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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8호]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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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하며]노벨상 ‘희망고문’

정장열  편집장 

마감날 원로 과학자 한 분이랑 통화를 하는데 대뜸 “벌써 지겹다. 또 철이 돌아온 모양”이라고 푸념하더군요. 무슨 말인지 연유를 물어보니 올해도 어김없이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노벨상 관련 인터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문답의 틀도 매년 거기서 거기랍니다. 올해 한국인 중 혹시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학자들이 있는지, 연구 업적 등을 물어보다가 ‘노벨상 불임국 한국’의 문제를 지적해달라는 것으로 끝난다고 합니다.
   
   이 말대로 10월이 오면 한국인들은 ‘노벨상 희망고문’에 시달리곤 합니다. 한국인 중 수상 후보로 이름이 조금이라도 거론되면 희망의 싹을 틔워 올리다가 결국 왜 한국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느냐는 자탄들이 터져나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거의 매년 거론되는 고은 시인이 ‘희망고문’의 대표 사례입니다. 경기도 그의 자택 앞에는 노벨 문학상 발표가 임박하면 방송사 차량이 진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불발로 끝나면 취재진이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아무래도 관심은 일본이 매년 약방의 감초처럼 상을 타가는 과학 부문입니다. 올해는 모처럼 한국인의 이름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날 저녁 발표되는 노벨 화학상 후보로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현 교수는 ‘QLED TV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노 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입니다.
   
   과학계의 노벨상 수상 후보는 도박사이트가 아니라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라는 과학 정보회사가 논문 피인용 숫자 등을 점수화해 점을 칩니다. 여기서 그동안 노벨 과학상 후보로 거론한 한국인 학자들은 현 교수를 포함해 모두 4명입니다.(한국에서 연구하던 외국인 학자까지 포함하면 5명.) 만약 현 교수가 한국에 사상 첫 노벨 과학상을 안긴다면 코로나19 사태에 짓눌려온 한국에 청량제 같은 희소식이 될 것입니다.(이 글을 마무리하고 인터넷으로 노벨 화학상 발표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봤지만 안타깝게도 현 교수 역시 ‘희망고문’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노벨 과학상 수상이 ‘시간 싸움’이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기초과학에 투자한 시간이 무르익으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의식하는 일본의 그 시간은 엄청나게 깁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과학기술에 투자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70년이 다 돼서야 첫 노벨 과학상을 따냈습니다. 그럼 우리의 시간은 어떨까요. 안타깝지만 우리가 기초과학에 제대로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국가연구개발사업비가 조 단위를 넘어간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라는 게 과학계의 인식입니다. 일본에 비해서는 무려 반세기가 뒤처진 셈입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2조7000억원이었던 국가연구개발사업비는 현재 24조원으로 크게 늘어난 상태입니다. 지난 정부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투자를 늘려온 결과입니다. 물론 국가연구개발사업비는 과학기술뿐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에도 쓰이지만, 이 정도라도 투자를 해야 노벨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실제 한국의 과학기술 투자금액은 GDP 대비로만 따지면 이제 세계 수위권입니다.
   
   주간조선이 장기 연재 중인 ‘과학 연구의 최전선’ 시리즈를 보면 깜짝 놀랄 만한 열정으로 한 우물을 파는 과학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분들 중 누군가가 조만간 ‘희망고문’을 끊어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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