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에 등장했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요즘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의 ‘망조가 든 나라’와 비슷한 어감으로 쓰이지만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변화’와 ‘개혁’의 의미로 읽히는 듯합니다. 긍정의 의미든, 부정의 의미든 진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은 강하게 듭니다. 특히 외교 안보 분야에서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갈등을 키워가는 사이 한·미 동맹은 틈이 벌어지는 것이 확실히 보입니다.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결정 이후 워싱턴이 다 한국에 등을 돌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외교부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청사로 불러 ‘실망’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받았으니 메시지 발신을 자제해달라고 하는 이례적인 장면도 있었습니다. 한국이 자주적이 됐다고 우쭐해지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이 파장이 어디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소득주도성장도 이리저리 방점이 달리 찍히긴 하지만 굳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여파인지 사상 최악의 소득 양극화라는 부작용과 역설이 나타나고 있지만 정부는 ‘고령화’ ‘인구구조’ 탓으로 돌리면서 소득주도성장에 면죄부를 주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북한은 끊임없이 미사일 쏘아대고 있는데, 미국의 대통령은 김정은을 여전히 친구로 부르고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향하고 있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바깥에서부터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자유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미국 대통령은 이제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짜 안보는 없다면서 공중전화처럼 돈을 넣어야 지켜주겠다는 말을 대놓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과의 무역전쟁도 세상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으로 끌고 들어가는 듯합니다. 경제로 포장된 이 패권전쟁은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진짜 세계가 각자도생의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듯합니다.

대통령이 말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진짜 뭘 얘기하는 걸까요. 일본과 끝이 없이 싸우고, 미국에 실망스럽다는 말을 듣고, 소득 양극화는 최악으로 치닫고,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지금 상황이 종착지일 리는 당연히 없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향하고 있는 종착지가 어디인지 누구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명확한 비전과 거기에 대한 설득과 공감 없이 어디론가 새로운 곳으로 가고 있다는 말만으로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평화경제’와 ‘기술자립’ 같은 공허한 말로는 결국 어디로 가자는 것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리더의 고전적 정의는 앞장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깊은 성찰과 숙고를 통해서 새로운 길이 옳다는 확신이 들면 이걸 무리에게 설득하고 앞장서 이끄는 사람이 리더라고 합니다. 결국은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설득과 공감이 중요하다는 얘기죠. 혼자서 소수의 지지자만 이끌고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라 이탈자일 뿐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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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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