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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1호]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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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무작정 밀어붙이는 소재산업 육성의 허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

▲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8월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가진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그동안 중요한 소재산업을 소홀히 해왔다는 따가운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세계 D램 시장의 73%를 차지하는 반도체 기업이 에칭가스(불화수소)처럼 중요한 소재를 일본에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소재의 국산화를 통해 탈일본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가 매년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행정 규제를 완화하고, 조세·금융·행정 지원을 강화해서 당장 소재를 국산화하겠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런데 눈앞의 대형 산불을 끄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 산불 진화에 쓸 소방 헬기 개발 전략에만 매달리고 있다.
   
   
   중국도 믿기 어려운 상대
   
   우리가 그동안 소재산업을 외면했다는 지적은 심각한 현실 왜곡이다. 오히려 우리의 본격적인 산업 투자는 소재산업에서 시작됐다. 1973년의 ‘중화학공업육성정책’이 그 증거다. 철강·비철금속·석유화학 등의 소재산업이 핵심이었다. 광물자원과 원유도 없고, 기술력과 자본도 없었던 우리에게는 무모하고 비현실적인 꿈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감하게 도전했고 크게 성공했다. 세계 수준의 품질·규모를 자랑하는 제철·정유·화학산업이 그 결과다. 일부 장관·정치인·전문가·언론의 어설픈 인식과 달리 우리도 엄연한 소재 강국이다.
   
   우리 경제가 일본이 두려워할 정도로 성장한 것도 일찍부터 활용도가 대단히 높은 범용(汎用) 소재산업에 집중 투자한 덕분이다. 우리가 처음 선택했던 가발·신발 등의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고집했더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렇다고 범용 소재의 완전한 ‘국산화’를 이룩한 것은 아니다. 원재료인 철광석과 원유는 전량 수입했다. 앞으로도 사정이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 세계적인 자원 빈국(貧國)인 우리에게 소재의 완전 국산화는 불가능한 꿈이다. 모든 소재의 생산은 광물·원유와 같은 천연자원이나 고무나무와 같은 생물자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원재료와 중간재는 수입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무모한 수출 규제로 문제가 된 에칭가스의 생산도 형석(螢石)이라는 천연광물에서 시작한다. 대량의 황산도 필요하다. 형석 매장량의 60%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 불화수소와 불산의 종주국이 된 것도 풍부한 형석과 황산 덕분이다. 소재 가공에도 자유무역은 필수라는 뜻이다. 자칫하면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중국은 희토류 금속으로 전 세계를 협박했던 나라다.
   
   소재산업은 엄청난 에너지 소비와 오염·사고 예방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 때문에 기피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화학’산업이다. 앞에서는 세계 최악의 화평법(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으로 화학산업을 짓누르면서, 돌아서서는 화학 공정에 의존하는 소재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적 모순은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
   
   화학산업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완화시키는 노력도 중요하다. 더럽고 위험한 기술도 깨끗하고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화학산업 짓누르는 정책 모순부터 해결해야
   
   금속이나 석유 제품과 같은 범용 소재산업은 전형적인 소품종·대량생산 업종이다. 품종은 많지 않지만 엄청난 물량을 쏟아내는 거대 장치산업이라는 뜻이다. 이윤은 박하지만 시장의 규모가 충분히 크다. 투자의 성과도 확실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일본의 소재산업도 역시 범용 소재에서 시작했다.
   
   일본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고급 첨단 소재를 생산하는 소재산업은 전혀 다르다. 전형적인 다품종·소량생산 업종이다. 품목의 수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정부가 무역협회 통계를 근거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선정한 100개 품목이 모두 그렇다. 그런 소재를 생산하는 업체는 사용자가 요구하는 구체적인 물성과 순도를 일일이 맞춰줘야만 한다. 사용자마다 요구하는 실질적인 소재가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그런 소재의 개발은 정부가 나서서 획일적으로 지원할 수가 없다.
   
   고급 첨단 소재의 시장 규모도 실망스러울 정도로 작다. 초고순도 에칭가스의 전 세계적 수요는 일본의 중견기업인 스텔라와 모리타가 독점할 수 있는 수준이다. 100년 이상 불소화합물에만 매달려왔던 일본 기업의 전문성을 극복하기도 어렵지만, 충분한 규모의 시장을 확보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결국 내수시장만으로는 엄청난 개발 비용을 정당화할 수 없다.
   
   우리가 고급 첨단 소재를 외면해왔던 것도 아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했던 정밀 화학산업이 바로 소재산업의 고급화·첨단화 시도였다. 정부도 투자를 했고, 대기업도 협력을 했고, 중소기업도 노력을 했다.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다. 울산·여수 등의 산업단지를 채우고 있는 상당수 기업들이 그런 소재 생산업체들이다.
   
   다만 품목이 너무 많고, 생산량이 적어서 성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런 기업은 고작해야 중견 수준으로 성장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노력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거부하거나 착취한다는 주장은 함부로 믿을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랬더라면 오늘날의 경제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상생의 협력을 하고 있다. 다만 더 많은 성공 사례가 필요하다는 것이 사회적 요구다.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이라고 모두 엄청난 기술력을 가진 믿을 만한 기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소재를 써야 하는 기업의 요구는 만족시켜주지 못하면서 주머니만 채우려는 엉터리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엉터리 중소기업은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제도적 환경이 필요하다. 물론 엉터리 대기업의 적극적인 퇴출도 매우 중요하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 제고가 가장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고급 첨단 소재를 개발·생산하겠다는 정책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국제적 분업과 협업이 절대 회피할 수 없는 대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소재·부품·장비는 국산화하면서 우리가 생산한 완제품은 다른 나라에 수출하겠다는 생각은 이기적인 자가당착이다. 완제품을 수출하려면 소재·부품·장비의 수입도 용납해야 한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밀어붙이는 정부의 소재산업 육성 정책은 엄청난 예산만 낭비하고 끝날 것이 분명하다.
   
   정부의 외교적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시켜 국제사회에서 자유무역의 가치를 정착시키는 노력을 선도해야 한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극한 대립을 일삼는 국내의 3류 정치관행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절대 금물이다. 상대의 원칙과 약속을 존중해주는 상호호혜의 정신이 필요하다. 무너진 외교를 살리는 것이 당장 시급한 소재의 물량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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