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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2호]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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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봉인 해제된 조봉암 관련 구소련 문서가 던진 질문들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 공판정에 앉아 있는 진보당 사건 피고인들. 맨 왼쪽이 조봉암. photo 연합
1952년과 1956년에 각각 대통령 후보로 나서 그때마다 차점을 기록했던 조봉암 전 진보당 위원장에 대한 구(舊)소련 기밀문서가 러시아 학자 표도르 째르치즈스키(한국명 이휘성) 국민대 선임연구원에 의해 발굴됐고 그 내용이 주간조선(2020년 5월 18일 자)에 게재됐다. 또 조봉암의 처형을 막으려던 미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보여주는 미 국무부의 기밀문서가 째르치즈스키의 동료인 나탈리아 마트바예바에 의해 공개돼 역시 주간조선에 함께 게재됐다. 모두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첫째, 구소련 기밀문서의 내용을 검토하기로 한다.
   
   우선 이 문서를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연방 국가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한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박사는 어떤 사람인가? 1988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역사학, 특히 현대사에 관심을 가졌으며 중학생 때부터 남북한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국립인문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전공한 그는 2011년에 서울로 이주해 2014년 8월에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 화교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2017년 8월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조선인민군의 조직적 특성과 상징체계에 대한 연구: 소련의 유산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간조선 발굴 자료의 의미
   
   물론 한국어에 익숙한 그는 그 이후 북한 전문매체인 NK뉴스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봉직하고 있다. 그가 2018년에 펴낸 ‘김일성 이전의 북한: 1945년 9월 9일 소련군 참전부터 10월 14일 평양 연설까지’(한울플러스)는 이 주제에 관한 개척적 저서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을 지녔기에 이처럼 중요한 문서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째르치즈스키가 발굴한 기록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평양을 방문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면서 소련 내각 부의장 드미트리 폴랸스키가 1968년 9월 12~13일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면서 북한 내각 수상 김일성과 나눈 대화를 담았다. 이 기록에 따르면, 1956년 5월에 실시될 한국의 제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봉암이 자신의 출마 의사를 밝힘과 동시에 조언과 지원을 요청하자 김일성이 당 정치국 회의에서 토론한 뒤 그 요청에 응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조봉암에게 정치자금을 보냈다는 것이다.
   
   째르치즈스키가 공개한 기밀문서는 그가 이제까지 보여준 연구 활동과 실적에 미뤄 진본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김일성의 발언을 당시 회담에 배석해 통역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련 관리가 정확하게 기록했을까 하는 물음은 뒤따를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주석 마오쩌둥의 통역을 맡았던 중국 공산당의 유능한 관리가 자신의 발언을 오역했다고 당시 마오와 회견한 미국의 중국전문가이면서 기자였던 에드거 스노가 훗날 털어놓은 것을 보면 그러한 물음도 한번 제기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 물음에 대해서도 우리는 정확했을 것으로 믿어도 좋을 것이다.
   
   다음 물음은 김일성의 기억이 정확한 것이었느냐의 여부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겸 소련 내각 총리였던 흐루쇼프의 회고록에도 사실과 어긋나게 말한 부분들이 적지 않음을 염두에 둘 때 그러한 물음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김일성은 진보당과 조봉암에 관해 작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게 회상했다. 조봉암이 교수형으로 처형됐는데도 총살됐다고 회상한 것이 그 한 사례다.
   
   
▲ 1968년 9월 12~13일 김일성 당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내각 수상과 방북한 드미트리 폴랸스키 소련 내각 부의장과의 대화를 기록한 구소련 외교문건. photo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조봉암이 김일성에게 지원 요청했느냐가 핵심
   
   그러나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조봉암이 김일성에게 지원을 요청했느냐의 여부 그리고 김일성이 그 요청에 응했느냐의 여부다. 위의 문서에 따르면, 보다 좁혀 말해 위의 문서에 나타난 김일성의 회상에 따르면, 조봉암은 김일성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김일성은 그 요청에 응한 것이 사실이다. 어느 정도 과장은 있었을 수 있으나 최소한 그 사실은 진상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서에 나타난 조봉암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아주 지나칠 정도로 호의적으로 본다면 정치가로서 대담한 시도를 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의 국내외 상황에 비추어 분명히 위험하면서도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며, 조봉암이 ‘간첩’이 아닌데도 ‘간첩’으로 조작해 죽였다는 이른바 법살론(法殺論)을 반박할 수 있는 하나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1959년의 대법원 판결과 거기에 따른 사형집행이 정당했다고 단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당시 검찰의 공소 내용에 구소련의 기밀문서가 기록해 놓은 사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며 자연히 대법원 판결도 이 사실은 다루지 않았다. 검찰은 물론 법원도 이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에 이르게 한 판결이 정당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문명국가 또는 법치국가에서 국민은 누구나 법원에서 입증된 범죄 사실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지 입증되지 않은 추론에 의해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미국의 ‘공모’ 추론에 깊은 의문
   
   둘째, 1989년에 기밀이 해제된 미 국무부의 문서에 대해서다.
   
   이 문서는 미국 정부가 조봉암의 사형선고 이유에 깊은 의문을 품고 처형을 막으려고 백방으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미국 정부가 조봉암을 공산주의자로 의심하고 그의 제거를 위해 공작했다는, 심지어 이승만 정부와 암묵적으로 ‘공모’했다는 국내 일각에서의 추론에 깊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보기로 한다. 이 두 개의 문서만 갖고 일반인이라면 조봉암사건에 대해서 일도양단(一刀兩斷)의 명쾌한 해석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중한 연구자라면 째르치즈스키 박사 스스로 강조했듯, 좀 더 많은 자료를 찾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 북한에서 작성된 관련 문서가 혹시 훗날이라도 발견된다면 우리는 훨씬 더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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