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영화 ‘10년’의 포스터와 한 장면. ⓒphoto 구글
홍콩 영화 ‘10년’의 포스터와 한 장면. ⓒphoto 구글

미 NBA(농구협회) 휴스턴 로케츠 팀의 커미셔너 대릴 모레이(Morey)는 지난 10월 4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홍콩을 지지한다(Fight for freedom. Stand with Hong Kong).” 그러자 중국 내 모든 TV 채널을 장악하고 있는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은 지난 10월 8일 “스포츠 채널에서 NBA 프리시즌 경기 중계를 즉각적으로 잠정 중단하고 NBA와의 모든 협력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CCTV는 지난 10월 10일 상하이(上海), 12일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서 열릴 예정이던 LA 레이커스와 브루클린 네츠의 프리시즌 시범경기 중계부터 당장 취소해버렸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0월 8일 브리핑에 나와 “중국 관영 중앙TV가 미 프로농구 중계를 안 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중국이 경제적인 실력으로 언론자유를 위협하고 조종하겠다는 것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한 겅솽의 대답은 단호했다.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이 이미 휴스턴 로케츠 구단에 항의를 했다. 나는 질문한 기자가 이 일에 대한 중국 보통 민중들의 반응과 태도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중국과의 교류와 협력은 중국의 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

1978년 중국공산당 실권을 잡은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의 빠른 경제발전을 위해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면서 스포츠를 포함한 미국 대중문화가 중국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는 것을 허용했다. 덩샤오핑은 미국 자본이 중국에 투자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1978년 미국을 방문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미국인들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미국의 NBA 농구는 중국인들 절반 가까이가 즐겨 보는 스포츠가 됐고, 미 NBA 무대에서 뛰는 야오밍(姚明)이라는 스타까지 배출했다. 베이징(北京)과 상하이, 광저우(廣州)를 비롯한 중국의 대도시 카페나 레스토랑 어디를 가도 TV에서 밤새도록 미 NBA 농구가 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휴스턴 로케츠의 커미셔너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홍콩을 지지한다”는 짤막한 글귀를 트위터에 올렸다고 휴스턴 로케츠뿐만 아니라 NBA 전체 경기의 중계를 중단하겠다고 관영 중앙TV가 발표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중앙TV의 발표가 중국 정부와 조율된 것이라는 입장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밝힌 것이다.

요즘 홍콩에서 주말마다 벌어지는 시위는 10월 9일로 4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요즘 홍콩의 거리 모습은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시위와, 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던 서울의 거리를 데자뷔처럼 떠오르게 한다. 시위의 발단은 현 홍콩의 특별행정구(SAR·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당국이 중국과 범죄인인도협정 체결을 바탕으로 하는 송환법 추진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2014년 9월 중국 당국이 홍콩 행정수반을 뽑는 선거에서 후보 결정 권한을 쥔 위원회 위원들을 중국 정부가 지명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이른바 우산혁명이라는 시위가 벌어졌다가 시들어진 이후 두 번째 시위가 불붙은 것이다. 700만 홍콩 시민들 대부분은 본인 아니면 부모나 친척들이 1949년 중국 사회주의 정부 수립 이후 본토에서 엑소더스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홍콩과 중국이 범죄인인도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은 피난민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떤 진압 수단도 통하지 않는 시위가 이어지자 지난 9월 4일 홍콩 행정수반 캐리 람(林鄭月娥)은 범죄인인도협정 제정을 위한 송환법을 철회한다는 발표를 했다. 하지만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시위 진압 경찰이 총기를 사용해서 중환자가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본인 역시 대륙에서 이주해온 부모를 둔 ‘우등생’ 캐리 람은 지난 10월 8일 “시위가 계속되면 중국 정부에 개입을 요청하겠다”는 발표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1997년 6월 영국이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할 당시 홍콩에 인접한 광저우에서 각종 무술 시범을 과시하던 중국 특전부대가 진압군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예고를 한 것이었다.

독립영화 ‘10년’의 메시지

캐리 람의 송환법 취소 발표에도 홍콩의 시위가 가라앉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2015년 12월 홍콩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에서 개봉된 독립영화 ‘10년(Ten Years)’을 보면 알 수 있다. 왜 홍콩 시위에 20대, 30대 젊은이들이 주로 가담하는지 이 영화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독립영화 ‘10년’은 영화 제작 당시로부터 10년 후인 2025년의 홍콩을 그리고 있다. 모두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옴니버스로 묶는 형식으로 제작됐는데, 각각의 제목은 ‘엑스트라’ ‘겨울매미’ ‘방언(Dialect)’ ‘분신자살자’ ‘현지 계란’ 등이다.

