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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8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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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하며]어지러운 우리말

정장열  편집장  2020-07-24 오후 12:22:10

중학교 때 야구부 선수였던 같은 반 친구가 쉬는 시간에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본 것이 있었습니다. “낙도가 도대체 어디냐?” 처음에는 무슨 질문인지 몰랐는데, 그 친구는 멍한 제 표정을 보더니 “낙도가 어딘데 자꾸 그곳 아이들한테만 책이랑 학용품을 보내주는 거냐”는 질문을 또 던졌습니다. 그제서야 낙도(落島)의 뜻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질문인 걸 알아챘습니다. 수업을 거의 들어오지 않던 그 친구가 그런 의문을 품을 법하다는 생각으로 나름 친절하게 낙도의 뜻을 설명해준 기억이 납니다.
   
   최근 ‘사흘’이 실검 순위 1위에 올랐다는 뉴스를 보면서 낙도 에피소드가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8월 17일을 정부가 임시공휴일로 정한 후 ‘15~17일 사흘간 연휴’라는 기사가 나오자 난데없이 ‘사흘’의 의미를 두고 논란이 불붙은 모양입니다. “3일인데 4일이라니 오보” “15~17일이 사흘이냐? 나라 잘 돌아간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는군요. 사흘을 ‘4흘’로 버젓이 쓰는 사례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걸 보면 이런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사흘 논란’도 낙도처럼 한자문맹이 빚은 참사의 일종일까 하는 궁금증도 입니다. 실제 사흘이 검색어 1위에 오른 후 “3일이면 삼흘 아닌가” “기사에 어려운 한자어는 쓰지 말자”는 댓글도 등장했다는군요.
   
   한자문맹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들은 이제 거의 고전적 시리즈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야밤도주(야반도주)’ ‘홀홀단신(혈혈단신)’ ‘이억만리(이역만리)’ 등의 정체불명 사자성어는 인터넷 포털에서 어엿하게 표준어 행세를 합니다. 심지어 ‘환골탈태’가 들어간 기사를 검색해보면 ‘환골탈퇴’로 쓴 기사들도 부지기수로 나옵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30~40대들은 한자 공포가 극심하다고 토로합니다. 한문은 6차 교육과정(1992~1997) 때는 선택과목이 됐고, 7차 교육과정(1998~2007) 때는 아예 제2외국어가 됐습니다. 이른바 ‘이해찬 세대’들은 한자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연일 다양한 화제로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추미애 법무장관도 요즘 식자들로부터 ‘한자 무식’ 비판을 받고 있다는군요. 추 장관이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아들 문제를 놓고 야당 의원과 고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온 “질의에는 금도가 있다”는 말이 문제가 됐다는데, 수준이 좀 높습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금도를 지켜라’ ‘금도를 벗어나다’ 등등에서 쓰이는 ‘금도’는 사실 정체불명의 단어입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 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모양인데 국어사전을 보면 금도에는 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여러 금도 중 헷갈리게 사용되는 단어는 아마 금도(襟度)일 겁니다.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은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입니다. 옷깃, 가슴, 마음을 뜻하는 금(襟)이라는 한자와 법도, 정도를 뜻하는 도(度)가 합쳐져 ‘아량’ ‘도량’이라는 단어가 됐다는 설명입니다. 때문에 ‘금도를 지켜라’가 아니라 ‘금도를 보이다’ ‘금도를 베풀다’ 등등이 맞는 용례라는 겁니다.
   
   우리말이 외계어 같은 정체불명의 말들로 오염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쓰는 외계어에는 그나마 우리말을 풍성하게 만든다는 차원에서 최소한의 금도를 보일 수 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배우는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라는 순우리말이 혼돈의 대상이 되는 세태는 좀 충격적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우니 말도 어지러워지는 걸까요.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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