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버릴’ 수 있을지가 주목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버릴’ 수 있을지가 주목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임직원과 주주들이 고액의 연봉과 배당금을 챙긴 투자은행에 거액의 공적자금이 수혈되는 사태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익추구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손실처리의 책임을 회피한 ‘월스트리트의 탐욕’은 ‘1% 대 99%’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1%의 천박한 이기주의에 분노했다.

한국의 진보는 이 프레임을 고스란히 차용했다. 2016년 4월 25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의 제목은 ‘이윤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였다. 손석희는 회사를 파산의 위기에 몰아넣고도 끝까지 사익을 챙기고자 했던 한진해운 오너일가의 행태를 질타하면서 “그렇게 1%를 위해 99%가 존재하고, 그 1%는 어떤 경우에든 손해 보지 않는다는 후진적 자본주의의 신화는 오늘 다시 실화가 되어갑니다”고 탄식하였다. 이 프레임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정유라는 금메달이라도 땄지, 조국 딸은 자기 힘으로 한 게 뭐냐”는 힐난이 세대와 이념을 넘어 방방곡곡에 메아리치고 있다. “개혁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다”는 조국의 고백은 또 다른 위선일 뿐이다. 그의 개혁주의는 수미일관 이율배반적이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인 1998년 조국은 서울 강남 아파트를 경매를 통해 시세보다 35% 싸게 사들였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 격인 경주 최부잣집 가훈에는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는 가르침이 있다. 조선시대에 흉년이 들면 심한 경우 쌀 한 말에 논 한 마지기를 넘기기도 하였다. 부자들에게는 헐값에 땅을 사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최부잣집은 금기시하였다. 그런데 조국은 IMF 환란을 재산증식의 기회로 활용하였다. 더구나 조국이 아파트를 매입한 시점은 부친이 운영하던 건설회사가 은행 빚을 갚지 못해 부도처리된 즈음이다. 1985년 1억원 출연으로 웅동학원 이사장이 된 조국 부친 조변현씨는 1998년 웅동중학교를 시내에서 산기슭으로 옮겼다.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새 학교 부지의 땅값은 기존 부지의 4분의 1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씨는 이전 공사대금을 땅값 차익이 아닌 동남은행 대출 35억원으로 충당했는데, 공사대금을 제대로 지불하지도 않고 또 갚지도 않아 회사를 부도냈다. 그렇다면 유학에서 갓 돌아온 조국은 무슨 돈으로 강남 아파트를 사들인 것일까.

2013년 조국 부친은 세상을 떠나면서 자산 21원, 부채 49억원을 남겼다. 그중 조국은 자산 6원만을 상속받았다. 연대보증인으로 부채를 떠안은 조국 모친과 남동생의 자산은 각각 450여만원과 빚 덩이여서 변제능력이 없다. 반면 변제 의무에서 벗어난 조국과 동생의 전처는 각각 56억원과 100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조국 선친이 남긴 기술보증기금 채무와 미납 세금 등은 영구 미집행이 될 것이다. 이처럼 조국 일가는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를 한정상속과 짬짜미 소송 등 고난도의 법기술을 활용하여 실현하였다. 조국은 ‘강남좌파’를 넘어 좌파도 1%의 탐욕대열에 합류할 수 있음을 몸소 입증하였다. 그는 명실공히 ‘1% 좌파’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개혁주의는 다름 아닌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장기간 공존, 내로남불의 생활화와 체질화였다.

1% 좌파의 탄생이 몰고 온 후폭풍은 측량하기 힘든 정도다. 요동치는 여론조사 결과는 빙산의 일각이다. 관제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일풍(日風)’도 ‘조풍(曺風)’의 기세를 꺾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조국=우병우+최순실’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야말로 일파만파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기상변화를 일으키는 ‘나비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이념지도와 정치지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좌우 이념이 도덕 수준과 관계없다는 것이 조국을 통해 입증되었다. 최순실에 대한 감정이 단순한 분노였다면, 조국을 향한 분노에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배신감이 서려 있다. 진영논리에 찌든 이외수, 공지영, 이재정 등이 아무리 조국 ‘쉴드’를 치려고 해도 그들만 없어 보일 뿐이다. 변상욱의 오두방정은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 유시민의 마스크 착용 시비는 그가 학생들의 애환과 고충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드러냈다. 반면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진보 지식인들의 따끔한 비판은 늘어나고 있다. 조국 사태는 진보진영을 386 꼰대와 진정한 자유인으로 분화시키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모처럼의 반사이득에 고무되었다. 조국 사태가 보수통합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많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청년학생들의 절제된 촛불은 ‘태극기의 접근’도 거부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반성 없는 보수는 결코 젊은이들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중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조국 사태는 청년세대들이 ‘386의 정신적 식민지’로부터 독립하는 강력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좌우 구도로 설명될 수 없는 탈(脫)진영논리와 세대담론이라는 새로운 조류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지난 8월 27일 검찰은 조국 의혹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단행하였다. 조국은 검찰의 강제수사를 받는 최초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되었다. 9월 2〜3일의 인사청문회에서 선방하더라도 검찰수사의 예봉을 피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검찰의 이례적인 선제 대응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으나,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나라를 어지럽히는 행위’ ‘검찰 적폐’라는 격앙된 반응을 볼 때, 집권세력을 매우 불편하게 만든 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조국 사태는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이다. 조국을 정리하는 손절매(loss cut)를 통해 데미지(damage) 컨트롤을 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조국을 껴안고 버티는 길을 택할 것인지는 오롯이 문 대통령의 몫으로 남았다. 전자를 택하면, 문 대통령이 ‘양념’이라 미화했던 핵심지지층이 흔들리고 비문(非文)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후자의 경우, ‘문재인이 곧 조국’이 되면서 분노 수위가 한층 높아진 광범위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고, 과거 합리적 보수가 박근혜를 떠났듯이 합리적 진보도 문재인을 떠나갈 것이다. 또한 검찰 수사 결과에 정권의 명운이 갈리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문 정권은 조국과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전자를 택하는 것이 맞다. 조국을 버리고 정권을 구해야 한다. 역대 정권도 유사한 위기상황에서 비슷한 선택을 해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이러한 상식과 관례를 따를지는 미지수다. 양정철은 문재인이 노무현보다 고집이 훨씬 세다고 했다. 인사청문회 이후 문재인의 선택은 어느 쪽을 향할 것인가. 조국의 나비효과는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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