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세계 최대의 섬이라는 그린란드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를 ‘사고’ 싶어 한다. 최근 트럼프가 그린란드 매입 방안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뉴스를 처음 봤을 때 농담인 줄 알았다.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에 담을 쌓겠다고 했을 때처럼 21세기에 이게 무슨 허황한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멕시코 장벽 때도 그랬듯이 트럼프의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화들짝 놀란 덴마크가 “그린란드는 판매용이 아니다”라고 펄쩍 뛰자 트럼프는 두 주 앞으로 예정된 덴마크 국빈방문을 연기해버렸다. 동맹국으로부터 이런 대우를 받으니 덴마크도 충격을 받았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서 땅을 사들인 예가 꽤 있다. 19세기엔 지금의 루이지애나주 지역을 프랑스로부터 사들였고,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이기도 했다.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사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서 한국에 와서 제주도를 사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싶다. 트럼프의 국제정치는 땅을 사고 건축물을 짓고 임대료를 받는 틀로 구성된다.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사고 싶어 하고,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보다는 ‘담을 세워’ 막고 싶어 한다. 공동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맺은 군사동맹이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안보에도 기여한다는 가치에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방위비를 자신이 세준 집의 월세 받는 일로 치환해, 월세(방위비)를 더 올리고 확실하게 받아내는 일에 더 집중한다.

트럼프의 부동산 구매사례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85년 플로리다에 있는 ‘마라라고’를 헐값으로 사들인 사례이다. 지금은 트럼프의 별장이 된 마라라고는 원래 콘플레이크 등을 생산하는 식품 회사 포스트사의 상속인 소유였다. 20에이커 면적에 방이 118개나 되는 거대한 저택은 상속인 사후 유지가 불가능해 연방정부에 헌납됐다. 하지만 연방정부가 다시 포스트재단으로 되돌려주면서 1970년대 말에 매물로 나왔다.

최초 가격은 2500만달러였다고 한다. 트럼프는 1500만달러를 제안했고 곧 거절당했다. 이후 다른 사람이 나서서 몇 번이나 거래가 성사될 뻔했지만 다 무산됐다. 그때마다 트럼프는 더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최종적으로 트럼프가 현찰 500만달러를 주고 샀다. 마라라고에 있던 비싼 가구는 따로 300만달러의 값을 쳐주는 조건이었다. 당시에 팔린 비슷한 조건의 매물과 비교하면 충격적일 정도로 싼값이었다고 한다.

‘트럼프처럼 협상하라’는 책을 쓴 조지 로스는 트럼프가 돈이 아니라 매도인이 거부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해 마라라고를 살 수 있었다고 본다. 당시 포스트재단은 공들여 지은 저택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어 했다. 트럼프는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제안을 했다. 포스트가의 유산을 잘 유지 보존하겠다고 한 것이다.

덴마크에 미국은 중요한 동맹국이다.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사고 싶다고 하면서 “덴마크를 보호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트럼프가 아름다운 저택을 보존하고 싶어 하는 포스트재단의 열망을 공략해 헐값으로 마라라고를 사들인 거래가 떠오른다.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마라라고처럼 집요하게 공략할 수도 있다. 덴마크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어쩌면 다른 동맹국들도 비슷한 일을 겪을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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