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2일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중국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장 링지화(領計劃·당시 58세)가 “엄중한 기율위반으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타전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2012년 11월 당 최고 권력자로 선출된 이후 2년 남짓 흐른 때였다. 시진핑은 중국 최고 권좌에 오른 후인 2014년 3월에는 전임자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 시절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정치국원을 겸임하던 쉬차이허우(徐才厚)에 대한 부패 혐의 조사를 시작했고, 6월에는 후진타오 당 총서기 시절 중국공산당의 최고 권력자 9명 가운데 한 명이던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부패 혐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들의 부패 조사에 대한 시진핑의 의지는 “호랑이와 파리를 모두 때려잡으라(打虎拍繩)”는 지시로 잘 표현됐다.

중국 최대의 검색엔진 바이두(百度)는 홍콩의 봉황주간(鳳凰週刊)을 인용해서 ‘군사위 부주석이던 쉬차이허우의 베이징(北京) 중심가 서쪽의 호화주택 2000㎡ 지하실에서 약 1t 무게의 현금이 발견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쉬차이허우와 저우융캉은 전직 고위 당 간부였지만, 링지화는 시진핑이 당 총서기가 된 이후 당 통일전선공작부장에 오른 현직 최고위 간부였다는 점에서 중국공산당 내에 충격을 주었다.

시진핑은 현재도 반(反)부패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요즘엔 ‘파리들’에 해당하는 지방 당 간부들에 대한 부패와 당 기율위반 조사 활동이 진행 중이다. 시진핑이 ‘때려잡은’ 대표적인 ‘호랑이’ 가운데 하나인 링지화는 17세 때인 1973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해서 27세 때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운영하는 ‘중국 청년 정치학원’에 입학해 정치교육을 전공했다. 이후 29세 때 공청단 중앙선전부 이론담당 부처장, 32세 때 공청단 판공청(사무처) 주임, 38세에 공청단 선전부 부장을 역임한 뒤 중국공산당 판공청(사무처) 직원으로 승급했다.

그는 시진핑이 당 총서기로 선출된 2012년 말까지 30년 가까이 당의 내부 행정기관인 판공청과 서기처를 장악하고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 두 총서기의 신임을 받아왔다. 또 두 총서기의 신임을 바탕으로 시진핑이 당 총서기로 선출되자 중국공산당과 국내외 정치 조직들과의 통일전선 업무를 총괄하는 통일전선공작부장으로 임명된 인물이다. 결국 시진핑은 장쩌민과 후진타오 두 전임 총서기뿐만 아니라 자신에 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을 링지화를 부패 혐의와 당 기율위반 혐의를 걸어 목을 자른 것이다. 2016년 7월 4일 톈진(天津)시 중급 인민법원은 링지화에게 수뢰와 국가비밀 불법 취득,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과 종신 정치권리 박탈을 선고했다.

중국공산당이 당의 최고위 권력자를 부패와 당 기율위반 혐의로 처단한 것은 시진핑 시대에 처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상하이(上海)시 당 서기를 하다가 1989년 6월 베이징대학 학생들이 중심이 돼 벌어진 천안문사태를 계기로 중앙당 총서기로 발탁된 장쩌민이 중앙당 내에 권력을 다지는 과정에서도 당시 베이징시 당 서기였던 천시퉁(陳希同)을 각종 부패와 기율위반 혐의를 걸어 제거하는 일이 벌어졌다. 수사 과정에서 천시퉁의 오른팔 왕바오썬(王寶森) 부시장이 미녀 TV앵커들에게 베이징 시내 아파트를 10여채씩 선물하고, 천시퉁의 아들은 호텔에 불법적으로 CCTV를 설치해서 호텔 방을 훔쳐보는 음란행위를 한 죄상 등이 공개되기도 했다.

시진핑의 후임 총서기인 후진타오가 2002년 당 총서기로 선출돼 당내 입지를 다지는 과정에서는 중국공산당 내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던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당 서기가 역시 사회보장기금을 횡령한 혐의가 공개돼 숙청됐다. 시진핑 현 당 총서기가 2012년 당 총서기로 선출되기 전에는 시진핑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당 서기가 부인의 외국인 독살과 치정 혐의, 심복인 충칭시 공안국장의 청두(成都) 주재 미 영사관 망명 기도 사건 등으로 제거됐다.

지정학(geopolitics) 전공의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셈파(Sempa)는 2016년 ‘더 디플로맷’ 10월호에 ‘두 개의 중국: 노멘클라투라와 그 나머지’라는 글을 기고했다. 셈파는 미 최고의 중국 전문가 아서 월든(Waldon)의 글 ‘베이징에서 보낸 편지(Letter from Beijing)’를 인용해서 “안에서 본 중국은 두 개의 중국으로 쪼개져 있다. 하나의 중국은 도시에서 각종 혜택을 누려가며 살고 있는 노멘클라투라(nomenclatura·특권계층)의 중국이고, 농촌에서 교육도이나 교통·의료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사는 수억 보통 사람들의 중국이 다른 하나의 중국이다”라고 했다. 셈파에 따르면 월든은 이 말을 중국공산당 고위간부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편지에 적었다.

