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조국 법무장관. ⓒphoto 뉴시스
지난 9월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조국 법무장관. ⓒphoto 뉴시스

도대체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과 어떤 사이길래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대통령의 집착은 무모하기까지 하다. ‘개인의 일탈’로 마무리할 것을 ‘세력의 타락’으로 키우고 있다. 조국 사태로 현 집권세력은 가치를 상실하였다. ‘촛불’로 태어난 정부가 ‘촛불’을 잃어버린 것이다. 또한 민주화 세력임을 자임해온 현 집권세력이 민주주의와는 무관한 지독한 진영논리에 찌든 패권주의 세력임이 만천하에 입증되었다.

사실 현 집권세력은 민주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을 받은 바 없다. 그저 권위주의 정권을 깨부수고 무너뜨리는 반(反)독재 투쟁이 ‘386 민주주의’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장집 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강조했지만, 그들은 권력을 좇는 데 급급하였다. 자유민주주의의 운영 원리, 법치주의의 적용, 정치와 사법의 분리 등 어느 것 하나 진지하게 고민해본 흔적이 없다. 대통령비서실장 시절 임종석이 탈원전 공론조사에 대해 “솔직히 생경하기조차 했다”고 한 것은 ‘솔직한’ 고백이었다. 오래전 서구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숙의민주주의와 공론조사가 임종석에게는 낯설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양념’이라고 미화한 소위 ‘문빠’들은 관용의 미덕을 지닌 민주공화국의 성숙한 시민이 아니다. ‘정치적 다름’을 악으로 규정해 저주와 욕설의 문자폭탄을 퍼붓는 폭민(暴民)일 뿐이다. ‘문재인 민주주의’는 그들의 악다구니에 기초하고 있다.

조국 사태는 촛불로 포장돼 있던 이 모든 부실을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이제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각성’하고 있다. 문재인표 촛불정치는 2년 반 만에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그런 점에서 조국은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매듭을 지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윤석열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진하고 있다. 검투사의 기개가 느껴진다. 1976년 7월 27일 아침,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는 총리를 지낸 자민당 실력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의원을 자택에서 긴급 체포했다. 그리고 ‘록히드사건’(미국의 군수 업체 록히드사로부터 금품 수수 사건)으로 법의 심판대에 세워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 이후 도쿄지검 특수부는 살아있는 권력을 단죄한 모범 케이스로 세계적 찬사를 받았다. 전망컨대, 윤석열 검찰은 조국 게이트 수사를 통해 도쿄지검 특수부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우리 헌정사의 오랜 숙제인 정치권력으로부터의 검찰 독립이라는 대업도 완수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대검찰청에 수북이 쌓인 꽃다발은 그러한 여망의 산물이다.

검찰이 정부 여당의 노골적 수사방해에도 불구하고 분투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삭발과 단식으로 결기를 보여주는 것은 필요하다. 1000만인 서명운동 등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조국 대전(大戰)에 결정타를 날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황교안의 삭발은 영화 ‘터미네이터’ 사진으로 패러디돼 대중적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그가 조국 대전의 종결자(終結者)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야당은 청문회에서 결정적 한 방을 못 날렸듯이, 조국 퇴진투쟁에서도 스마트한 방안을 찾아내지 못한 채 검찰 수사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내 대책으론 국정조사와 해임결의안 추진을 검토하고 있으나,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강제수사권이 없는 국정조사의 경우, 실현된다 하더라도 검찰 수사의 뒤꽁무니를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헌법 제63조에 따른 조국 해임건의안의 경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발의와 과반수의 찬성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과반이 되려면 149표가 확보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당(110석), 바른미래당(28석), 우리공화당(2석)에 서청원·이정현·강길부·이언주 등 보수 성향 무소속 의원의 표를 다 합쳐도 144석에 불과하다. 대안정치(9석)와 민주평화당(4석) 등에서 5명 이상의 의원을 더 확보해야 하는데, 이들은 해임건의안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의석 수 문제를 떠나 해임건의안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이미 대통령은 야당의 반대 입장을 잘 알면서 임명을 강행했는데, 이제 와서 해임을 건의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대안정치 유성엽 대표의 언급은 핵심을 찌르고 있다. 설령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되더라도 문 대통령은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수용하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조국이 셀프 기자간담회와 인사청문회에서 상당한 거짓말을 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장관 취임 이후 쏟아지는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어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야당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조국을 장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조국을 심문하는 것은 별개다. 국회 본회의, 상임위에서 조국의 거짓 해명을 집요하게 추궁해야 한다. 기자들에게는 묵비권을 행사해도 의원들에게는 할 수 없다. 그건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중대한 직무유기다. “수사 중인 사안이므로 말씀드릴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는 판에 박힌 답변으로 피해나가는 것도 힘들다. 그가 국회에서 한 거짓 해명은 수사 중인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고 했는데, 국민들은 조국이 자신의 거짓 해명을 또 어떻게 해명할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향후 거취다. 조국은 아내인 정경심이 구속돼도 “제 처가 한 일이라서 저는 잘 모른다”며 장관직을 유지해나갈 것이다. 이는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라는 임명장 수여식 때의 대통령 가이드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초점은 조국 본인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거나 기소되더라도 장관직을 수행할 것이냐에 맞춰질 것이다. 상식으로 보나 관례로 보나 이 정도 되면 장관직을 사퇴하는 것이 순리이자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러나 ‘명백한 위법행위’라는 대통령 가이드라인은 불길한 예감이 들게 한다. ‘명백한’이 대법원 확정판결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조국은 구속기소되더라도 국가공무원법 제69조(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지 않는 한 자격유지)에 기대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구치소에서 직무를 수행할지 모른다. 충격적 시나리오지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국회의원에게는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책무가 있다. 상기 의문점들의 결론이 분명해지면, 국민 여론이 다시 요동치며 조국을 둘러싼 전선은 보다 명징한 형태로 재편될 것이다. 국회의원의 진정한 힘은 ‘국회의 마이크’에서 나온다. 이 ‘마이크’를 소홀히 한 삭발과 단식은 공허하다. 정부 여당의 지지율 하락이 야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마이크’를 다루는 야당의 능력과 솜씨가 ‘별로’이기 때문이다. 조국 대전(大戰), 야당 하기에 달렸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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