‘엑스트라’는 홍콩 정청이 2020년 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는 과정을 상정하고 있다. 보안법 제정 추진에 유리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조폭을 고용해 친중파 정치인들에 대한 암살 기도를 하는 사건을 조작하는 이야기이다. 이 단편은 50만달러라는 거금을 받기로 하고 조폭으로 고용된 홍콩의 힘 없는 서민 두 사람이 암살 기도 현장에서 경찰에 사살당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또 다른 단편 ‘방언’은 중화인민공화국 표준어인 ‘만다린(Mandarin)’을 구사하지 못하고 영어로 ‘캔터니즈(Cantonese)’라고 부르는 광둥어밖에 못하는 한 택시운전사의 불만을 그린 영화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영어를 잘 못해 택시운전사가 되는 데 애를 먹었던 이 운전사는 2025년 홍콩 정청이 “표준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택시운전사는 공항이나 관광지 등 중요 장소에서 영업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발표하자 먹고살기가 어렵게 돼 절망감에 빠진다. ‘분신자살자’는 홍콩이 사회주의 지역으로 변해가는 것에 항의하려면 분신자살이라도 해야 하는데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서 분신하는 사람들이 없자 한 80대 할머니가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분신자살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현지 계란’은 중국어로 ‘본지단(本地蛋·홍콩 현지에서 생산된 계란)’이라고 써붙인 계란 가게에 2025년 빨간 완장을 차고 초록 군복을 입은 초등학생 홍위병들이 나타나 “왜 불순하게 본지단이라는 글자를 붙였느냐”라고 따지는 장면을 그렸다. ‘본지단’이란 말에는 중국 대륙 식품을 믿지 못하는 홍콩 사람들의 부정적인 관념이 담겨 있어 금지어로 올랐다는 의미이다.

북한의 사회주의화를 피해 흥남 철수선을 탔던 아버지를 둔, 1970년대 박정희 독재통치에 반대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1980년대 초 전두환 군부독재에 반대했던 운동권이 주축이 된 현재의 우리 집권층은 이른바 ‘1987년 체제’에서 벗어나는 시각 전환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런 시각 전환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1970년대, 1980년대 운동권 주축들이 교과서로 삼던 마오쩌둥(毛澤東)과 김일성이 목표로 했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는 경제난으로 실패해버렸다.

그들이 구호로 내걸던 혁명이나 개혁은 다 용도폐기됐다. 현재 중국을 미국과 경쟁하는 G2 국가로 만든 것은 덩샤오핑이다. 그는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며, 시장경제는 자본주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주의도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다”면서 박정희식 개발경제를 모델로 해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했다. 그 덕분에 중국은 지금 G2 반열에 올랐다. 1984년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로부터 홍콩 주권 반환 약속을 받아낸 덩샤오핑은 ‘1국가 2체제(One country Two Systems)’라는 통합 방식을 제시했다. 홍콩에 50년간 자본주의 체제를 보장하고, 외교와 국방에 관해서만 중국이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결과 홍콩의 헌법인 기본법(Basic Law) 제5조에 ‘50년간 홍콩에서 사회주의를 시행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담겼다. 그리고 1997년 6월 말 장쩌민(江澤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홍콩의 주권 반환 행사에 참석하는 영광을 누렸다.

20~30대가 시위에 나선 이유

그로부터 22년이 흐른 2019년 현재 홍콩의 20~30대 젊은이들에게는 “앞으로 20여년 뒤인 2047년부터는 홍콩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체제가 시행된다”는 현실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40대 후반에서 50대가 되면 홍콩이 사회주의 체제로 변한다는 사실은 홍콩 젊은이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고 그런 절망감을 그린 영화가 바로 ‘10년’이다. 덩샤오핑이 홍콩에 1국가 2체제를 약속한 것은 어린 시절 프랑스에 유학 가서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덩샤오핑은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개방이 제대로 자리 잡으면 중국의 정치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개혁개방과 40년간의 빠른 경제성장 덕분에 강력해진 경제력과 군사력이라는 하드파워를 갖게 된 시진핑의 중국은 정치체제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추구하는 방향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여가고 있다. 그런 중국의 흐름은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홍콩의 사회주의화는 결코 우리가 선택해서는 안 될 미래’라는 판단을 갖게 해준 것이다.

“그래도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되돌아온 것은 잘된 일이 아니냐”는 판단을 우리 입장에서는 할 수 있겠지만, 홍콩인들이 대륙의 표준어를 북방 청나라의 만주족 집권층이 주로 사용하던 ‘만다린(원어는 滿大人의 발음 mandaren)’이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에서 벗어난 것과 홍콩 주민들이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것은 기본 정서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중요한 점은 홍콩을 일국양제로 통합하는 ‘일시적’ 성공을 거두는 데 도움을 줬던 중국의 지식인들, 예를 들어 베이징대학 국제정치학과 원로교수 천펑쥔(陳鋒君)이나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의 스위안화(石源華) 등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근년 들어 “남북한도 1국가2체제에 의한 통합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남북한 통합 방식으로 남북한이 서로의 체제를 일정 기간 인정하는 방식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현재 홍콩이 보여주듯이 한반도의 미래에 커다란 불안 요소를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30년간 남북한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전제하에 통합을 할 경우 그로부터 15년쯤 흐른 한반도에서 현재의 홍콩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체제를 거부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희망하는 시위와 혼란이 벌어질 경우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의 홍콩 시위 사태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마오쩌둥과 김일성의 투쟁 방식을 독재정치에 항거하는 방편으로 생각했던 우리 운동권 출신 집권층에 각성제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세계의 흐름부터 다시 학습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박승준 아시아 리스크 모니터 중국전략분석가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