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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퇴출 운명 석탄과 우라늄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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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호]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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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퇴출 운명 석탄과 우라늄을 위한 변명

정재준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 

▲ 충남 태안군 석탄가스화복합화력발전소. photo 뉴시스
연탄에 관한 기억은 아련하고 따뜻하다. 어린 시절 어른들은 늦가을에 김장을 담그고 초겨울에 창고 가득 연탄을 들여놓으면 겨울을 푸근하게 맞았다. 오랜 기간 가정에서 사용됐던 연탄은 석유, 가스 그리고 전기에 밀려 이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연탄 한 장의 힘
   
   연탄이 한 일은 대단하다. 가정용 연탄 한 장은 대략 1만6000㎉의 열을 낸다. 연탄 두 장이면 방 한 개 하루 난방과 4인 가족 조리가 해결됐다. 연탄 한 장이 내는 열은 100㎏의 역기를 바닥에서 2m 높이로 약 1만1000번 들어올리는 힘에 해당한다. 열을 일로 바꿀 때 전환 효율을 대략 33%로 가정한 결과다. 역기 한 번 드는 일을 삽질 다섯 번으로 쳐준다면 연탄 한 장이 삽질 5만5000번을 대신해 준다는 말이다. 물론 증기기관이나 내연기관 등이 필요하므로 비용이 추가된다. 그렇지만 1000원 남짓한 연료비로 엄청난 노동을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탄 한 장을 하찮게 볼 게 아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산림녹화는 사실 석탄과 연탄이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석탄이 엄청난 노동을 대신했고, 연탄 덕분에 산에 나무가 무성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연탄이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 있다. 그뿐 아니라 석탄 자체가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석탄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석탄발전소는 국내외에서 퇴출되고 있다. 온실가스와 공해의 주범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석탄은 서운할 것이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동력원은 석탄이었다. 산업혁명은 급격한 인구증가로 이어진다. 그 덕분에 생명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 석탄을 인류와 환경의 적으로 지목하고 퇴출시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석탄 300만분의 1로 같은 힘 내는 우라늄
   
   우라늄도 마찬가지다. 직경 0.45㎜ 크기 우라늄 알갱이 하나면 연탄 한 장의 열을 만들 수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크기의 우라늄 알갱이에서 그 많은 에너지가 나온다. 원재료의 무게를 비교하면 우라늄은 석탄의 300만분의 1도 안 된다. 그야말로 초고밀도 에너지원이다. 그러니 폐기물의 양도 상대적으로 아주 적다. 석탄과는 달리 대기오염 물질과 온실가스도 뿜어내지 않는다. 그 덕분에 지난 40여년간 값싸고 친환경적으로 전기를 공급해 왔는데 방사선 공포 때문에 이제 점차 퇴출될 운명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은 탈석탄·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석탄과 원자력 발전량 감축은 재생에너지와 LNG발전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생각해 볼 게 많다.
   
   사라질 기술은 인위적으로 억누르지 않아도 사라진다. 석기시대가 돌 사용을 금지시켜 끝난 게 아니다.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난 것도 아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를 거쳐 왔지만 지금도 돌은 요긴하게 쓰인다. 석탄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문제라면 이산화탄소 발생을 제한하면 되지 않을까? 석탄 연소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회수하든지 다른 방법으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회수하여 순배출을 막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다양한 해법을 모색한다.
   
   원자력도 마찬가지다. 원자로에서 생성되는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면 사람과 환경에 유해하다. 그래서 겹겹이 감싸서 가두어 두는데 그 기술은 어렵지 않다. 2011년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이런 주장이 무색해졌으나 그동안 안전을 지키는 기술은 꾸준히 발전해 왔다.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은 원자력을 통제가능한 위험으로 생각하며 계속 활용하고 있다. 원자력 사용을 점진적으로 줄이거나 막을 게 아니라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볼 일이다. 과학기술은 늘 도전하면서 진보해 왔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바람직하다. 친환경적이며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많이 남아 있다. 태양광은 밤에 전기를 못 만들고 낮에도 일조량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풍력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하다. 이와 같은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ESS)에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도록 하는데 아직은 불안정하고 가격이 비싸다.
   
   
   그리드 패리티는 진짜 오고 있나
   
   재생에너지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막대한 부지를 들 수 있다. 국토는 좁고 인구는 많은 나라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부지 확보는 쉽지 않은 문제다. 태양광으로 우리나라 전기를 100% 공급하려면 서울시 면적의 10배 정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다. 이는 국토 면적의 약 6.5%에 해당한다. 두 문제 모두 간단하게 해결하기는 쉽지 않으며 현실적으로는 비용 문제로 부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재생에너지의 발전 단가가 기존 화력발전 단가와 같아지는 시점, 즉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가 곧 다가온다며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두세 배 비싼 대가를 치르고 미리 전환하기보다는 연구개발하면서 완급을 조절하는 편이 좋아 보인다. 성급한 투자가 자칫 미래의 좌초자산을 양산할 수 있다.
   
   원자력과 석탄의 공백을 메워줄 LNG 또한 문제가 적지 않다. LNG발전은 짧은 시간에 전기생산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어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데 아주 유용하고, 석탄에 비해 청정하다. 그렇지만 LNG발전소는 2차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질소산화물을 석탄보다 많이 발생시키기 때문에 도시 미세먼지 관점에서는 정말 청정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LNG발전소의 77%가 인구밀집 지역에 설치되어 있기에 더 그렇다. 아무래도 가까우면 악영향이 더 크다.
   
   한편 LNG발전은 이산화탄소를 석탄발전의 60% 정도 배출하는 데다 그 요소가 되는 메탄가스가 누설될 때는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80배 이상 되기 때문에 기후변화 대처에 썩 우수한 수단이 아니다. 나아가 LNG가 석탄에 비해 비싸고 가격변동성이 크며 비축성이 떨어지는 점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아주 불리하다. ‘물 좋고 정자 좋은 데는 없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념을 따지지 않고 무지와 부주의를 파고들며 전파된다. 과학기술이 이념과 무관하다 할 수 없으나 이념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어찌된 일인지 에너지 정책은 정파에 따라 답이 정해져 있다. 지금 정책이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18세기 이후의 노동해방이 투쟁의 산물인 듯하지만 사실은 과학기술 발전의 공이 결정적이다. 석탄과 원자력은 과학기술 문명의 틀에서 자연스럽게 진화하든지 도태할 것이다. 행여라도 이념으로 재단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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