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고(故) 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7월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고(故) 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photo 연합

한국인들은 대체로 자기가 좋아하는 공인(公人)에 대해선 후한 평가를 내리고, 좋아하지 않는 이에 대해선 박한 평가를 내리는 편이다. 나와 사사로운 인연이 있거나 생각이 비슷하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종종 ‘인간적’이고 관용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일 경우 지나치게 ‘엄격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이런 한국인의 성정(性情)이 조선시대 들어 계속된 극심한 당파싸움의 원인 제공자였을 수도 있다. 노론, 소론, 남인, 북인…. 편을 갈라 싸울 때 ‘우리 편’은 온갖 논리와 명분을 끄집어내 철저히 감싸고 옹호하는 반면, ‘저쪽 편’은 철저히 짓밟아 버리는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위인이나 영웅이 별로 없는 것일까.

이런 관점에서 유대 민족의 인물 평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는 다윗왕이나 모세는 사실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대표적으로 다윗왕은 부하 장군의 아내를 탐한 나머지 그 장군을 사지에 빠뜨려 죽게 하고 그녀를 정부(情婦)로 삼았다. 이를 지켜본 자식들 간에 근친상간, 살인, 그리고 아버지를 상대로 한 쿠데타까지 발생한다. 이 패륜적 스토리만 보면 다윗왕은 대표적 인생의 실패자여야 한다.

그러나 그는 21세기인 지금도 전 세계 1500만 유대 민족 제일의 영웅이다. 아무리 옛날이라도 다윗은 간음과 거짓말과 도둑질 등을 금한 십계명 율법을 크게 어긴 범죄자다. 그런데 어떻게? 만약 이순신 장군이나 김구 선생이 이런 악행을 저질렀다면 우리는 영웅으로 받아줄 수 있을까.

25년 전 미국 워싱턴 D.C. 인근 유대인 사회를 취재하면서 만난 유대인 원로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는다. 중요한 것은 죄가 아니라 진정으로 참회하고 유대민족을 위해 얼마나 기여했느냐는 점이다.”

워싱턴 D.C.에서 발간된 유대계 미국 어린이용 도덕 교과서에는 “다윗의 전 생애를 보면 잘한 일이 잘못한 일보다 훨씬 많았고, 진정한 참회를 했으며, 그가 이룩한 성취가 유대민족에 많은 이득을 줬다”고 기술돼 있었다.

여기에는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러나 회개하면 더 큰 성취를 이룩할 수 있다는 긍정적 인간관이 깔려 있다.

특히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인간의 공(功)과 과(過)를 분리해 생각하는 유연성, 그리고 희망과 용서를 통해 인생은 언제든지 반전(反轉)이 가능하다는 그들의 상상력이다. 이 같은 현실주의와 긍정적 사고방식이 유대교를 모태로 한 기독교와 서구 문명이 세계를 풍미하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갈수록 남의 실수나 잘못을 용인하지 않는 각박한 사회로 변해 가고 있다. 우리 4000년 역사 중 가장 역동적이던 건국 후 70년이 도매금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거의 세계 꼴찌 수준이었던 경제력을 세계 10위권대까지 끌어올리고, 민주화도 이룩했으며, 스포츠·문화·IT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톱을 다투는 ‘역동 한국’을 만든 영웅들과 주역 세대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능멸, 매도당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조선시대처럼 어떤 명분과 논리를 끄집어내 죄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전 동서 냉전 시대, 첨예한 남북 대치 상황에선 ‘반공이냐, 용공이냐’가 주요 이슈로 등장했지만 우리나라가 체제 경쟁에서 이긴 이후에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대신 지금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친일이냐 반일이냐’ ‘독재냐 민주냐’ 등이다.

만약 100% 완벽한 인간만이 숭앙받는 사회라면 다윗, 모세(살인죄)는 물론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도 퇴출돼야 한다. 그도 로마군의 총칼 앞에서 스스로 살기 위해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는 ‘배반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J.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호색광,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망나니,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위선자, 처칠은 제국주의자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병든 사회냐 하는 것은 최근 타계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백선엽 예비역 대장에 대한 조문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알 수 있다.

박 전 시장은 일찍이 시민사회운동을 개척, 성공시킨 주인공이며 지난 10년간 서울시장직을 잘 수행해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인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난 4년간 젊은 여비서를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고소가 있자, 다음 날 자살하고 말았다. 문제는 청와대, 정부, 여당 모두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서 서울시민장(葬)으로 장례를 치르고 그를 의인(義人)화하는 모습이다.

참으로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한국 사회 대표적 지도인사의 성추문과 관련, 본인이 해명하거나 용서를 구하거나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사건을 놓고, 이런 식으로 옹호하는 것이 국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합당한 행동인가.

반면 100세 나이로 타계한 ‘한국전쟁 최고 영웅’에 대해선 사실상 청와대, 여당, 정부가 방관하고 있다. 대통령의 조문도 없고 애도의 성명도 없었다. 오히려 관영매체 등을 통해 그를 폄하하는 소리가 높다. 장지도 서울국립현충원이 아니라 대전현충원이 됐지만 그마저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한민국이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이를 지킨 애국자인데도 그의 공(功)은 외면하고 한·일 병합 시절 만주군 장교로 복무했다는 과(過)만 부각해 친일파요 반민족행위자로 비난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 두 사람에 대한 예우(禮遇) 차이는 무엇일까. 1차로는 내 편, 네 편에서 나온 패거리 의식이요, 뿌리 깊은 붕당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우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를 부인하고 싶어 하는 이 사회 좌파 세력들의 뿌리 깊은 시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미국 백악관이 나서서 “1950년대 공산주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백선엽과 영웅들 덕분에 오늘날 번영한 민주공화국이 됐다”는 성명을 발표했겠는가.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임을 인정한다면,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한다면 이렇게 우리의 정체성을 헐뜯는 세력들에 대해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기호나 성향, 철학, 이념의 문제를 넘어 우리 공동체의 생사가 걸린 본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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