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커버스토리를 읽어보셨는지요. 런던에서 글을 보내오는 권석하씨가 영국의 의원소환제에 대해 썼는데 곱씹어볼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올해 들어 소환돼 의원직을 상실한 하원의원들의 죄가 우리 시각으로는 참 보잘것없습니다. 과속하다 적발된 여성 의원은 자신이 운전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소환돼 결국 의원직을 잃고 말았다고 합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정치인들과 같이 살아가는 처지에서 거짓말하는 의원을 소환할 수 있는 영국인들이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사실 ‘정치인’과 ‘거짓말’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단짝으로 돌아다닙니다. ‘정치인이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은 거의 보편적인 인식 같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진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뻔뻔스럽게 하는 정치인들을 자주 봅니다.

정치인의 거짓말에 대해 특히 펄쩍 뛰는 사람들은 과학자들입니다. 정치인들이 과학적인 진실조차 무시해버리는 거짓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과학전문 저널리스트 데이브 레비턴이 쓴 ‘과학 같은 소리 하네(Not a Scientist)’라는 책을 보면 과학의 탈을 쓴 정치인들의 헛소리와 거짓말들이 잔뜩 까발려져 있습니다. 2012년 미국의 하원의원 토드 아킨이 여성계를 격분시킨 “진짜 강간이라면 임신할 리 없다”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낙태를 금지시키려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런 괴상한 거짓말을 하면서 “의사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진짜 강간을 당한 여성은 체내에서 임신을 막기 위해 생물학적 방어를 하게 된다”는 그럴싸한 이론까지 들먹였습니다. “지구온난화는 중국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려고 지어낸 말”이라는 트럼프의 트위터 글도 대표적인 뻔뻔한 거짓말로 꼽혔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거짓말을 과학으로 포장하는 데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과학적 쟁점을 유치한 얘기로 둔갑시키는 것도 그중 하나인데, ‘고작’ 초파리 연구에 100만달러나 썼다면서 기초과학 연구 보조금을 줄이려 한 랜드 폴 상원의원의 사례가 이런 유형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알고 보면 초파리는 인간과 똑 같은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는 생물로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이라고 합니다.

17세기 영국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었던 헨리 워튼은 “대사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려고 해외에 파견된 정직한 신사”라고 했답니다. 이 말대로라면 거짓말은 정치의 속성일지도 모릅니다. 아마 트럼프의 지지자들도 대통령의 ‘사소한’ 거짓말쯤이야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괜찮다는 식으로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미국 미시간주립대 공동연구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유권자들이 특정 정치인들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내는 것은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유권자 본인들의 신뢰, 도덕 기준에 따른 것이랍니다. 결국 거짓말과 막말이 특정 정치인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허물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거짓말과 막말을 일삼는다는 씁쓸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신임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준비가 한창인데 벌써 각종 의혹과 해명이 난무하네요. 뻔한 거짓 해명을 지겹도록 들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 우울해집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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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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