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니스트 김형자씨가 쓴 이번호 과학 기사 내용이 꽤 흥미롭습니다. 새롭게 밝혀진 노화의 비밀에 대한 것인데, 통념과는 많이 다릅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신경과학자 토니 와이스-코레이(Tony Wyss-Coray) 교수팀이 18~95세 4263명의 혈장단백질을 분석한 결과 사람은 ‘서서히’ 늙는 게 아니라 ‘세 번’ 늙는다는 겁니다. 34세, 60세, 78세가 이른바 노화의 변곡점으로, 이 시기 노화가 급속하게 일어나는 ‘노화 부스터’를 겪는다는 것이 연구 결과입니다. 저를 기준으로 삼으면 이미 한 차례의 노화 변곡점은 거쳤고 두 차례의 노화 부스터가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34세를 지나면서 실제 제가 팍 늙어버렸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두 차례의 노화 변곡점 때는 제 스스로의 변화를 눈여겨 지켜봐야겠습니다.

최근 송년 모임 자리에서 만난 한 고등학교 동창은 그렇게 좋아하던 등산과 달리기를 끊었다고 선언해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철인 3종 경기에도 나갈 만큼 운동 매니아였던 그 친구가 등산과 달리기를 중단한 이유가 ‘연골 보호’ 때문이랍니다. 곧 다가올 은퇴 후에 세계 곳곳으로 트레킹을 다니는 것이 꿈인데 연골을 혹사하다가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할까봐 아예 무리한 운동을 끊기로 했다는 겁니다. 이 친구의 선언 이후 운동을 하는 게 연골에 좋으냐, 아니냐를 두고 친구들 사이에서 나름 과학적 근거를 들이댄 옥신각신이 벌어졌는데 저는 늙음과 무리하게 맞서지 않기로 한 결정이 현명하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이런 제 생각은 이번 과학 기사에 소개된 ‘우아하고 곱게 늙는 법’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미국 애리조나대 의대 앤드루 웨일 교수에 따르면, 노화를 부정하고 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야말로 우아하고 곱게 늙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합니다. “노화를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수용하면서 지혜, 깊이, 부드러움 등 노년이 주는 장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염색체 끝에 달린 텔로미어가 세포분열을 통해 점점 짧아지는 것이 과학으로 들여다본 늙음의 정의입니다. 인간의 텔로미어는 최장 120년이 되면 더 이상 짧아질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는데 텔로미어가 더 이상 짧아지지 않는 순간이 곧 죽음입니다. 이 한정된 시간이 자꾸 줄어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서글프고 가혹한 일이지만 그 피할 수 없는 생명의 법칙을 맞이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늙음에도 층위가 있다고 말합니다. 영어로 늙음을 뜻하는 에이징(aging)에도 각기 다른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예컨대 ‘성공적인 노화’도 그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노년학자 로위와 칸(Rowe & Kahn)은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ing)’라는 저서에서 성공적 노화를 ‘질병과 장애가 없고, 인지적 기능과 신체적 기능을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인생 참여를 지속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써놓고 보면 무척 평범한 얘기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달성이 쉽지 않은 목표입니다. 전문가들은 ‘포지티브 에이징’이라는 말도 쓰는 모양입니다. 늙음이 젊음의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와 힘을 맞이하는 것으로 발상과 시각의 전환을 하자는 건데 한 해를 보내면서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순간에 위로가 되는 얘기일 겁니다.

캐럴도 잘 들리지 않는 스산하고 어수선한 연말이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올 한 해 주간조선을 아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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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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