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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1호] 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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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생극장]내가 본 故 이건희 회장의 눈물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jmedia21@naver.com

▲ 고 이건희 회장이 2011년 7월 7일 2018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확정됐다는 발표를 듣고 있다. photo 뉴시스
고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 별세에 대한 집권 여당의 반응을 보면서 ‘참 속 좁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 기업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한국을 1등 국가로 도약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의 소득과 생활수준 향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재계의 거인을 떠나보내면서 한다는 말들이 ‘재벌 폐해’ ‘정경유착’ ‘조세포탈’ 등등이라니….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고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했고, 허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경영권 세습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 등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들은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했다. 나아가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상속세 문제와 관련해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서 더 이상 꼼수, 편법은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인가? 사람을 떠나보낼 때는 일단 공과를 덮고 애도하는 게 상식이자 도리다. 나는 민주당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 앞에서 보여준 행태를 잘 기억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안타깝긴 했지만 개인적 비리 문제에 부닥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다. 민주당 사람들은 앞장서서 노무현씨는 국민장, 박원순씨는 서울특별시장으로 성대하게 모셨다.
   
   반면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을 120% 성취하고 저세상으로 간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덕담 대신 질책, 그리고 쓸쓸한 가족장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좁은 땅덩어리에서 생긴 당파적·이념적 습속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건희 특별 사면복권이 있기까지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선명한 추억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이었다. 그룹 임원과 기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한 이야기나, 삼성 가전제품들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당시 신문사 사건팀장이던 나는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굳이 그래야 하나’….
   
   이듬해인 1994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연수할 때 들러본 전자매장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당시 1등급 가전제품은 일제가 휩쓸고 있었다. 2등이 미국, 유럽 제품들이었다. 한국 제품은 이름 모를 중남미 제품들과 함께 3등칸에 있었다. 그래도 난 반갑고 신기했었다. 왜냐하면 ‘메이드 인 코리아’가 인쇄된 티셔츠, 운동모자, 앨범 등을 보며 놀라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1987년)이었으니까. 그러던 한국의 제품이 21세기 들어 일본의 소니, 파나소닉을 비롯 일류기업들을 모두 따라잡고 세계 최고 기업이 되다니. 나는 경의의 눈으로 삼성, 이건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회장과의 인연은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비서관으로 근무할 때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대통령은 출범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다. 하계올림픽(1988), 월드컵축구(2002) 유치에 이은 3관왕 도전이었다. 이것을 성사시키려면 120명 되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들의 표심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우리 입지는 매우 불리했다. 우리 IOC 위원은 태권도 선수 출신인 문대성(전 새누리당 의원) 한 명뿐이었다. 이건희 회장도 IOC 위원이나,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으로 재판 중이라 자격이 정지된 상태였다.
   
   당시 라이벌 도시인 독일 뮌헨의 유치를 주도하는 이가 IOC 내 거물인 토마스 바흐 수석 부위원장(현 IOC 위원장)이었다. 동계올림픽은 철저히 백인(白人)들의 스포츠였다. 총 21번 가운데 19번이 북미·유럽 지역에서, 나머지 2번이 일본에서 열려 한국은 명함을 내밀 처지가 되지 못했다. 이미 노무현 정권 때 두 번 유치하려다 실패했었다. 이런 악조건하에서 관건은 이건희 회장의 복귀 여부였다. 그가 복귀하면 해볼 만한 승부고, 그렇지 않다면 승산은 없었다. 복귀하려면 이 회장의 재판이 끝나고 사면이 돼야만 했다. 그러나 열쇠를 쥔 청와대나 문체부 누구도 먼저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삼성을 비호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1년 전 김용철 변호사 사건의 악몽이 깊은 상황이었다.
   
   아마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는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답답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면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는 당시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상의를 한 뒤 주무비서관으로서 총대를 메기로 했다.
   
   
   이건희 복귀로 급물살 탄 유치작전
   
   동계올림픽 유치위가 나서서 이 회장 사면 여론을 적극 조성하고, 여론이 크게 호응한다면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사면 조치를 취하자는 전략이었다. 나는 즉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조양호·김진선 공동위원장과 만나 여론 조성을 권유했다. 먼저 김진선 강원지사가 11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건희 IOC 위원의 사면복권을 건의한 데 이어 조양호 위원장(11월 19일),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11월 20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11월 24일) 등이 잇따랐다. 언론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한 달여 뒤 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이 회장 한 사람만 특별 사면복권을 했다.
   
   이렇게 해서 2010년 이 회장이 IOC 위원으로 복귀하면서 유치작전은 급물살을 탔다. 둘째사위 김재열(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과 함께 지구촌을 몇 바퀴 돌며 IOC 위원들을 만나 설득에 나섰다. 그때 나는 5대양 6대주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삼성의 네트워크와 영향력, 그리고 이 회장의 위상을 보고 놀랐다. 정말 이 회장은 황소처럼 뛰어다녔다. 그리고 2011년 7월 IOC 위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평창 유치가 확정되었을 때 이건희 회장이 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영광은 잠시였다. 이후 이 회장은 이런저런 구설로 계속 힘든 나날을 보냈고 결국 2014년 쓰러져 혼수상태로 지내야만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총지휘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건희 회장을 사면한 대가로 수십억원의 변호사비를 삼성으로 하여금 대납하게 했다는, 이해할 수 없는 혐의로 재판 중이다. 그렇게 애써 유치한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에 따른 득(得)은 다른 사람들이 받고….
   
   이런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오늘 이건희 전 회장의 장례 뉴스를 보면서 며칠 전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남긴 애도 글을 다시 읽어본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기셨습니다.… 삼성은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오, 영리하고 친절한 낙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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