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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피니언
[2571호]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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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문재인과 아베 신조의 적대적 공생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의 ‘케미’는 한마디로 최악이다. 2017년 5월 11일 문 대통령 당선 축하 통화에서 아베 총리가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강조하자 문 대통령은 ‘수용하기 힘든 국민 정서’를 언급해 파열음을 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직후인 5월 30일 이루어진 두 번째 통화에서도 두 사람은 압박과 대화로 갈라졌다.
   
   두 사람은 출신 및 성장 배경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한 사람은 일제강점기 흥남시청 농업과장을 지내다 월남한 부친을 둔 인권변호사 출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치 명문가 자손으로 화려한 배경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한 3세 정치인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묘하게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강렬한 민족주의자라는 점이다. 두 사람은 각각 대통령과 총리로서 자국의 관제민족주의를 총지휘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문재인의 민족주의는 왼쪽, 아베의 민족주의는 오른쪽이라는 점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양국의 이념지도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반일과 친일 청산에 초점을 맞추어왔기 때문에 좌파 주도로 진행되었고, 일본의 민족주의는 평화헌법 개정과 전후체제 청산을 목표로 했기에 우익 주도로 이루어졌다. 현재 한·일 관계가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인 이유는 간명하다. 사상 최초로 한국의 왼쪽 민족주의와 일본의 오른쪽 민족주의가 ‘강대강(强對强)’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양국 관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충돌이 있었지만, 이번 충돌은 차원을 달리한다. 강성 이념 간 충돌이라는 점에 더해, 양측 모두 외교적 목표보다 국내정치적 목표를 몇 곱절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적폐몰이’에 이은 ‘친일몰이’로 다음 총선과 대선의 승리를 노리고 있고, 아베 정권은 ‘한국발(發) 대외 위기’를 평화헌법 개정의 불쏘시개로 활용하려 한다.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이 싸움은 분명 양측 모두 손해를 보는 ‘루즈(lose)-루즈(lose) 게임’이지만, 양측 정권은 그러한 국익 손상을 감수하고라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국익이 당리당략에 밀리고, 외교가 국내정치의 도구가 되고 있다.
   
   이처럼 합리적 외교행위를 통한 국익 신장보다 당파적 목표 달성을 우선하다 보니 자신의 행위가 상대의 목표 달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자신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에만 골몰한 나머지, 자신의 행위가 상대의 목표 달성에 긍정적 소재가 되는 현실에는 무신경하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서로 죽일 듯이 싸우면서도 상대의 목표 달성에 도움을 주는 ‘적대적 공생’ 메커니즘이다.
   
   강제징용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기 전인 2017년 8월, 외교부는 판결이 한·일 관계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다. 12월에는 범정부적 대책마련의 필요성도 보고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직후인 11월, 일본통인 이낙연 총리는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 등 20〜30명의 전문가를 모아 한국 정부와 기업이 돈을 내고 일본 기업들의 참여도 유도하는 안을 만들어 청와대에 올렸으나 ‘킬’되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수차례 요청해온 외교 협의도 거부했다. 일본 자민당이 대응팀을 만들어 보복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해당 업무를 수행해야 할 주일 한국대사관의 경제공사 자리는 올 3월 이후 공석이다. 외교의 관점에서 보면 예방외교의 포기였고, 정략적 관점에서 보면 의도적 방치였다. 위기의 고조와 확대가 당파적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 없었다면, 있기 힘든 일이었다.
   
   아베 정권의 대응 조치도 위기의 고조와 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역사 갈등을 통상 보복으로 응수함으로써 전선을 확대하였고, 자국 번영의 기틀이었던 자유무역주의를 훼손하였다. 그러면서도 수출규제 조치는 한국 측의 강제징용 조치와 무관하다는 억지 논리를 폈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 7월 1일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 발표 직전까지 관련 움직임을 모르고 있었다. 다수의 일본 매체는 그 같은 조치가 자국 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아베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응 조치에 대한 다수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였고, 7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도 상당한 이득을 보았다. 선거에서 재미를 본 아베 정권은 한국을 아예 화이트국가에서 제외시키는 조치를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현상동결 합의(standstill agreement)’를 제안하였다. 한·일 양국이 추가적인 공세를 멈추고 냉각 기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거부했고, 8월 2일 한국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되었다. 한마디로 외교의 실종과 정치적 계산의 과잉이 낳은 비극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이득은 아베만의 것이 아니었다. 경제 보복 조치는 한국인들의 반일 감정을 크게 자극하여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상승시켰다. 두 나라 공히 국익은 손상되는데, 집권세력은 재미를 보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공은 다시 한국 측으로 넘어왔다. 정부 여당은 공공연하게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유력한 대응 조치로 거론하고 있다. 역사에서 통상으로 확대된 싸움터를 다시 안보로까지 확장시키겠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도 파기 찬성이 반대보다 높다. 만일 이 조치를 단행하면, 아베의 정치적 득실은 어떻게 될까. 일본 임시국회 개원 첫날인 지난 8월 1일 아베 총리는 자민당 중·참의원 합동의원총회에서 “엄중함이 증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국익을 지켜나가 헌법 개정 등 곤란한 문제를 한 몸이 돼 다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엄중함이 증가하는 국제 정세’는 두말할 필요 없이 최근의 한·일 충돌을 의미한다. 한·일 충돌을 개헌의 불쏘시개로 활용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참에 한국이 지소미아를 파기하면, 아베는 쾌재를 부를 것이다. 엄중함이 더욱 증가해 개헌의 필요성이 증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베 정권이 이 기세로 개헌에 성공한다면, 일등 수훈 역은 문재인 정권이 될 것이다.
   
   국가 이익보다 국민 감정을 앞세우는 외교는 외교가 아니다. 포퓰리즘 정치의 도구일 뿐이다. 지금 한·일 양국의 외교는 관제민족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다. 국가 이익은 ‘루즈-루즈’인데 정권 이익은 ‘윈-윈’이 되는 기묘한 메커니즘이 한·일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 적대적 공생 관계를 끊어줄 모멘텀은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편협한 민족주의에 찌들지 않은 깨어 있는 시민과 건강한 시민사회 그리고 이들 간의 연대가 그 답이다. 일본 내에는 아베의 개헌 추진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무척 많다. 깨어 있는 한국인들은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무조건적 반일이 아닌 반(反)아베, 지소미아 파기 반대, 미국이 제안한 현상동결 합의 지지, 외교협상 활성화 촉구, 도쿄올림픽 보이콧 반대, 일본인 관광객에 친절 베풀기 등 공화국의 성숙한 시민이 해야 할 일은 많다. 이것이 진정한 극일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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