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재임 시기 일본 고이즈미 총리와 회담하는 노무현 대통령. ⓒphoto 뉴시스
대통령 재임 시기 일본 고이즈미 총리와 회담하는 노무현 대통령. ⓒphoto 뉴시스

겸손(謙遜)은 동서고금을 통해 인간의 으뜸 덕목이다. 신뢰와 선의를 이끌어내 위기를 기회로, 적을 동지로 만든다.

대영제국 총리 처칠이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를 설득, 2차 세계대전에 참전케 해 승리한 원동력은 ‘겸손’이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오부치 일본 총리로부터 ‘반성과 사죄’를 받아낸 것도,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일본 재계로부터 전자와 반도체 산업의 전폭적 협력을 끌어낸 것도 ‘겸손의 힘’이었다.

반면 교만(驕慢)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인성이다. 의심과 악의를 일으켜 상황을 그르치고 싸움으로 이끈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1998년 10월 일본을 국빈방문했다. 일본 조야는 긴장했다. 김 대통령이 1973년 도쿄에서 한국 정보요원들에 의해 납치돼 죽을 뻔한 사건을 들춰낼까 우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납치사건은 물론 한·일 과거사 문제도 언급하지 않았다. 도리어 의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독재 정권하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 사형선고를 받고 갇혀 있을 때 지켜주고 도와준 일본 국민과 언론인, 정치인에게 감사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태도에 일본인들은 열광했다. 감읍한 오부치 총리는 “개인적으로 형님으로 모시겠다”며 ‘한국에 끼친 잘못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한다’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탄생시켰다. (이 광경을 태국 방콕에서 TV로 함께 본 마이니치신문 우스키·호리 특파원들의 감동 어린 표정을 잊지 못한다.)

이후 한·일 교류는 급물살을 탔다. 한류가 일본을 강타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겨울연가’ 배용준의 ‘욘사마 열풍’으로 일본인들의 한국 사랑은 최고조에 달했다. 일본 한류의 원조는 김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첫해인 2003년 6월 일본을 국빈방문했다. 평소 우리 외교를 ‘사대(事大)’라 비판했던 그의 ‘자주(自主)외교’ 노선에 일본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노 대통령 역시 김대중 대통령과 똑같이 ‘과거사’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양국의 ‘미래’와 ‘동반자 관계’만을 강조했다. 자신을 “전후(戰後) 세대 첫 한국 대통령”이라고 밝힌 노 대통령은 3박4일 내내 거침없이 행동했다. 의전(儀典)이나 격식도 개의치 않았다. 일본 국민들과의 TV 대화에선 우호관계를 가장 돈독히 할 나라로 일본, 중국, 마지막으로 미국을 꼽았다.

일본인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나는 불안했다. 노 대통령의 자신만만한 태도에서 진정성이나 겸손이 느껴지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밀월관계인 반면, 한국과 미국은 소원해져가는 상황이었다. 이런 동북아 형세를 일본 지도층, 특히 우익(右翼)이 어떻게 이용할까. 그들은 한때 아시아 전역을 삼키고 세계 제패까지 부르짖던 이들이 아닌가. 순진한 한국 대통령과 교활한 일본 정치인들의 모습,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주간조선’ 편집장이던 나는 베스트셀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저자 김진명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대통령의 방일로 일본 우익들이 오판할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가상소설 독도’를 써주십시오.”

<미·일은 가깝고 한·미는 멀어진 21세기 초. 군사 대국화로 가는 일본은 한·미 관계가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고 독도를 침공, 무력 점령한다. 미국은 모른 체하고 국제사회도 잠자코 있었다. 한국에서는 난리가 나지만 일본대사는 적반하장으로 그동안 독도를 ‘강점’한 것과 일본군 피해 등에 대한 사과 및 배상을 요구했다. 또한 2003년 제정된 유사법제(有事法制)에 따라 한국 내 자국민 보호 명목하에 자위대를 서울에 파견하고 사실상 한반도 강점에 나선다.>

(2003년 6월 26일자 주간조선)

우려는 불과 2년도 안 돼 현실화됐다. 2005년 2월 23일, 주한 일본대사가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 이름)는 일본 땅”이라고 발언한 것을 신호탄으로 일본 정부·의회·언론이 모두 나서 독도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전까지 일본은 독도 문제에 관해서 정면 대응하지는 않았다.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고, 한국 뒤에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토 분쟁은 사실 전쟁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는 이슈다.

일본이 독도 총공세를 펼 때 황망해진 노 대통령은 화를 내고 미국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호소했으나 미국은 모른 체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금, 모든 일본인들에게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 돼버렸다. 그뿐인가. 노무현 정부의 계승자 격인 문재인 정부를 향해선 노골적으로 적의와 침략 본성을 보이며 ‘군사행동’까지 하겠다고 덤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나. 김대중·노무현 모두 우호적 행보를 보여주었는데 결과는 왜 그토록 다른가. 나는 키워드를 ‘겸손’에서 찾는다. 겸손함에서 김대중은 일본인들의 선한 감성을 자극, 무장해제시켜버렸다. 반면 노무현은 오히려 일본인들의 저열한 침략 근성을 불러일으켰다. 노 대통령이 아무리 우호적 제스처를 써도 일본 정치인들은 “남북관계만 잘되면 다 깽판 쳐도 된다”는 그의 평소 주장과 일본관을 잘 알고 있었다.

국제관계는 철저히 힘센 자의 논리다. 미·일관계에서 일본은 미국에 철저히 고개 숙인다. 그들은 과거 미국에 우쭐거리다 치른 호된 경험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일본에 조아릴 수는 없다.

돌이켜보면 과거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 우리 지도자들의 ‘일본 다루기’ 전술전략은 뛰어났다. 미국을 뒤에 업고 큰소리를 쳤으며, 때로는 일본의 콤플렉스를 건드리고,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을 선동했다. 사석에서 일본어를 쓰며 비위를 맞추는가 하면, 김대중처럼 겸손하게 다가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정부는 도대체 어떤 전략전술을 가지고 있는가.

세계적 영성(靈性) 지도자 데이비드 호킨스는 역저 ‘의식혁명(Power vs. Force)’에서 ‘겸손’이 인간을 발전시키고, ‘교만’이 인간을 추락시킨다고 했다. 겸손은 인간의 큰 자아, 즉 자신을 낮추고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한 인성을 이끄는 반면, 교만은 작은 자아, 즉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건방 떨며 에고(ego)에 집착하는 인성을 이끈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겸손한 편인가, 교만한 편인가.

함영준

조선일보 사회부장ㆍ국제부장, 주간조선 편집장,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관광비서관,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역임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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