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행복·공정 연대행동회의(준)와 시민사회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7월 18일 청와대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 은폐 시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안전·행복·공정 연대행동회의(준)와 시민사회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7월 18일 청와대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 은폐 시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진실을 의도적으로 조작·은폐해왔던 관련자 34명이 검찰의 재수사로 재판에 넘겨졌다. 2006년의 어설펐던 검찰 수사보다는 훨씬 더 철저한 수사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부의 책임은 밝혀내지 못했다. 가장 확실한 과학적 증거인 피해자를 제쳐두고 엉뚱하게 동물실험에만 매달렸던 환경부·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대한 의혹도 해소하지 못했다. 참사특별위원회의 일부 위원·전문가·시민단체에 대한 피해자들의 불만도 가볍게 볼 수 없다. 환경부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환경부가 인정해준 피해자는 신고자의 12.9%에 불과한 835명뿐이다. 신고자들 중 1421명은 이미 사망해버렸다.

선무당의 살인적 사용법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생활화학제품을 개발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선무당들이 만들어낸 엉터리 제품이었다. 당시 보급이 크게 늘어나고 있던 초음파 가습기의 물때와 세균을 간편하게 제거해주는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유공 개발팀의 의도는 순진했다.

문제는 전문성이었다.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고 알려진 개발팀의 책임자는 초음파 가습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고,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도 갖추지 못한 무자격자였다. 세균을 제거해주면서 인체에는 안전한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꿈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를 판단할 능력도 없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드러난 후에도 스포츠신문의 지면을 통해 과학 해설 전문가로 활동할 만큼 철면피이기도 했다.

유공이 처음 만들어낸 ‘가습기메이트’는 사실상 아무 기능도 할 수 없는 맹물이었다. 가습기에 생긴 물때를 세척·세정해주는 계면활성제(비누) 성분도 들어있지 않았고, 제품에 첨가한 독일제 살균 성분인 ‘프리벤톨 RI-80’의 양도 살균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정부의 관리 능력도 낙제 수준이었다. 세척제 성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엉터리 제품을 ‘세정제’로 신고를 받아주었다. 세정제의 성분표를 한번이라도 살펴봤더라면 가습기 살균제는 세상에 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정제’로 신고한 제품이 엉뚱하게 ‘살균제’로 둔갑하는 것도 방치했다. 세정제와 달리 살균제라면 인체·환경 독성에 대한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했다.

살균제로 둔갑한 맹물 세정제가 소비자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게 된 것은 제조사가 소비자들에게 제시한 살인적인 사용법 때문이었다. 누구나 세정제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세정제로 세척한 후에는 반드시 맑은 물로 헹구고 깨끗하게 건조시켜야 한다. 세정제 몇 방울을 가습기의 물에 떨어뜨리고 가습기를 작동시키는 것은 그런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해괴한 사용법이었다. 그런 방법으로는 초음파 가습기의 물통에 붙어 있는 물때를 제거할 수도 없고, 물때에 붙어 있는 세균을 살균할 수도 없다.

살균 성분을 실내 공기 중에 분무(噴霧)시키는 사용법도 경계했어야만 했다. 살균력이 아무리 약하더라도 밀폐된 실내의 공기 중에 분무된 살균 성분이 눈이나 호흡기로 흡수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몸에서 면역에 가장 취약한 부위가 눈과 호흡기이기 때문이다. 노약자들이 가습기를 밀폐된 실내에서 장시간 사용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정부가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살인적인 사용법을 제시한 엉터리 제품을 ‘세계 최초의 신제품’이라고 떠들썩하게 홍보해주는 것도 모자라 KC마크까지 붙여준 것은 단순한 실수라고 볼 수 없다. 검찰이 법적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면 정부 기관의 실수와 오류라도 분명하게 지적해줬어야 한다.

사실 선진국에서는 살균이나 계면활성제 성분을 밀폐된 실내 공기 중에 분무하는 사용법은 철저하게 금지한다. 초음파 가습기용 세척제에는 사용 후에 깨끗한 물로 헹구고 건조시켜야 한다는 경고가 붙어 있다. 정부·전문가·언론·소비자들이 무려 18년 동안이나 선진국의 그런 경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만성 독성의 과학적 확인

유해물질에 의한 피해를 확인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식중독처럼 급성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장기간에 걸친 반복적·지속적 노출에 의해 나타나는 만성 증상의 경우에는 원인을 찾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 수 있다. 유해성이 의심되는 물질을 의도적으로 사람의 몸에 주입시키는 일도 윤리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유해물질로 인한 만성 부작용이 개인에 따라 크게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동물실험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도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의뢰했던 동물실험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다. 초미세먼지 정도의 크기를 가진 고분자인 PHMG·PGH를 사용한 제품을 호흡으로 흡입시킨 실험용 쥐에서 폐가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폐섬유증이 확인됐다. 호흡을 통해 흡입된 PHMG·PGH가 폐포에 누적되어 지속적으로 염증을 일으킨 결과였다.

그러나 동물실험이 만능일 수는 없다. 특히 인체에 나타난 모든 증상을 확인하는 ‘진단’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유해물질에 의한 만성 독성은 동물의 종(種)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흑사병과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페스트균과 한타바이러스는 쥐에게 아무 독성도 나타내지 않는다.

환경부가 CMIT·MIT의 독성을 확인하겠다고 동물실험에 매달렸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동물실험에서 증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인정해줄 수 없다는 환경부의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억지였다.

초미세먼지보다 훨씬 작은 CMIT·MIT는 폐포를 통해 쉽게 몸속으로 흡수되어 전신으로 퍼지면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으로 짭짤한 이익을 챙기던 일부 독성학자들이 명백한 상식을 애써 외면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늦었지만 검찰이 CMIT·MIT의 인체 유해성을 확인해준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환경부도 동물실험이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나타난 증상을 근거로 피해 사실을 인정해주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고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기업의 과도한 살균 마케팅과 정부의 부실한 관리가 만들어낸 부끄러운 사고였다. 모든 미생물을 퇴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미생물도 많고, 미생물과의 공생이 우리의 면역 체계를 강화시켜줄 수도 있다. 아토피가 늘어나는 것이 과도한 살균으로 위생환경이 지나치게 깨끗해진 탓이라는 역설적인 주장도 있다. 지나친 살균 광풍(狂風)은 경계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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