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간호사 격려 글을 읽다가 떠올린 단어가 ‘졸렬(拙劣)’이었습니다. ‘졸렬하다’의 뜻풀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옹졸하고 천하여 서투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 글에서 풍기는 첫 인상이 바로 옹졸함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이 진정으로 고맙다면 그걸 굳이 간호사와 의사로 나눠서 고마움을 표시할 이유가 있을까요.

특히 글에서는 간호사 칭찬만 한 것도 아닙니다. 간호사는 치켜세우고 의사는 깎아내렸습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 것이 이런 구절입니다. “지난 폭염 시기, 옥외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벗지 못하는 의료진들이 쓰러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다. 의료진이라고 표현됐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글은 천박하다는 평가에서도 벗어나기 힘듭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올린 글로서는 격이 낮습니다. 모두를 끌어안고 가야 할 대통령이 어느 한쪽을 배제해버렸습니다. 결국 대통령의 글은 서툽니다. 당장 ‘대통령이 편가르기를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대통령이 글을 올린 다음 날 “어제 대통령님께서 남겨주신 글이 다시금 감정 상태를 악화시킨 것으로 보이고…”라며 격앙된 반응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여름 방호복을 벗지 못한 의료진’ 중 의사가 몇 명, 간호사가 몇 명이라는 수치까지 들이대면서 팩트부터 틀렸다고 화내는 사람까지 나왔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혹평을 두고 ‘순진하다’는 반응도 있을 법합니다. 대통령이 이런 논란을 예상 못 했겠느냐면서 글을 올린 정치적 계산을 순진하게 간과하고 있다는 반응 말입니다. 진짜 간호사가 고마워서 이런 글을 올렸을 리 없다면서 불순한 의도부터 떠올리는 경우일 겁니다.

사실 ‘편가르기’라는 말 자체에 전략, 계산 같은 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미 언론이 지적했듯이 문 대통령과 여당의 편가르기가 한두 번도 아닙니다. 뭔가 큰일이 터지고 궁지에 몰리는 듯하면 편가르기 프레임을 들고나와 세상을 내 편 네 편으로 나눠버립니다. 실제 이번 페이스북 글 역시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정부 여당을 괴롭히는 의사들을 적으로 내몰아 굴복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할지 모릅니다. 이런 전략이 진짜로 먹힌다면 서투름이 아니라 치밀함이 묻어나는 글을 대통령이 쓴 셈입니다.

왜 대통령은 자꾸 편가르기를 할까요. 타고난 성정 탓일까요, 아니면 진짜 정치적 계산 때문일까요. 이번호 ‘런던 통신’에도 400년 전 세상을 적과 아군, 선과 악, 흑과 백으로 나눈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영국의 크롬웰입니다. 영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청교도 공화국 실험을 한 그 역시 세상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눠 혹독한 독재를 펼쳤습니다.

그가 들고나온 잣대는 반가톨릭이었습니다. 이미 영국에 성공회가 정착한 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가톨릭 잔존세력이 판을 친다면서 죽이고, 부수고, 린치를 가했습니다. 더욱이 크롬웰을 무오류의 위인으로 떠받들던 청교도 원두당원들의 행패는 중국 홍위병이나 나치 갈색셔츠단의 원조 격이라 할 만합니다. 이들의 행패가 극에 달했지만 크롬웰은 자신의 결정과 판단이 신의 뜻이라면서 수수방관했습니다. 크롬웰이 들쑤셔놓았던 영국 역사를 읽다 보니 결국 편가르기의 밑바닥에는 자신만이 옳다는 이상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소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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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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