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전 의원 징계 건으로 더불어민주당 안팎이 시끌시끌합니다. 극성 지지자들을 제외하곤 국회의원의 소신 표명까지 원천봉쇄하려는 민주당의 행태에 비판적인 여론이 많아 보입니다. 금 전 의원은 당론이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에 기권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번 금태섭 사태를 지켜보면서 미국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떠올랐습니다. 2018년 세상을 뜬 매케인 상원의원의 생전 별명이 ‘매버릭(maverick)’입니다. 매버릭은 개성이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 다소 안 좋은 의미로는 독불장군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매케인의 경우는 ‘소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실제 매케인은 정치를 하면서 소신을 지켜온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베트남전 참전 전쟁영웅에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와 6선 의원을 거친 미국 보수의 어른이었지만 그의 소신은 오히려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어 더 주목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장면이 숨지기 1년 전인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던 오바마케어 폐지법안에 반대한 일입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전직 오바마 대통령의 대표적 업적을 지우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스키니 리필(skinny repeal)’이라는 법안을 만들어 일단 오바마케어부터 없애려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런데 매케인은 여기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그것도 뇌종양을 앓는 몸으로 3000㎞를 날아와 공화당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당시 법안은 찬성 49표, 반대 51표로 부결됐는데 만약 매케인이 찬성해 가부 동수가 됐다면 공화당은 펜스 부통령의 캐스팅보트 행사를 통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공화당 입장에서는 역적 중의 역적일 법한데 매케인은 시종일관 당당했습니다. “새 건강보험법 입법 없이 오바마케어부터 폐지하자는 공화당의 계획은 국민과 보험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극히 원칙적인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매케인이 매버릭으로 불린 데는 이런 소신 있는 행동이 하나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화당 소속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추진한 감세법안에 반대했고, 민주당의 주요 어젠다인 기후변화 청문회를 주최하기도 했습니다. 또 민주당 소속 진보파인 러스 파인골드 상원의원과 협력해 선거자금 개혁법을 통과시켰고,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는 포괄적 이민개혁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우리의 정당 풍토라면 당장 출당조치를 당할 배신으로 볼 수 있는 행동들입니다. 하지만 미국 유권자들은 그의 소신에 오히려 열광했고, 그의 존재로 인해 공화당이 건강하다는 믿음을 키웠습니다.

사실 우리 정당에도 숨은 매버릭들은 많습니다. 큰 이슈가 터졌을 때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내 생각은 다른데 말이야…” 하면서 조심스레 속삭이는 의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자신의 소신을 공개적으로 내보이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결국 공천이 문제인데, 누군가에게 찍혀 정치생명이 끝나는 걸 무척 경계합니다. 지금 민주당에서는 의원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 누군가가 이른바 ‘문빠’들로 보입니다. 바닥 민심이 가감 없이 반영되지 못하는 우리 정당 민주주의의 한계가 매버릭들의 탄생을 가로막고 있는 셈인데, 이 후진적 풍토 역시 바뀌기를 기대해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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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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