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카투사 출신입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언급한 ‘그 자체가 편한 군대’에서 20대 3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번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문제로 주목받은 카투사 인사과가 제가 근무하던 곳이었습니다. 소속 부대원들의 진급과 휴가, 월급 챙겨주기, 전역 처리가 주 업무였습니다. 얼마 전 추 장관 아들의 변호사가 “카투사 휴가는 미군 규정을 따른다”는 말을 해 논란을 빚었는데 경험상 이 말이 사실과 다르다는 걸 잘 알 수밖에 없습니다.

카투사 인사과 사병계라는 보직을 맡아 처음 배운 일이 매일 아침 일보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전국 예하 부대를 포함해 제가 근무하던 부대의 카투사 정원과 근무 인원, 휴가 인원 등의 숫자 파악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파악해 보고한 숫자는 카투사 최상급 부대인 한국군지원단에서 취합해 다시 육군본부로 통보되는 구조였습니다. 전국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카투사들의 현황이 매일매일 상세하게 파악되는 보고 체계였습니다.

졸병 시절 한국군지원단 사병계 선임이 “너 큰일 났다”며 호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달 넘게 작성한 일보의 숫자가 틀렸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병사들 총계는 맞는데 정원과 근무 인원을 잘못 파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수로 구두 징계를 받아 휴일을 반납하고 완전군장 차림으로 용산 캠프를 뺑뺑이 돌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징계를 내린 한국군지원단 장교가 “서류에 병력 숫자가 잘못 기재된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아느냐”며 혼꾸멍냈던 기억이 납니다. 적어도 제 경험으로는 카투사 병력 관리가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았습니다.

‘편한 군대’라는 우상호 의원의 말도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는 생각입니다. 카투사는 직업군인인 미군처럼 일과 후에는 외출이 자유롭습니다. 특히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외박도 허용됩니다. 한국군이 꿈꿀 수 없는 편한 군대가 맞습니다. 하지만 카투사들이 근무하던 일부 부대는 훈련이 한국군보다 더 빡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2사단 소속 몇몇 부대는 장거리 구보를 하도 많이 해 제대 후 무릎이 성한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유명해진 JSA는 혹독한 군기로도 유명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시절 JSA에서 카투사 병사가 자살하는 불행한 일도 있었습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일로 주목받고 있지만 카투사는 올해로 창설 70주년을 맞는 역사가 꽤 오랜 부대입니다.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병사(Korean Augmentation to the US Army)’라는 명칭의 이 부대는 6·25전쟁의 부산물입니다. 6·25전쟁 초기 존 무초 주한 미국대사가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을 만나 한국 장병 활용을 건의한 것이 계기가 돼 맥아더와 이승만 대통령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1950년 8월 미 2·7·24사단 및 1기병사단에 배치된 313명이 처음 배출된 카투사들입니다.

처음에 카투사는 탄약 등 물자를 나르는 단순한 일에 종사했지만 한국 지리를 잘 모르는 미군을 도우며 역할을 키워나갑니다. 인천상륙작전 말고도 낙동강 지구·장진호·펀치볼 전투, 원산 상륙작전, 혜산진 점령 등에 4만3660명이 참전해 1만1365명이 사망·실종했다는 것이 국가보훈처의 추산입니다. 6·25전쟁 이후에도 한국군이나 미군 모두 효용을 인정해 아직까지 카투사 제도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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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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