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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0호]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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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험난한 공영방송 정상화의 길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2020-01-07 오후 1:09:05

▲ 박대출 자유한국당 KBS 특위 위원장, 박성중 자유한국당 미디어특위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난해 10월 16일 서울 여의도 KBS 정문 앞에서 KBS 편파보도 항의 및 양승동 사장 사퇴 촉구 규탄대회를 하는 동안 전국언론노동조합KBS본부가 뒤편에서 자유한국당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몇 년 전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침 그 자리에 지상파 보도국장이 두 명이나 있어 자연스럽게 방송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회사는 달랐지만, 두 보도국장의 고민은 같았다. 청와대 관련 뉴스를 어떻게 다루고 청와대의 각종 요청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그들의 가장 큰 업무 스트레스였다.
   
   1980년대의 ‘땡전뉴스’는 사라졌지만 권력의 방송 개입은 여전하다. 방송법 제1조는 법 제정 목적에 대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라고 시작하고 있지만, 현실은 영 다르다. 공영방송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지 30년이 넘었고 그간 세 차례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 경영진 구성은 여전히 정권의 전리품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그간 KBS 이사는 7 대 4,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6 대 3의 비율로 여야 정치권이 나눠 추천해왔다. 법적으로는 대통령 직속 방송통신위원회가 KBS 이사들에 대한 추천권을 행사하고, MBC 및 EBS 이사회에 대해서는 이사 임명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으나, 관행적으로 여2 대 야1의 비율로 추천이 이뤄져 왔다. KBS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MBC 사장은 방문진 이사회에서 의결(재적 과반)해 추천하고 MBC 주주총회에서 선정하나, 사실상 청와대가 내정한다.
   
   2016년 6월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 162명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며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여야 7 대 6 구성으로 조정, 사장 선출 시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특별다수제’ 도입, 법 통과 시 3개월 안에 공영방송 사장 및 이사 재구성 등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2017년 8월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마디에 이 개정안은 백지화되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은 이렇듯 늘 다르다. 야당 시절에는 공영방송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외치다가도, 집권하면 거꾸로 장악해 정권의 나팔수로 활용하려 든다.
   
   공영방송을 진정한 국민방송, 공정방송으로 만드는 것은 검찰의 독립성과 공정성 실현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현실의 KBS, MBC는 정권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조직이 되어 버렸다. 여의도 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피아(彼我) 구분과 진영논리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MBC 편성제작본부장을 지낸 김도인 방문진 이사가 지난해 12월 펴낸 ‘적폐몰이, 공영방송을 무너뜨리다’(프리뷰)는 한마디로 우리 공영방송의 슬픈 자화상이다. 1986년 라디오 PD로 MBC에 입사해 ‘시선집중’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등의 시사 프로그램과 ‘별이 빛나는 밤에’ ‘싱글벙글 쇼’ 등의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김도인은 방송인으로서의 직업윤리에 투철한 비(非)정치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라디오 주요 부장과 국장 등 관리직을 거치면서 지독한 진영논리에 입각해 노영(勞營)방송을 지향하는 강성노조의 표적이 되었고, 결국 2017년 정권교체 이후 언론 부역자, 적폐로 찍혀 30년 이상 근무한 정든 일터에서 강제 퇴출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도인은 언론노조의 철밥통이자 놀이터가 되어버린 공영방송 MBC의 적나라한 실상을 쫓겨난 자의 원망과 울분이 아니라 꼼꼼한 기록과 조사에 기초해 쿨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당시 방송계의 핫이슈가 되었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였던 김미화씨 사건 기록은 그간 우리가 몰랐던 진실을 알려준다. 김도인은 경영진의 교체 요구로부터 김미화를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고, 이후 김미화의 KBS 블랙리스트 폭탄 발언으로 교체가 불가피했던 상황에서도 타 프로그램 진행자로의 역할 이동을 제안하는 등 합리적 조정자로서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 같은 노력이 노조의 왜곡과 각색에 의해 오히려 방송 자율성을 침해한 부당한 외압의 앞잡이로 공격당하는 빌미가 되었다.
   
   ‘국민 아나운서’로 불리는 김동건 선생은 2003년 KBS 정연주 사장체제가 들어서고 첫 개편 때, ‘가요무대’ 제작진으로부터 “다음 주부터 나오지 마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동건 아나운서는 깨끗이 물러나 주었다. 자신들이 권력을 쥐면 버젓이 그런 일을 자행하면서, 자기편 사람이 교체될 것 같으면 부당한 탄압이라고 온갖 수단을 총동원하여 상대를 무차별 공격하는 좌파의 내로남불은 방송계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MBC 최승호 사장은 과거 경영진을 ‘인간 백정’에 비유했는데, 정작 그의 사장 취임 이후 10명이 해직되었고 6명이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전임 보도본부장에게 아침 뉴스 영상물에 색인을 붙이는 업무를 시키기도 했다.
   
   관찰자들은 정권교체 때마다 홍역을 앓는 공영방송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좌우 피장파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드러나는 양태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에는 큰 차이가 있다. 2018년 8월 공영방송 이사진의 개편을 앞두고 언론노조 등 좌파 단체들은 정치권의 개입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조성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그들은 ‘방송독립시민행동’이란 연합체를 결성하고 공영방송 이사 시민 검증단을 방통위원회에 제안하였다. 요컨대 이들의 정치권 개입 차단은 민주당이나 정의당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능히 자체 역량으로 해낼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지극히 정치적인 슬로건이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에 대해 좌파 인사들은 목청을 높여 규탄했다. 그런데 정권교체가 되자 언론노조는 언론 부역자 명단을 수차례에 걸쳐 발표하였다. 2017년 3월 종편의 재승인을 앞두고 비상시국회의라는 단체가 ‘퇴출이 필요한 출연자’ 11명을 선정했는데, 실제로 대부분 실현되었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을 갈등 증폭이 아닌 갈등 조정과 공론 형성이라는 본래의 길로 재진입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 것일까. 김도인은 방송법 제6조9항(방송은 정부 또는 특정 집단의 정책 등을 공표함에 있어 의견이 다른 집단에게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이 선언적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만들 것, 방송법 제4조2항(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의 ‘누구든지’에 노조도 포함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다. 설득력 있는 제안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방송의 공정성을 이유로 노조가 방송 내용에 개입하거나 총파업에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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