는 대한민국 경제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30일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이 열린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세계 최초 EUV 공정 7나노로 출하된 웨이퍼·칩 공개 세리머니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photo 뉴시스
일본의 느닷없는 경제 보복으로 반도체 공정용 초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수입이 끊겨버렸다. 수요의 90% 이상을 일본산에 의존하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재고가 바닥이 나면 더 이상의 생산은 불가능해진다. 검증이 덜 된 러시아산이나 국산이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인지는 신중한 확인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반도체 신화가 무너지고, 국민 경제가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물론 세계 자유무역 체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우리를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일본의 졸렬한 만행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제쳐두고 어설픈 선무당급 훈수로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기업과 국민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는 정부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약방의 감초 같은 불화수소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올해 초 5개월 동안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공정용 불화수소의 규모는 2844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전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반도체 기업에는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실제로 반도체의 원가에서 불화수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다.
   
   그렇지만 실리콘 웨이퍼에 정교한 회로를 에칭(蝕刻)하고, 제조과정에서 웨이퍼를 세척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불화수소가 없으면 반도체 생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불화수소는 약방의 감초와 같은 것이다. 포토레지스트와 불화폴리이미드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우리에게 수출을 규제하고 있는 것은 범용(汎用) 불화수소가 아니라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용으로 특별히 생산된 순도 99.999% 이상(불순물 10ppm 이하)의 초고순도 특수소재다. 일본이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공급하고 있고, 우리는 전적으로 일본산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특별히 초고순도의 불화수소가 사용된다. 반도체 생산과 같은 물리적 공정에서는 소재에 들어 있는 극미량의 불순물에 의한 손상을 제거할 다른 방법이 없다. 불순물이 회로를 손상시키기도 하고, 반도체의 성능을 저하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반도체의 회로가 복잡하고 가늘어질수록 더 높은 순도의 에칭가스가 필요하다. 순도가 높아질수록 불화수소의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우라늄 농축에는 48%의 농도만으로 충분
   
   범용 불화수소를 반도체 공정용으로 가공하기 위해서는 규소·붕소·비소·인·황·염소 등 불순물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증류(蒸溜) 기술과 안정적인 품질관리 기술이 필요하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완벽한 설비와 오랜 경험을 통해 숙련된 전문인력을 갖춰야만 가능한 일이다. 일이 터지고 난 후에야 허겁지겁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해서 국산화를 서두르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그런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공허한 탁상공론이다.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공정용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북한으로 밀반출해서 사린가스 제조에 사용되게 하기 때문에 일본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명백한 국내 정치용 억지다. 그런 억지에 대한 냉정한 해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고 정치적 보복이라는 속셈을 애써 감추려 하지도 않고, 우리 정부의 지적을 가차 없이 깎아내리는 일본의 정치적 주장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사린가스 제조에는 수돗물 불소화에도 사용되는 흰색 분말인 불화나트륨이 주로 사용된다. 인회석을 원료로 사용하는 비료공장의 굴뚝에서 비교적 쉽게 회수할 수 있는 물질이다. 독성·부식성이 강해서 취급이 어렵고, 값도 비싼 반도체 공정용 불화수소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사실 북한이 쉽게 분해되어서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한 사린가스를 제조하고 있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김정남 독살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독가스인 VX의 제조에도 불화수소를 사용하지 않는다.
   
   
   반도체 공정 외에는 쓸데없는 초고순도 불화수소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우라늄 농축에도 불화수소가 사용된다. 그러나 쉽게 기화해서 취급이 어려운 불화수소 대신 불화수소를 물에 녹여서 만든 수용액인 ‘불산’이 주로 사용된다. 불산은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생산한다. 수용액 상태의 불산은 상당한 형석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북한에서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 굳이 반도체 공정용 초고순도의 불화수소를 물에 녹여서 우라늄 농축에 쓸 48% 농도의 불산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불화수소의 구입처를 다변화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나무랄 일은 아니다. 반도체 공정 이외에는 쓸 데가 없는 초고순도 불화수소의 국산화는 애초부터 수익성을 기대하기 매우 어려운 사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제적 분업과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무역 질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러시아산 불화수소의 정체는 적극적으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는 러시아가 반도체 공정에 쓸 정도로 고순도의 불화수소를 생산하고 있다는 주장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불화수소 국산화의 부작용도 경계해야 한다. 자칫하면 국산화가 반도체 기업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불화수소의 다변화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다.
   
   
   부실한 외교정책의 책임을 국민에 떠넘겨선 안 돼
   
   미국이나 WTO 회원국들이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순진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언론에서는 일본의 자유무역 질서를 어지럽히는 보복적 수출 규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에게 호의적인 일부 전문가들의 발언을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여론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뒤엉켜 있는 국제사회의 현실은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냉혹하다.
   
   정부의 외교 역량이 요동치는 국제 정세에서 우리의 국가적 이익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반복적으로 확인된 진실이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일이 절대 아니다. 부실한 외교 정책에 의한 부담을 무작정 기업과 국민에 떠넘겨서도 안 된다.
   
   역사 문제 해결이 우리에게 절박한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원칙’을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설득을 위한 고도의 외교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역사·외교 문제는 경제 문제와 구분되어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 알량한 자존심을 위해 경제를 포기할 수 있다는 인식도 위험한 것이다. 21세기의 외교 문제를 ‘의병’과 ‘죽창’으로 해결하자는 선동적인 주장도 시대착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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