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야당의 적은 여당이 아니다. 정확하게 야당 내부에 있다. 싸워야 할 적이나 풀어야 할 문제가 결코 외부에 있지 않다. 오로지 내부에 산적해 있다. 야당은 집안 싸움이나 정파 간 패권다툼이라는 지리멸렬한 자중지란에 만성적, 고질적으로 빠져 있다. 여당과 정책 경쟁을 하거나 국민의 민생을 챙길 여유나 겨를이 없을 정도로 부질없는 소모전에 매몰돼 있다.… 여당은 이제 그런 야당이 익숙하다. 어느덧 야당을 경쟁자나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혀를 차고 조롱하며 구경만 하는 안타까운 대상쯤으로 본다.’

이런 지독한 비판의 대상이 된 ‘야당’은 어디일까요? 총선 패배 후 비대위도 구성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미래통합당을 떠올리겠지만 여기서 야당은 문재인 대표가 이끌던 새정치민주연합입니다. 2015년 11월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 글은 선거마다 깨지는 야당을 향해 ‘정당은 동아리나 패거리가 아니다’라며 날 선 비판을 가했습니다. 총선 패배 후 아무 희망 없이 표류하는 지금의 야당에 비춰보면 불과 5년 전에 여야의 처지가 정반대였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생소합니다.

하지만 실제 그랬습니다. 그때만 해도 문재인 대표와 제1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의 미래통합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처지였습니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절치부심 끝에 당권을 잡았지만 문재인 대표는 2015년 4월 치러진 4·29 재보선에서 참패하면서 혹독한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새누리당에 과반 승리를 안겨준 2012년 19대 총선과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2012년 대선에서 잇따라 패하면서 야당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련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다시피 당시 야당은 살아났고 대통령을 배출해낸 여당이 됐습니다. 살아난 정도가 아니라 이번 총선의 대승을 발판으로 진짜 장기 집권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일고 있습니다. 반대로 야당과 그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는 일본식 1.5당 체제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그런 우려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 쪽입니다. 한국 민주주의와 우리 유권자들의 역동성을 나름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의 정치지형이 좌가 됐든 우가 됐든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지금의 여당에서 나온 분석입니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2016년 4.13 총선 승리 이후 펴낸 정권교체 전략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정치지형은 ‘디스코 팡팡’으로 규정돼 있습니다. ‘한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은 왼쪽으로 급격히 쏠렸다가 다음 번에는 오른쪽으로 급격히 쏠린다’는 겁니다. 당시 보고서는 대선을 한 번 치를 때마다 표심 변화를 보이는 485만~651만명의 부동층을 잡지 못하면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600만 부동층이 변화를 일으키는 ‘디스코 팡팡’이라면 야당도 다시 뛰어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단, 600만명의 마음을 사로잡을 변화와 혁신을 전제해야겠지만 지레 패배주의에 사로잡힐 이유는 없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야당에 활로를 뚫어준 2016년 총선 승리가 오만한 여당의 계파싸움 덕분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한국 정치는 언제라도 여야가 뒤바뀔 디스코 팡팡이 진짜 맞는 듯도 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키워드

#마감을하며
정장열 편집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