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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영준의 인생극장] 이명박과 부시, 그리고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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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9호]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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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생극장]이명박과 부시, 그리고 독도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jmedia21@naver.com

▲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부시 대통령을 만나파안대소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는 내 ‘행동(karma·業)’에서 비롯된다. 각자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려면 먼저 행동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늘 ‘행동’을 조심하라.”(세계적 명상 지도자 S. N. 고엔카)
   
   일본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5년 독도 문제를 치고 나와 국내외적으로 공론화(公論化)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 대통령의 직정적(直情的) 성격도 큰 몫을 했다.
   
   어느 나라나 영토분쟁은 있다. 그러나 ‘점령하고 있는 쪽’은 조용하려고 들고 ‘점령하지 못한 쪽’이 시끄럽게 떠든다. 소란스러울수록 영유권 분쟁이 이슈화돼 점령한 쪽이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역대 한국 정부도 독도 문제에 대해 ‘조용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정면으로 반응(reaction)했다. 마치 땅을 빼앗긴 것처럼 흥분했다. 이때 미국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게 일본 계산대로 됐다. 이후 일본은 전 세계 공관을 통해 ‘한국의 불법점유’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으며 집권 자민당, 외무성, 문부과학성의 구체적 작업이 본격화됐다. 한·일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이런 와중에 2008년 2월 이명박(MB) 정권이 출범했다. MB는 우선 삐걱대는 한·미 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해 2008년 4월 미국을 방문했다. 특유의 ‘세일즈맨’ 기질을 발휘해 부시 대통령과 전폭적인 신뢰 관계를 쌓아 한·미 FTA 협상 등 여러 현안을 타결했다. 노무현 정권이 미제로 남긴 한·미 쇠고기협상도 해결했다.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MB는 느닷없는 ‘광우병 파동’으로 큰 홍역을 치른다. 발단은 그해 4월 29일 방영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미국 동물보호협회가 제작한 미 도축장의 젖소 학대 동영상을 ‘광우병 소 도축 장면’으로 둔갑시켰고, “왜 소를 학대하느냐”는 질문을 “왜 광우병 소를 도축하느냐”는 자막으로 날조했다. “한국인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다”라는 허위 주장을 지상파 TV를 통해 방영했다.
   
   국민 감정은 순식간에 ‘안티 MB’로 바뀌고 연일 전국적인 시위 사태로 번졌다. 결국 MB가 손을 들고 6월 19일 사과발표와 함께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단행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상황은 당시 야당과 언론, 노조, 운동권 세력들의 치밀한 기획·선동술의 결과였다. 그들은 MB 정권이 출범과 함께 보여준 일련의 ‘행동’(‘고소영’ 내각, 친박연대 파동, 한반도 대운하 등 급속한 개혁 조치)에 피로감을 보인 민심을 읽고, ‘날조된’ 광우병 문제로 MB를 기선 제압한 것이었다.
   
   상대방의 불행은 이웃에게 호재다. 이때를 놓칠 북한이나 일본이 아니다. 7월 11일 금강산 단체관광을 간 박왕자(53)씨가 내부 경계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북한군 초병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이는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벌어진 최악의 민간인 사건이었다. 나라는 더욱 뒤숭숭해졌다.
   
   7월 하순 난데없는 독도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수년간 일본의 물밑 로비로 미 정부의 독도 귀속국 표기가 당초 ‘한국’에서 ‘주권 미지정 지역(Undesignated Sovereignty)’으로 변경됐다. 독도 별칭 표기 순서도 ‘독도/다케시마’에서 ‘다케시마/독도’로 뒤바뀌었다. 화들짝 놀란 MB는 당시 아프리카를 순방 중이던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대통령 각하, 설명하자면 매우 복잡한 이야기지만 우리 나라를 위해 무조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미국 대통령으로선 이런 ‘사소한’ 문제를 알 필요도 없었고 직접 나설 사안도 아니었다. 그러나 부시는 사귄 지 3개월밖에 안 되는 ‘친구’에게 이렇게 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제 아랫사람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대로 잘 처리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이 비화는 양국 정상 간 은밀한 대화라 이명박 회고록에는 소개되지 않았다.)
   
   부시는 귀국 후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 이 대통령의 입장이 어렵다. 그가 원하는 대로 처리하라”며 한국 독도 표기를 원상복귀시켰다. 그리고 7월 30일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나는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독도에 대한 데이터들을 재검토하도록 지시, 독도 표기를 일주일 전의 상태로 복귀시키기로 결정했음을 기쁜 마음으로 알리고자 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친구이며, 한국민과 미국민도 친구입니다.”
   
   국가 지도자 간 친분은 이래서 중요하다. 한·미 정상외교가 위기 때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부시는 정상 모임 때마다 “‘내 친구’ 이명박 대통령”을 적극 소개하고 다녔다. MB는 국제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고, 그해 가을 세계 금융위기 때 미·중·일과의 금융협력체제(통화스와프 협정)를 이끌어냈다. 2010년 G20 정상회의 개최권도 따낼 수 있었다.(그러나 MB가 2012년 독도를 방문, 결과적으로 일본의 ‘시끄러운 외교’에 일조를 하게 된 배경은 지금도 이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독도는 일개 바위섬이지만 일본에는 전략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일본이 맘먹고 도발을 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소용돌이치며, 잘되면 목줄을 움켜쥘 수 있는 우리의 ‘급소’다.
   
   19세기 일본의 조선 침탈 주역 ‘조슈(長州) 인맥’을 그대로 잇는 아베 정권으로선 호기를 맞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 집권 세력은 무능하고 어리석으며, 한국 사회는 광복 후 가장 심각하게 균열돼 있다.
   
   더구나 지금 미국은 한국 편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다. 지난 8월 문재인 정권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이후 벌어진 우리 군의 독도 방어 훈련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생산적이지 않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때 독도 상공 비행에 대해서도 또다시 “비생산적”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기존 한·미 관계로 볼 때 극히 이례적이며 일종의 ‘경고 메시지’다.
   
   우리에게 독도가 있다면 남미 아르헨티나에는 포클랜드섬이 있다. 아르헨티나 육지에서 500여㎞ 떨어진 이 섬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영국에 복속됐다. 아르헨티나가 1982년 영토를 되찾겠다고 무력 점령했으나 영국에 75일 만에 다시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 영국은 무려 육·해·공 3만명, 항공모함 2척·구축함 8척 등 26척 전단, 항공기 117기를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친구’ 대처 총리 편을 들어 영국을 도왔다.
   

   함영준
   
   조선일보 사회부장ㆍ국제부장, 주간조선 편집장,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관광비서관,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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