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막스플랑크인구통계학연구소라는 곳에서 흥미로운 연구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많이 베풀고 나누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의 수명을 비교한 겁니다. 34개국의 ‘국가 이체 계좌(National Transfer Accounts)’라는 데이터를 사용한 연구인데 결론은 ‘많이 베풀고 나눌수록 오래 산다’입니다.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이 연구의 결론은 ‘사회의 관대함과 평균수명 사이에 강력한 선형관계가 있다’는 겁니다.

많이 나눠서 오래 사는 대표적인 국가가 프랑스와 일본이라고 합니다. 이들 국가의 경우 시민들이 평생 자기 수입의 68~69%를 다른 사람과 나눈다고 합니다. 평생 소득의 44~48%만 재분배되는 중국이나 터키와 비교하면 프랑스와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의 사망 위험은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연구 내용입니다. 프랑스와 일본인의 수명이 상대적으로 긴 것이 진짜 베풂과 나눔의 결과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베풂과 나눔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이 상식이긴 합니다. 서로 주고받는 행위가 행복감을 증대시킨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증명된 바 있습니다. 받은 사람은 직접 혜택을 받아서 기쁘고, 주는 사람은 감정적 만족을 얻어서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의 억만장자가 평생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는 여정을 마쳤다는 기사가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실렸습니다. 면세점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던 찰스 척 피니라는 사람인데 89살인 이 갑부가 기부한 돈이 무려 9조4000억원이라고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가진 재산을 모두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공언해온 그는 40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를 실천해 왔다는데, 그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빈털터리가 됐지만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생전에 목표를 이루게 돼 매우 만족스럽고 좋다. 이번 여행의 동반자들에게 감사하며 내가 진짜 살아 있는 동안 전 재산을 기부할지 궁금해했던 사람들에게는 ‘해봐라, 정말 좋다’고 말하고 싶다.” 이 행복한 갑부가 90살 가까이 산 것도 나눔과 베풂의 결과인지가 궁금해집니다.

우리나라의 베풂과 나눔 지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코로나19 사태가 그나마 있던 우리 사회의 온기마저 앗아가고 있다는 지적과 우려가 자꾸 나옵니다. 다들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주변의 어려움을 살피는 온정과 배려가 식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보육원 같은 곳에서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예년과 달리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고 합니다. 심지어 헌혈 인구가 줄면서 혈액보유량도 부족해졌다고 아우성입니다. 혈액보유량 마지노선인 5일분이 무너진 지자체도 나온 모양입니다.

마감 날 ‘라면 중화상 형제의 비극’이라는 기사가 떴습니다. 인천의 초등학생 형제가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사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라면을 끓여 먹다가 화재로 중태에 빠졌다는 내용입니다. 10살 난 형이 화마 속에서 8살 난 동생을 감싸 안았다는 대목이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들 형제 역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매달 수급비와 자활 근로비 등 160만원가량을 지원받아 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하나둘이 아닐 텐데 코로나19가 경제난과 함께 온정의 사각지대까지 늘리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나눠야 오래 산다는 걸 다들 되새겨야 할 듯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키워드

#마감을 하며
정장열 편집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