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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7호]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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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읽기]사면초가에 빠진 기초과학연구원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기초과학연구원(IBS) 대전 본원에서 지난 12월 10일 ‘IBS 과학문화센터’ 개관식이 열렸다. 노도영 IBS 원장(오른쪽에서 네 번째) 등 참석자들이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photo IBS
기초과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명분으로 2011년에 설립한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입지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은하도시’라는 뜬금없는 대선 공약으로 시작된 IBS가 여전히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탈원전으로 중무장한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정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여야 모두가 2017년부터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IBS에 대한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석연치 않은 연구단 단장 선정, 방만한 운영, 부진한 중이온가속기 건설 등에 대한 전방위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다. 결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작년부터 IBS에 대한 행정감사를 통해 연구비 집행, 해외 장기출장, 연구원 채용 등 적지 않은 부정·비리 사례를 밝혀냈다. 유전자가위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진수 박사도 연구비 문제로 내부 징계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과기부의 감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과학계 내부의 시선도 차갑다. IBS의 탄생과 운영의 모든 면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IBS가 집단연구 만능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바탕으로 탄생했고, 기초과학에 돌아가야 할 예산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거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IBS의 입장에서는 우군(友軍)을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도 한국 정부가 정략적인 이유로 ‘노벨상 프로젝트’인 IBS를 축소해버릴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결국 전임 원장까지 나서서 과학계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내놓았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국감과 과기부 행정감사, 과학계의 외면
   
   노벨상이 세계 최고의 업적을 이룩한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정부가 그런 노벨상을 목표로 노력하는 유능한 과학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벨상이 연구의 진정한 ‘목표’가 아니라 연구비 확보를 위한 ‘핑계’인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아무도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엉터리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핑계로 과도하게 연구비를 독점하고, 허세(虛勢)를 부리는 경우가 그렇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실제로 정부가 노벨상을 핑계로 스톡홀름에 주재관을 파견한 적도 있었고, 누가 보더라도 말이 안 되는 엉터리 노벨상 프로젝트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던 적도 있었다. 노벨상을 핑계로 하는 정부와 과학계의 헛발질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IBS의 노벨상 집착에 대한 과학계의 분명한 인식이다.
   
   IBS는 노벨상 논란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목표가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노벨상은 기초과학 육성이라는 IBS의 설립 목표를 가장 분명하게 설명해주는 훌륭한 은유적 표현이다. 하지만 IBS가 ‘미래의 성장동력’을 목표로 한다는 엉터리 주장은 부끄러운 것이다. 자연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암흑물질과 중성미자의 연구를 미래의 성장동력 개발을 위한 노력으로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미래의 발전 방향을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처음부터 목표가 뚜렷한 응용·개발에 대한 지원과 똑같을 수는 없다. 기초과학에서는 ‘더 현실적인 연구’를 ‘더 잘할 수 있는’ 과학자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풀뿌리’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정부가 풀뿌리 지원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분야와 과제에 따라 대규모 집단연구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연구력이나 창의성이 유별나게 뛰어난 과학자에 대한 집중 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 더욱이 무차별적인 풀뿌리 지원은 사회적으로 ‘나눠 먹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연구자와 연구 주제에 대한 합리적인 선택과 연구비의 적절한 집중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IBS를 통해 선택과 집중을 시행하는 것을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노벨상 핑계 대는 헛발질
   
   IBS가 대선에서의 혼란스러운 정치적 논란을 통해 탄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초과학이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정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기초과학만 맹목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고집할 수도 없다. 그러나 옹색한 ‘은하도시’에서 출발한 IBS를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의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
   
   IBS에 대한 과학계의 비판적 지적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과학계의 입장에서 IBS의 연구단 단장 선임과 지난 8년 동안의 연구 활동은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연간 100억원의 연구비 지원액은 과도하다는 것이 과학계의 평가이다. IBS에서는 평균 지원 규모가 60억원 수준이고, 그것도 평균 60여명의 연구원이 쓰는 총액이라고 옹색하게 해명을 하고 있다. 연구단의 단장이 거액의 연구비를 혼자 쓰는 것이 아니고, 연구단의 성과를 논문 편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해명은 정치인 수준의 동문서답(東問西答)이다. 이제 와서 굳이 누구나 알고 있는 IBS의 정체성이나 연구단 단장의 자율성에 대해 각오를 새로 다질 이유도 없다. 연구단의 성과가 지원 규모에 비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 과학계의 지적이다.
   
   IBS가 심각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지금까지 IBS는 우리의 소중한 예산으로 우리 땅에서 운영되는 ‘다른 나라’의 연구소로 인식되고 있다. 단장 선임도 남의 몫이고, 연구 성과의 평가도 남의 몫이다. 단장들도 해외 출장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국내 학술단체의 학술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연구단에서 활동하는 국적 불명의 젊은 과학자들의 미래도 걱정스럽다.
   
   과기부의 집요한 감사가 과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윤리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IBS가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단장에게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윤리적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행정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주장은 어설픈 것이다. 윤리 문제가 행정지원이 부족해서 생긴 것도 아니고, 윤리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단장에게는 자율권을 보장해줄 수 없는 법이다. 자율권과 강력한 행정지원이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
   
   전국의 대학에 설립해놓은 ‘분원’에 대해서도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열악한 시설과 재정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IBS 분원을 유치할 수밖에 없는 사립대학의 입장이 난처하다. IBS 명성이 어려운 사립대학을 구원해주지 못하는 형편이다. IBS가 단군 이래 최대의 연구시설이라는 중이온가속기를 설치·운영하는 명분도 분명하지 않다.
   
   이제 IBS도 우리 과학계에서의 책임과 의무에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스스로 ‘석학’을 자처하려면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겸손한 자세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 도대체 IBS가 일본의 이화학연구소와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무엇을 벤치마킹했는지가 분명치 않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이 8년이 지난 IBS를 아직도 ‘우리’ 연구소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IBS를 탓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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