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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피니언
[2580호]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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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변호사의 현장일지]외국 기업도 떨게 만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정재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 지난 7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네거리에서 열린 ‘갑질금지법 시행 맞이 캠페인’에서 직장갑질119 관계자가 든 부채 뒷면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내용이 쓰여 있다. photo 뉴시스
“갑질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찬성하지만, 이러한 문제 때문에 최고경영자(CEO)가 감옥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은 과도합니다. 모든 리스크를 CEO가 짊어지게 하는 법안에 대해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김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이 지난 10월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경제연구원의 특별좌담회에서 한 이야기다. 제임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란 지난 7월 16일 시행된 개정 근로기준법을 말한다. 이 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개념화하고, 사용자로 하여금 ‘직장 내 괴롭힘’ 피해근로자, 신고자 보호를 위한 여러 조치들을 하도록 규율하고 있다.
   
   구성원 간의 갈등을 야기하고, 성과 저하로까지 이어지는 직장 내 부조리나 괴롭힘 등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상급자·하급자나 동료를 음해하거나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행위, 비하하거나 모욕하는 언행을 하는 행위 등이 지속되거나 심화되면 구성원의 사기가 저하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회사에 대한 이미지도 매우 나빠질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법이 도입된 것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단순히 직장 내 괴롭힘을 제재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을 업무상 질병에 포함시켜 산업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점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도리어 직장 내 갈등만 유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의 모호함으로 인하여 성과 독려나 야근과 같은 정상적인 기업활동마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치부되는 것은 아닌지, 형사처벌 조항 도입으로 사용자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너무나 모호한 기준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가장 큰 문제는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1)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2)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3)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위 규정만 봐서는 어디까지가 직장 내 괴롭힘이고 어디까지가 정당한 업무지시인지 알기 어렵다.
   
   우선 법 규정상 지위의 우위뿐만 아니라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는 경우도 직장 내 괴롭힘에 포함된다. 이 때문에 사실상 회사 내에서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서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인정될 수 있다. 예컨대 사장이 직원을 괴롭히는 행위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부장·임원을 따돌리는 행위, 특정 학교·지역 출신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 모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 법상 또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경우에만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업무의 적정범위가 무엇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업무상 지시나 주의라고 하더라도 당사자에 따라 그 적정범위가 다를 수 있다. 예컨대 신입사원에게 10년 차 베테랑 사원과 똑같은 영업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은 신체적·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근무환경 악화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식될 수 있다. 격오지 근무를 장기간 시키거나, 사정상 업무에 필요한 비품(컴퓨터, 전화 등)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에도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개념과 기준의 불명확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고용노동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만들기는 하였지만, 결국은 구체적 사정을 참작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이어서 애매한 건 마찬가지다.
   
   
   민노총, 성과 압박·야근도 괴롭힘 규정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정상적인 과업 독려, 성과 증진, 야근, 보직 변경마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실제 민주노총에서 지난 6월 17일에 발표, 배포한 대응지침에는 ‘성과 압박’ ‘야근’ 등의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명시되어 있다. 회사가 인력 구조조정, 성과 압박, 노동강도 강화를 목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주도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되어 있다.
   
   회사가 노조를 탄압할 목적으로 각종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것은 엄연히 금지되고 처벌되어야 하겠지만, 생존·성장을 위한 기업활동마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양하여야 한다. 저성과자에 대한 과업 부여·성과 독려 조치, 기업 구조조정이나 야근이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인정된다면 어떠한 기업이 제대로 된 기업활동을 할 수 있을지 깊은 의문이 든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라 하면 가해자를 형사처벌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법상으로는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용자(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만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가해자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사내 징계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피해를 입은 근로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물의를 일으켰으니 가해자, 피해자 둘 다 회사를 나가라고 하거나, 파문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신고자를 해고하면 대표가 감옥에 갈 수 있다. ‘피해를 입은 근로자’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도 금지되기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주장하면 전보 등 각종 인사조치를 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조항이 지난 10월 21일 한국경제연구원의 특별좌담회에서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에 대한 장애요소로 지적된 부분이다.
   
   
   굳이 사용자 형사처벌해야 하나
   
   법에서 굳이 형사처벌 조항을 둔 이유는 사용자 임의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덮어버리거나 쉬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형사처벌 규정을 통해 범죄자를 양산하는 것이 타당할까. 범죄로 다스리기보다는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과태료 등의 행정적 제재를 십분 활용하여 사안별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개정법은 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지나치게폭넓게 규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개념을 넓게 규정했다면 그 기준이라도 명확하게 하여 사업장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하여야 하나, 과연 제도 도입 전에 그러한 노력을 제대로 기울였는지 의문이 든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직장 파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워먹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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