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진 정치학자 한 분이 저에게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선거법 개정안이 “대략 난감하다”고 털어놓더군요.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로부터 선거법 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나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분이 평소 거대정당 독식을 허용하는 현행 선거법을 비판해온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입장에 처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여당이 밀어붙이는 선거법 개정안을 보면 그냥 잡탕이에요. 100%도 아니고 50% 연동을 한다는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명분도 쭈그러든 데다가 석패제 도입 얘기까지 나오니…. 뭐를 하겠다는 취지인지 잘 모르게 돼버렸어요.”

평생 정당정치를 연구해온 학자가 이런 말을 하는데 일반인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저 역시 정치 기사를 꽤 오래 써왔지만 여러 가지 버전으로 난무하고 있는 선거법 개정안을 보면 마치 난수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무조건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여당의 욕심과 군소 야당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리저리 뜯어고쳐진 안들이 정당별 예상 의석수도 늘렸다 줄였다 합니다. 유권자들이 던지는 한 표가 어떻게 국회 의석수에 반영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계산법이, 안 그래도 심각한 정치혐오와 무기력증을 부채질하는 것 같습니다.

‘난감하다’는 반응은 여당 내부에서도 나오는 모양입니다. 마감날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유심히 읽어봤습니다. 민 의원은 ‘선거법으로 무엇을 얻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글 말미에 ‘만약 개정 선거법을 갖고 21대 선거에 임해서 그 결과가 선거법상의 구조로 인해 과반수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나왔을 때 지지자들은 선거에 패배한 것이라고 하면서 민주당에 돌을 던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더군요. 민 의원에 따르면, 개정 선거법은 어떤 안이 됐든 구조적으로 원내과반수 정당의 출현을 막는다고 합니다. 대신 다수의 소수당이 원내에 진출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이 경우 고질적인 식물국회가 우려된다는 지적입니다. 민 의원의 글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원내 제1당이 과반수가 안 된다면 캐스팅보트를 쥔 여러 정당 혹은 원내 제2당과 주고받기를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되면 국정도 올스톱, 국회도 올스톱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예 내각제를 도입해서 연정을 구성해 과반수를 확보하게 하거나, 이원집정부제를 통해서 총리를 국회가 사실상 선출하게 하는 변형된 이원집정부형 연정을 제도화해야 국정운영이 가능하다. 연정 없이 사안마다 협상으로 문제를 풀라고 하고, 풀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면 개정 선거법은 이득이 하나도 없을까요. 앞서의 정치학자는 ‘거대 여당의 탄생을 막을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고 지적하더군요. 노무현 정부의 열린우리당이나 이명박 정부의 한나라당처럼 대통령제하에서 거대 여당이 탄생하면 밀어붙이기식 무리한 정책이 국정을 마비시키기 일쑤였는데 그 우려는 덜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또다시 본래의 의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우리 정치권이 다당제하에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낼 능력이 있긴 있을까요.

선거법 개정은 우울하고 화나는 뉴스로 인해 달아오른 머리를 더 아프게 하는 사안이지만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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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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