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반대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수사를 촉구하는 시민들이 지난 11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집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공수처 반대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수사를 촉구하는 시민들이 지난 11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집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나는 ‘유랑보수’다. 2016년 4월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진실한 사람’ 공천 파동에 질려 정들었던 집을 나왔다. ‘헌법보다 의리’라는 진박 감별사의 봉건적 발언은 정말이지 ‘어이상실’이었다. 집토끼였던 나는 산토끼가 되어 정치적 유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래도 투표소에서는 미워도 다시 한번 1번 후보를 찍었다. 그러나 정당투표는 국민의당을 선택하였다. 20대 총선 정당득표율에서 국민의당(26.74%)이 민주당(25.54%)을 앞선 것을 보면, 아마도 나처럼 ‘교차투표’한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야권분열이라는 역대급 호조건 속에서 제2당으로 내려앉은 새누리당은 참패의 교훈을 찾지 못한 채 대통령의 비서를 당 대표로 선출하는 퇴행적 모습을 연출하였다. 그리고 그해 겨울 최순실과 함께 몰락의 늪에 빠졌다. 실망과 분노에 사로잡힌 나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는데 새누리당 당원들을 여럿 만났다.

권력은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분열로 망한다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다. 박근혜가 최순실에게 의존하지 않고 ‘진실한 사람’만이 아니라 쓴소리하는 사람도 등용하였더라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여 천인공노할 국정농단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야당이 꼬투리를 잡아 탄핵을 추진했다 할지라도 60명이 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동참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는 보수의 가치 실현에 복무한 대통령이 아니라 보수의 가치 위에 군림한 대통령이었다. 그의 탄핵은 외부 충격에 의한 폭파(explosion)가 아니라 자체 모순으로 인한 내파(內破·implosion)였다.

문재인은 최대의 수혜자였다. 노무현은 대통령 시절 “한국 정치판은 보수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탄식하였는데, 박근혜가 정반대로 만들어준 것이다. 2017년 5월 대선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파면을 결정하고 반기문이 출마를 포기함으로써 싱거운 게임이 되어버렸다. 홍준표의 거친 언사는 보수의 품격이라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투표를 포기하였다.

나는 보수 성향이라 문재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받아들였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될 것이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널리 등용하겠다는 취임사를 들으며 “그래, 박근혜보다는 낫겠지”라고 기대하였다.

한편 자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 단 이후에도 보수정치인들은 폭망에 대한 성찰은 제쳐두고 서로를 삿대질하기 바빴다. 대선에서 참패한 홍준표의 당 대표 복귀는 보수정치의 리더십 부재, 인물 빈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가 2017년 11월 10~11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자신을 보수라고 응답한 사람 중 약 40%만이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31.4%) 또는 바른정당(7.7%)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나머지는 민주당 지지 30.6%, 국민의당 지지 3.7%, 정의당 지지 3.2%, 지지정당 없음 18.4%로 나뉘었다. 보수 유권자의 60% 정도가 보수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도움으로 남북 화해의 훈풍까지 불자 자유한국당은 2018년 5월 지방선거에서 대패하였다. 전통적 텃밭이었던 PK가 싹 넘어갔다. TK는 보수의 아성이 아니라 고립된 섬이 되었다.

이제껏 반사이익은 야당의 전유물이었다. 집권세력이 국정을 운영하다 보면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터지고, 야당은 반사이익을 챙겼다. 그러나 지난 2년여간 이 경험칙은 들어맞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이 야당 복(福)을 누렸다. 자유한국당은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한 최초의 야당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인생이 유전(流轉)하듯이 정치도 유전한다.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문재인 정권은 어느덧 권력에 취해버렸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안 하던 짓이라며 이명박 정권 시절 권재진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직행을 비난했던 이들이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밀어붙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조국은 집권 386의 위선과 탐욕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민낯은 진영을 막론하고 상식과 염치를 중시하는 다수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화가 난 사람들은 10월 3일과 9일 광화문일대에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유랑보수인 나도 모처럼 광장을 찾았다.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이 동원한 사람들이라고 폄하했는데, 이는 한국당의 능력을 매우 과대평가한 것이었다. 자유한국당의 동원력은 구름 인파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조국 수호를 외친 서초동이 일사불란(一絲不亂)이었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광화문은 중구난방(衆口難防)이었다. 그럼에도 2019년 10월 3일과 9일은 광장정치의 주도권을 중도보수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조국 사태는 집권세력의 자업자득, 자승자박이었다. 권력에 취하면 약도 없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지지율이 속절없이 무너지자 대통령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상식의 승리였다. 그런데 축포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자유한국당이 표창장과 상품권 소동을 벌인 것이다. 욕의 용처를 정확히 알려준 사건이었다. 모처럼 반사이익을 챙겼던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조국 사태 이전으로 원위치했다. 밥상 차려주었는데 먹기 싫다고 스스로 걷어찬 꼴이었다.

황교안은 대표가 된 지 250일이 넘었는데 안정적 목소리 말고는 보여준 것이 없다. 혁신과 통합이라는 양대 과제에서 의미 있는 진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박찬주 등 인재영입 소동은 황교안의 한계를 극명히 보여주었다. 실력 있는 작명가들은 이름을 지을 때 사주팔자에서 나타난 강점을 누르고 약점을 돕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원칙을 따른다. 중도, 청년, 비(非)영남, 4차 산업혁명이 자유한국당이 찾아야 할 코드이거늘 거꾸로 기존 컬러를 더 강화하고 있다. 지난 11월 6일 황교안은 따가운 여론에 밀려 자유우파의 대통합을 위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였으나, 진정성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리서치의 지난 6월 6~7일 조사(1000명 대상) 결과를 보면, 박근혜 탄핵 이전의 새누리당 지지층 중에서 65%는 자유한국당 또는 바른미래당 지지로 돌아왔지만 35%는 복원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랑보수가 꽤 되는 것이다. 유랑보수는 작금의 정치현실이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 본다. 집권세력이 눈이라면 한국당은 서리다. 조선일보 2019년 7월 6일자 ‘한국 떠나는 국민, 금융위기 후 최다’라는 1면 기사를 보면 정권교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이민 사유로 거론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성공하려면 이 유랑보수를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꾸고 거듭나야 한다.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는 이건희식 어법을 빌리자면, 당원 빼고 다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유랑보수의 방황은 계속될 것이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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