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한 모금행사에서 어린 시절 부동산업자인 아버지와 함께 임대료를 받으러 다닌 일을 언급하며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임대아파트에서 114달러13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10억달러를 받는 것이 더 쉬웠다”고 했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특히 미국의 안보 지원에 나라의 안위를 걸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나라로서, 이보다 더 모욕적인 얘기도 없을 것이다.

트럼프는 뼛속 깊이 부동산개발업자이다. 그는 연설은 물론 책에서도 부동산 사업을 할 때 있었던 일을 자주 언급한다. 트럼프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밀린 임대료를 받으러 다닐 때는 벨을 누르고 문 앞에 서 있지 말고 옆으로 피해 있으라고 했다고 한다. 세입자가 총을 들고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 BBC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트럼프:아메리칸 드림’을 봤다. 2년 전쯤에 나온 4부작인데, 트럼프가 어떤 사람이며, 그가 어떻게 대통령이 됐는지를 다룬다. 트럼프에 관한 일화라면 지겹도록 들어서 새로운 이야기는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앳된 모습의 트럼프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의 운전기사, 친구와 지인들을 통해 재구성해낸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니 트럼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트럼프는 뉴욕의 보석상 티파니 옆에 자신의 이름을 딴 ‘트럼프타워’를 짓는다. 1970년대 말에 짓기 시작해 1983년 문을 연 이 건물은 지금은 평범해 보이지만 당시엔 너무나 호화스러워서 엄청난 화제였다. 트럼프는 티파니 옆에 건물을 짓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하지만 누구도 트럼프가 감히 그 금싸라기 땅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이 거래를 한번 해보시지 않겠습니까”라고 권유하는. 플로리다주의 별장 ‘마라라고’를 살 때도 그랬지만 트럼프는 늘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끈질겼고 막판에 기회를 잡았다.

부동산업자로 승승장구하던 시절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이 재산을 모두 잃게 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는 “대통령에 출마할까봐요”라고 하더니 곧 “농담입니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가 느닷없이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된 것 같지만, 그는 젊은 시절부터 은근히 대통령 꿈을 저울질하고 있었고 주변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보려는 움직임이 계속 있었다. 그러다가 나이 70이 다 돼서 비로소 도전하고 성공한 것이다.

트럼프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도 모자라 자기 이름을 브랜드로 만들어 사업을 성공시키고, 그 명성을 이용해 TV 스타가 된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인기를 증폭시켜 대통령이 된 후 그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만들어내는 대통령이 되었다.

다큐멘터리는 트럼프의 도산 위기, 스캔들 등 여러 실패 사례도 다룬다. 다 보고 난 후 마음에 오래도록 남은 것은 트럼프와 같이 일했던 사람이 남긴 말이다. “트럼프는 두 종류의 사람을 공격했다. 첫째는 약한 사람. 약점을 발견하면 그걸 (나쁘게) 이용했다. 둘째 그는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공격했다. 더 심하게.” 트럼프 앞에서 약한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이 다큐멘터리가 예고하는 것 같았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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