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함영준의 인생극장] ‘大일본제국’의 적손, 아베
  • kakao 플러스친구facebooktwiteryoutube
  • 검색
  1. 오피니언
[2581호] 2019.11.04
관련 연재물

[함영준의 인생극장]‘大일본제국’의 적손, 아베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jmedia21@naver.com

▲ 지난 10월 22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참석한 아베 총리. photo 뉴시스
‘사무라이 고수(高手)는 보이지 않는 적을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살기(殺氣)의 출현을 즉시 탐지할 수 있는 일종의 ‘영감적 직관(直觀)’이다.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항상 빈틈없는 경계를 하며 살아가야 했던, 봉건시대에 숙련됐다.’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1870~1966), 일본 불교사학자
   
   
   내가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Japan as No.1’이라 불리며 세계 경제를 휘어잡던 1990년대 초반이었다. 일본 주가 총액이 미국을 앞질렀고, 도쿄 땅을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보다 일본 한 기업(일본전신전화·NTT)의 시가 총액이 더 많던 시절이었다.
   
   나는 일본의 괴력이 궁금했다. 우선 주한 일본대사관의 활동부터 궁금해 취재 요청을 했다. 그러나 대사관은 전혀 뜻밖의 태도를 보였다. 우선 사무실 출입부터 막았다. 허용된 장소는 1층 로비 옆 작은 밀실. 자료 요청은 100% 거부됐다. 문화원 홍보책자마저 “재고가 없다”며 거절당했다. 대사관 전 직원에게 나와 접촉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궁리 끝에 일본대사관을 담당하는 우리 정보요원들을 찾아갔으나 이미 그들에게도 ‘함구령’이 내려져 있었다.
   
   대사관은 나를 스파이 대하듯 했다. 이후 어렵사리 취재를 했지만 이 경험은 대단히 유익했다. 일본인들의 실체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투철한 보안의식은 물론, 사소한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는 미시적 두뇌 플레이는 참 대단했다. 막강한 경제력과 기술력 등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일본 주식회사’의 정보력. 그중에도 대(對)한국 정보력은 단연 최고였다.
   
   그 원초적 힘은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대륙 진출, 조선 병탄 및 식민 지배 등을 통해 축적된 자료, 경험, 인맥에서 나온다. 그들은 한국인의 심성, 사회의 허실, 역사를 꿰뚫고 있으며 각계에 상당한 인맥을 구축해 놓고 있다. 평생 한국만 연구하는 전문가, 아예 한국인과 결혼하거나 귀화해 한국인처럼 사는 사람들, 심지어 한국에 뼈를 묻는 숨은(undercover) 정보요원들도 많다. 이는 이들이 ‘대륙낭인(大陸浪人)’으로 불리던 일본 제국주의 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당시 취재에 협조한 한국인 직원의 증언이 지금도 생생하다. 1980년대 초 마에다(前田) 주한 일본대사가 김포공항에서 일본 유력 정치인을 태우고 양화대교를 건널 때였다. 대사는 갑자기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주모자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의 일화를 꺼냈다. 이노우에는 내무·외무대신을 지낸 국가원로인데도, 1894년 직급을 3단계나 낮춰 조선 공사(국장급)로 부임했다. 당시 양화진은 제물포(인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수로(水路)의 관문.
   
   “도착 첫날 양화진 나루터에 내려 서울로 들어오면서 줄곧 가마꾼 걸음 수를 센 겁니다. 가마꾼 보폭에다 걸음 수를 곱해 양화진에서 경복궁까지 거리를 계산했는데 지금 실제 거리와 거의 맞아요. 선배들은 이렇게 철저하게 일을 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도대체….”
   
   부임 1년 뒤인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군인들과 칼잡이 80여명은 경복궁에 침입, 명성황후를 무참히 살해하고 불태워버린 뒤 달아났다. 대부분이 양화진에서 배를 타고 제물포로 가 일본으로 돌아갔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이 대화를 엿들은 한국인 직원은 “섬뜩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고 회고했다. 일국의 왕비를 처참하게 살해한 유례없는 이 사건은 당시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훗날 조선통감), 조선주둔군 사령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훗날 육군 원수·총리) 등의 묵인하에 이노우에가 기획하고, 후임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전 육군 중장에 의해 실행됐다.
   
   이들이 바로 이후 한반도 식민 지배를 주도한 조슈(長州) 출신들이다. 지금은 야마구치(山口)현으로 불리는 조슈는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대부분의 제국주의 침략과 전쟁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일본 정·관·군을 지배하는 총본산이다.(심지어 조폭 ‘야마구치파’도 야쿠자 최대 세력이다.)
   
   역사상 일본 최장 총리로 거칠게 한국을 다루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역시 이곳 출신이다. 아버지가 외무상, 외조부 2명이 총리, 고조부가 구한말 조선 주재 일본군 사령관을 지낸 조슈 인맥의 황태자다.
   
   그는 두 번째 총리 취임 8개월 뒤인 2013년 8월 13일 기자들을 대동하고 고향 야마구치(조슈)로 내려가 ‘가장 존경하는 영웅’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 ~1859)의 묘소를 참배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겠다”고 맹세했다. 도대체 쇼인은 누구며 ‘올바른 판단’은 무슨 뜻인가.
   
   하급 사무라이 집안 출신인 요시다는 19세기 막부체제 파괴 등 초강경 체제변혁을 꾀해 29살에 국가보안법으로 처형되지만 그전에 사설학원(松下村塾)을 설립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 일본 제국주의 주역들을 직접 길러냈다. 그의 세계관은 옥중에서 쓴 ‘유수록(幽囚錄)’에 그대로 나와 있다.
   
   ‘조선을 속국화하고, 만주·대만·필리핀 일대를 노획한다. 열강과의 교역에서 잃은 국부를 조선과 만주에서 보상받아야 한다.’
   
   이들에게는 ‘서울에 남겨둔 꿈(漢城之殘夢)’이 있다. 19세기 일본 대표 지식인이자 게이오대 설립자 후쿠자와 유키치의 말처럼 “조선은 빼앗길 수 없고, 빼앗겨서도 안 되는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의 땅”이다.
   
   결국 아베의 다짐은 ‘일본의 우경화’를 넘어서 ‘대(大)일본주의 부활’을 통해 제국의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결의다. 그래서 과거사를 무시하고 군사 재무장을 추구하며 평화헌법 철폐 및 개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는 지난 10월 4일 의회 연설에서 보다 확실한 본심(本音·혼네)을 드러냈다.
   
   “일본은 100년 전 구미의 식민주의에 맞서 인종평등을 위해 나섰습니다.”
   
   그의 영웅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을 사실상 옹호한 발언이었다. 이제 아베세력은 절호의 찬스를 맞았다. 이웃 한국 사정은 엉망이고 일본 여론은 결집되고 있다. 게다가 세계 도처가 어수선한 상황이며 미국도 더 이상 한국 편이 아니다.
   
   앞으로 한·일 간 일촉즉발의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아마도 2020 도쿄올림픽 이후가 아닐까. 올림픽 개최로 일본에 대한 호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때, 만약 일본이 독도를 비롯 한국에 장난을 치려든다면 어떨까. 우리의 군사력은 대응할 만한가. 국제 여론은 어디로 향할까.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