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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5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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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생극장]‘운동권 범생’ 문재인 수석과의 대화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jmedia21@naver.com

▲ 지난 9월 16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스티브 잡스의 선(禪) 스승 스즈키 순류(鈴木俊降·1904~1971)는 평소 수행에서 ‘초심자의 마음(Beginner’s Mind)’을 강조했다.
   
   “‘나는 선이 무엇인지 안다’거나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시작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비법입니다.”
   
   초심자의 마음은 마치 모든 것을 처음 보듯이 대하는 마음이다. 단순하고 순수하며 편견 없이 열린 마음.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평생 갖고 사는 것이 선 수행이라는 것이다. 현실 생활에서 ‘초심자의 마음’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과거의 경험·습관·지식·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볼 줄 아는 태도와 용기다. 바로 여기서 창조·발전·혁명이 탄생한다.
   
   반면 “내가 해봐서 알아”는 반대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을수록, 그리고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기 판단과 경험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래서 새로움도, 본디 모습도 보지 못한다. 과거에 가졌던 지식·경험·이념·공덕·인간관계에 안주하고 산다. 결국 정체된다.
   
   스티브 잡스는 평생 ‘초심자의 마음’을 화두(話頭)로 삼고 살았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을 만났을 때는 2003년 5월 1일이었다. 그해 2월 25일 집권했으니 정권 초기였다. 당시 주간지를 맡고 있던 나는 시사 잡지 편집장들과 함께 서울경찰청 인근 한식집에서 상견례를 했다. 첫눈에 그는 심성이 착해 보였다. 겸손한 태도 역시 몸에 밴 듯했다.(이 인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대화 주제는 공권력(公權力)이었다. 마침 노동절이었고, 이미 전교조의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파동, 철도노조 파업, 화물연대 파업 등 노조 움직임이 심상치 않던 때였다. 내가 질문을 던졌다.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든 안 하든 노 정권의 궁극적 목표가 국리민복(國利民福)이라면 반드시 성공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공권력의 권위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명백한 불법인 화물연대 파업에는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십니까.”
   
   그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과거 우리나라는 기회주의, 불의, 친일파, 군부독재가 득세하면서 공권력이 정당하게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피해를 본 이들이 많기 때문에 정부는 공권력 행사를 자제하고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의 주장에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의 자리(민정수석)와 현실인식이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주요 임무는 검찰, 경찰 등 사법기관을 통한 법질서 수호와 국가 기강 확립이다. 그런데 마치 국가인권위나 대한변협회장 같은 온정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니….
   
   “저마다 무리한 요구를 하며 자행하는 불법을 정부가 방관한다면 옳은 일인가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군사독재라는 그늘을 가지고 있지만 지난 50여년간 산업화·민주화도 이룬 성공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를 어떻게 무도(無道)한 식으로 폄하할 수 있나요.”
   
   문 수석도 물러서지 않았다. 요지인즉 지난 100여년 역사는 반칙과 특권의 역사요, 가진 자가 갖지 않은 자를 수탈하는 역사이며, 권력을 장악한 자가 권력을 갖지 않은 자를 핍박한 역사라는 것이다.(이런 논리는 지금도 운동권 세력들의 단골 논리다.)
   
   논쟁은 어느덧 나와 문 수석 간의 대화로 집중됐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한강의 기적’을 봅시다. 과거 정권들이 그토록 잘못하고 불의했다면 그런 기적이 탄생할 수 있습니까?”
   
   “박정희의 경제개발 계획은 이미 민주당(장면 정권) 때 만들어진 것이었고, 독재를 통해 일사불란하게 추진하면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난 어이가 없었다.
   
   “저는 취재차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곳에서 살아봤으며 국가원수나 지도자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한국을 부러워하며 진심으로 존경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독재로 기적이 이뤄진다면 우리보다 훨씬 더 심했던 중남미, 중동, 필리핀, 동구권 독재국가들은 왜 그 모양 그 꼴이죠?”
   
   그때 문 수석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나의 공격적 질문에 대해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예의 선한, 큰 눈망울을 몇 번 움직이더니 정중하게 천천히 답변했다.
   
   “그건… 음… 우리 한민족의 우수한 능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런 답변이 나올 수 있지? 문 수석은 마치 국사 과목 사지선다형 문제의 모범답안을 말하는 것 같았다.
   
   “실례지만 외국에서 사신 적이 있으신가요?”
   
   문 수석은 산 적은 없고 두어 번 단체관광 다녀온 게 전부라고 답변한 것 같다. 아마도 그는 인생에서 다양한 현실 경험보다 대학 졸업-고시공부-합격-변호사 등 제한된 인생을 걸어온 것 같았다.
   
   그날 만남을 마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노 정권의 핵심인물이 자기 나라를 자긍심보다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니 향후 나라 상황이 평탄치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다른 하나는 문 수석이 한마디로 공부 잘하고 착하게 자라온 ‘모범생’, 즉 ‘범생’이라는 느낌이었다. 광복 이후 소위 민주화를 부르짖어온 운동권 세력이 견지해온 역사관·인식·담론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철저히 순종하는 ‘운동권 모범생’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려대로 이후 노 정권은 임기 내내 지지율 저하로 힘들었고 결국 대선에서 사상 최대의 표차(532만표)로 이명박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러 2017년 ‘촛불 탄핵’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했을 때, 나는 그가 변화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더 확고해졌다. 지금 나라는 정말 백척간두에 선 것 같은데 그는 오히려 발전적 진통으로 낙관하는 것 같다. 과연 그 괴리와 간극은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스즈키 순류가 강조한 ‘초심(初心)’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태도다. 그러나 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운동권 세력의 ‘초심’은 어린 시절 보았던 낡은 세상을 고수하려는 태도다. 그러니 늘 자기네만 옳고, 자기네만 깨달음을 얻었다는 태도일 뿐이다. 이 변화무쌍한 21세기 세상에서도 정답은 오직 하나, 자신들의 생각(민족주의·사회주의)뿐이다. 이들에게선 1960~1980년대 민주화 논리는 물론, 1945년 광복 전후사의 인식, 아니 그보다 훨씬 거슬러 구한말 조선시대 사대부의 완고한 태도와 폐쇄적 세계관까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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