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다 흥미롭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쉽게 갈리는 뻔한 승부도 그 의미를 곱씹어 볼 만하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럴 경우 민심이 무섭다는 말이 항상 따라붙습니다.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선거의 흥미진진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번주 펼쳐진 2020 미국 대선은 근래 보기 드문 진검 승부였습니다. 눈을 잠시 돌리면 승부의 추가 다른 쪽으로 가 있곤 해서 개표 통계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번호 주간조선 커버스토리도 오락가락했습니다. ‘분열된 미국’을 생각하다가 ‘트럼프의 역전’이 치고들어왔고 하루 자고 나서 결국은 ‘바이든의 승리’로 결론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네바다와 조지아 등 막판 스윙스테이트의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여서 트럼프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조마조마함이 완전히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역전극이 한창 펼쳐질 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코로나19를 이겼다’는 분석이 나오더군요.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보였습니다. 트럼프가 내걸었던 ‘아메리카 퍼스트’와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 등의 구호가 그의 폭정과 코로나19 방역 실패를 밀어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먹고사는 문제가 선거의 가장 중요한 이슈라는 건 상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결국 바이든을 선택했습니다. 다른 나라 눈으로는 무척 괴상해 보이는 승자독식 룰에 따라 기어이 대통령을 바꿔버렸습니다. ‘트럼프는 도저히 안 된다’는 표심이 모든 걸 눌러버릴 만큼 강했다고 여겨집니다. 트럼프의 퇴장을 상식의 복귀, 정치의 정상화로 보는 시각도 꽤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했던 한 대학교수는 “트럼프라는 인물 자체가 미국 백인들이 속으로 품고 있던 인종차별이라는 사악함을 타고 돌출한 인물”이라는 평가까지 하더군요.

이번 대선 투표율은 1990년대 이후 최고치인 66.9%를 기록했습니다. 전체 유권자 2억4000만명 중 1억6000만명이 투표장으로 나온 겁니다. 결국 ‘트럼프를 참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다 뛰쳐나왔고, 반대로 여기에 맞서는 친(親)트럼프 표도 다 결집했다고 봐야 합니다. 바이든과 트럼프가 모두 역사적인 득표로 1, 2위를 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고령인 데다 이렇다 할 개인적인 매력은 찾아보기 힘든 바이든은 이런 반(反)트럼프 민심을 타고 승기를 잡았습니다. 어찌 보면 민심의 역풍을 뚫고 바이든을 근사치로 따라잡은 트럼프의 개인기가 더 돋보이기도 합니다. 바이든이 최종 승자가 되더라도 분열을 치유하고 미국을 다시 통합해내려면 트럼프를 갈구하던 민심 역시 품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과제로 보입니다.

미국 대선 개표 과정을 시내 한 식당에서 지인들과 TV로 지켜봤습니다. 제가 앉았던 테이블이나 주변 테이블 모두 결국 화제는 2022년 한국의 대선으로 흐르더군요. “미국 대선처럼 저렇게 흥미진진한 선거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를 누군가 묻자 다들 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2022년에 뻔한 승부가 나야 한다는 것인지, 흥미진진해야 한다는 건지 생각들이 복잡해 보였습니다. 확실해 보이는 건 미국과 같은 분열상이 지속되면 우리도 투표장으로 몰려나오는 사람이 엄청 많아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분노는 어디를 향할지, 그때 민심의 저변에는 뭐가 흐르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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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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