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 바삐 돌아가기 시작한 워싱턴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해임이었다. 해임 그 자체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대통령과의 불화설이 돌아, 볼턴 사임은 ‘언제, 어떻게, 얼마나 험하게 그만두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볼턴은 나름의 성공신화를 쓴 인물들이다. 둘 다 남의 입장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강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최근 백악관에서 새나온 잡음만 들어도 둘이 서로를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미스터리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동안 트럼프의 참모들이 숱하게 잘려 나갔다. 각각의 사연이 모두 드라마였다. 볼턴의 경우에는 충격과 여운이 좀 더 컸다. ‘공화당의 가장 호전적인 강경파 외교정책 전문가’란 볼턴의 상징성 때문이었다. 이란, 북한 등에 대해 강경 대응을 주장하는 볼턴을 지지하는 세력도 적지 않다. 백악관 내 볼턴의 존재는 그래서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 트럼프의 강경 발언이 허언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것은 볼턴 때문이었다. 볼턴은 그의 평소 신념이나 전력으로 볼 때 전쟁이나 군사공격의 필요성을 조언할 참모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그런 볼턴을 내쳤을 때 사람들은 이제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좀 더 온건해질 것이라고 추측했다. 특히 북한과 관련해선 그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하지만 볼턴은 그간 트럼프 정부 대북 협상의 주역이 아니었다.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당연히 대북정책을 조율하고 관여했겠지만, 트럼프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북한을 다뤄왔다. 그러므로 볼턴 없는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곧장 온건으로 움직인다고 보는 건 무리다. 다만 그것이 온건이든 강경이든,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갈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볼턴처럼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참모가 없어진다면 일종의 견제장치가 하나 더 풀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볼턴 해고가 불러일으킨 또 하나의 우려는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정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가이다. 트럼프의 불신으로 국무부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그런데 이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마저 제 기능을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볼턴의 후임자를 찾고 있다면서, 자신과 함께 일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고 쉽다”고 했다. 그는 “내가 모든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당신은 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국가안보보좌관은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뜻으로 들린다.

참모가 어떤 조언을 하든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내린다. 하지만 트럼프가 네 번째 보좌관을 찾는 과정을 보면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자리가 전례 없이 작아 보인다. 미국의 세계 전략을 짜고 외교안보 부처 간 의견을 조율하면서 대통령을 보좌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떠받치던 거창한 자리는 이제 사라진 것 같다.

볼턴을 참모로 두고 있으면서 트럼프가 참을 수 없어했던 이유 중 하나는 볼턴이 자신보다 더 강하게 비친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수퍼 매파’ ‘초강경파’라 불리는 볼턴 때문에 트럼프는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비쳤다. 그건 볼턴보다 약하게 보인다는 뜻이기도 했다. 늘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트럼프가 원치 않는 상황이다. 볼턴은 트럼프의 백악관에서 퇴장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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