셈파가 인용한 월든의 글에 나온 ‘노멘클라투라’는 이탈리아의 소련 전문가 마이클 볼렌스키(Volensky)가 1984년에 쓴 ‘Nomenclatura’라는 책의 제목이다. 라틴어가 어원인 노멘클라투라는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USSR(소련)이 수립된 지 10년 후 스탈린 집권기에 국가를 이끌 소련공산당 간부와 정부 관리들의 리스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들은 레닌이 이끌던 혁명기에는 혁명의 주축세력이었으나 점차로 생산에는 종사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노동자들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차지하게 됐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최고급 별장 ‘다차’까지 확보하는 계층으로 변해갔다.

소련공산당의 노멘클라투라들은 1990년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시장경제 개혁에 나선 페레스트로이카의 틈을 타 다시 많은 부를 축적했다. 고르바초프가 개방정책인 글라스노스트를 시작하자 장악하고 있던 당권을 활용해서 글라스노스트를 좌절시키기도 했다. 고급 주택과 별장을 소유한 노멘클라투라들은 고르바초프 정권이 무너지자 보리스 옐친을 지지하는 것으로 권력을 유지해갔다.

2015년 6월 11일 중국 CCTV가 저우융캉 전 공산당 상무위원이 톈진 법원 피고석에 서서 선고를 듣는 모습을 방영하고 있다. 그는 이날 뇌물수수 등으로 종신형을 받아 부패 죄목으로 유죄를 받은 최고위 중국공산당 간부가 됐다. ⓒphoto 뉴시스
2015년 6월 11일 중국 CCTV가 저우융캉 전 공산당 상무위원이 톈진 법원 피고석에 서서 선고를 듣는 모습을 방영하고 있다. 그는 이날 뇌물수수 등으로 종신형을 받아 부패 죄목으로 유죄를 받은 최고위 중국공산당 간부가 됐다. ⓒphoto 뉴시스

중국공산당은 1934년에서 1936년까지 22개월간 국민당의 공세를 피해 이른바 ‘2만5000리 대장정’에 나섰다. 당시 중국 남부 구이저우(貴州)성에서 출발해 북서부의 산시(陝西)성 옌안(延安)까지 성공적으로 행군한 8000여명의 중국공산당 간부들이 노멘클라투라를 형성했다.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 덩샤오핑(鄧小平)이 모두 중국공산당 노멘클라투라의 일원이었음은 물론이다. 이들 노멘클라투라들의 생활은 베일에 감춰져 있었다. 하지만 덩샤오핑이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펴면서 이른바 부총리 이상 최고권력자들이 베이징 중심부의 호숫가 집단거주지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사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들이 바깥에서는 팔지 않는 고급담배를 피우고, 식수도 일반 베이징 시민들이 마시는 석회질 많은 수돗물이 아니라 특별공급된 생수만 마시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개혁개방 10년 만인 1989년 천안문사태에 원인을 제공했다.

소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 노멘클라투라의 타락은 자신들이 혁명을 이끈 공적을 과도하게 평가해서 도덕적 타락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중국의 노멘클라투라 체제(China’s Nomenclatura System)’의 저자 존 번스(Burns)는 진단했다. 이들은 생산력을 담당하는 노동자와 농민 계층과는 달리 생산력을 담당하지 않으면서도 혁명의 관리자로서 각종 호화로운 생활조건을 누린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란 기본적으로 인민들의 평등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중앙계획과 통제된 규율을 필요로 하는데, 중앙계획과 규율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혁명 이후를 관리할 계층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혁명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노멘클라투라들은 생산에는 가담하지 않으면서도 손쉽게 재화와 권리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부패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구조가 사회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한창 반부패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시진핑 현 당 총서기 역시 딸 밍쩌(明澤)를 하버드대학에 유학시키고 있다. 중국 당 고위간부의 월급만으로 하버드대학의 1년 등록금을 대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베이징 특파원인 미네무라 겐지는 2015년 출간한 ‘JUSANNOKU BUN NO ICHI NO OTOKO(13억분의 1의 남자)’라는 책에서 시진핑의 딸이 다른 이름으로 하버드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폭로했다. 시진핑뿐만 아니라 장쩌민·리펑(李鵬) 전 총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중국공산당 고위간부들이 자녀를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대학에 유학시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노멘클라투라들이 “아들딸을 미국에 유학 못 시키면 바보”라는 말이 중국의 일반 라오바이싱(老百姓) 사이에서 상식처럼 되어 있을 정도다.

자칭 타칭 ‘강남좌파’라는 조국 법무장관 후보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정부의 장관들을 포함한 더불어민주당 정권의 고위 당정 관료들이 소련이나 중국의 노멘클라투라 흉내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행태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아직 언론 자유가 살아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소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의 노멘클라투라들이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산력에 기생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 자유가 없는 비공개 비밀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개방되어 있고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가 보장돼 있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와 같은 이른바 ‘혁명 관리자’를 자처하는 좌파들의 생활 역시 투명한 유리상자 속에서 춤추는 인형과 같이 모든 국민들이 관찰 가능하다. 이들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투명하고 개방돼 있는가를 왜 깨닫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자칭 좌파와 사회주의 추종자들은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이 1997년 2월 사망하기 전에 가족들에게 했다는 유언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덩샤오핑은 당시 “사고가 끝난 사회주의자의 신체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므로, 태워서 바다에 뿌려라”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의 뼛가루는 부인 주오린(卓琳)의 오열 속에 동중국해 일원에 뿌려졌다. 유언에 따라 덩샤오핑 기념관은 건립되지 않았다.

박승준 아시아 리스크 모니터 중국전략분석가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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