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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3호]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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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생극장]47.7%, 트럼프 지지율의 의미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jmedia21@naver.com

▲ 지난 11월 8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트럼프 지지 집회. photo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예상대로’ 패배했다. 막상 투표함을 열면 트럼프의 ‘숨은 지지층(Shy Trumpers)’이 나와 승리할 것이라는 트럼프 지지층의 희망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번 선거에서 미국인 거의 절반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1월 8일 CNN 집계에 따르면 이날까지 바이든 당선인이 최소 7535만표(50.5%)를 획득했지만, 트럼프도 7110만8303표(47.7%)를 얻었다. 트럼프는 비록 패자(敗者)이지만 역대 가장 많은 표를 받고 떨어진 인물이 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4년 전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전 세계가 놀랐었다. 미국의 당파적 이익과 무관한 사람들이 보기에도 과격하고 편협하고 돈을 밝히며 사생활도 난잡한 그런 사람이 어떻게 당선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후 4년간 재임하면서 트럼프는 예상보다 훨씬 더 미국 대통령의 권위와 신망을 실추시키고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의 지지는 여전하다니….
   
   그의 굳건한 지지층은 이른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 불리는 백인·개신교(프로테스탄트)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미국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청교도혁명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근검 성실과 자조 자립을 모토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의 후손이다. 다만 트럼프 지지세력은 지역·계층적으로 볼 때 대도시의 성공한 엘리트 백인보다는 농촌·공장 지대의 중·하류 백인들이 더 많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하지만, 미국 주류 언론을 비롯해 반대편에서는 그를 ‘인간 말종’ 내지 ‘악마’ 같은 이로 취급했다. 그렇다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 인구의 절반 가까운 백인 보수세력은 ‘악마’의 추종자 내지 후원세력이란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사고에 깊이 박혀 있는 두 가지 문제점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확증편향(確證偏向·Confirmation Bias)’이다.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쉽게 말해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바로 거기서 인간사 온갖 오해, 갈등, 문제점들이 발생한다.
   
   트럼프를 비판하는 쪽은 오로지 트럼프의 단점만 보고 극대화시킨다. 그래서 트럼프는 ‘괴물’이 된다. 그 같은 사고편향성은 결국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근저(根底)을 제대로 읽는 데 실패한다.
   
   마찬가지로 트럼프를 영웅처럼 보는 지지세력은 트럼프가 가진 저열하고 천박한 성격을 외면한다. 트위터를 비롯 그의 온갖 글과 언행이 비수처럼 많은 이에게 내상을 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따라서 양쪽은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영원한 평행선처럼 마주 보며 으르렁댈 뿐이다. 여기서 독선, 시기심, 미움, 분노 등 악(惡)이 활개 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인간 사고가 가지고 있는 다른 문제점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다.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Holocaust)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보고 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재판을 해보니 학살을 집행한 사람들이 놀랍게도 광신도나 성격파탄자들이 아니라,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인간 누구나 주어진 여건에 따라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시 미국 대선으로 돌아가자. 한 가지 분명한 사실(fact)은 존재한다. 옳든 그르든 간에 미국민 절반 정도는 유색인종, 가난한 이민자, 그리고 이교도(이슬람) 등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날로 옹색해지는 미국 경제사정도 한몫을 한다. 괜히 세계의 맏형 노릇을 하며 국제사회에서 폼 잡는 대가로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호구’ 노릇을 하는 외교정책도 못마땅하고, 성 평등·낙태·동성애자 옹호 등의 리버럴한 사회 풍조에 대해서도 전통 기독교 윤리 차원에서 비판한다.
   
   트럼프는 아주 영리하게 그들의 마음을 읽고 거기에 맞는 정책과 발언을 통해서 대통령이 됐던 사람일 뿐이다. 만약 트럼프가 없었다면 제2, 제3의 트럼프가 나오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들에게 트럼프는 ‘로빈 후드’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미국인의 이런 마음속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인이든 아니든, 교양인이든 아니든,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인간에겐 잘살고 싶은 욕망과 탐욕이 존재한다. 그것이 안 이뤄지면 시기, 미움, 분노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여기서 악이 활개 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이에 따라 ‘악의 평범성’은 그 존재 의미를 찾는다.
   
   사실 선인이냐, 악인이냐는 구분은 무의미하다. 남 쳐다볼 것 없이 내 마음속에 이미 선악이 존재하고 있다. 그 씨앗이 발아돼 어떻게 번성하느냐는 것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선한 나라, 악한 나라 구분도 실은 무의미하다. 지금은 ‘인권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과거 행적이 어떠했는지, 또 지난 100년간 세계사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소련 등 공산주의 국가나 독재국가의 전례를 봐도 말이다.
   
   그중에서도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켜 600만명의 유대인을 죽이고 전 세계를 파멸의 도가니로 몬 장본인 히틀러는 정녕 악인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그의 광기 역시 독일 국민들의 열화 같은 지지 속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그런 차원에서 지금 우리나라 상황을 보자. 극도로 갈라진 보수·진보 진영은 서로를 절대악으로 보고 있다. 양편은 모두 확증편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를 악으로 모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문재인·노무현 측을 나라 팔아먹을 세력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트럼프가 미국인들의 심리를 꿰뚫고 내 편과 네 편, 아군과 적군으로 몰며 지지세력을 끌어모으고 확대 재생산하듯이, 문재인 대통령도 가진 자와 안 가진 자, 산업화와 민주화, 통일과 반통일, 친일과 반일 등등으로 나누며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 지지도는 40% 이상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서로 마냥 손가락질만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닐 성싶다. 미국의 분열 그 근저에 소외감과 분노가 있고 그것이 연대감으로 변해 가듯이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아마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누가 대통령이 돼도 비슷한 상황이 초래되지 않았을까.
   
   이때 우리가 현명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첫째, 나의 확증편향성에 대한 의심이다. 즉 ‘그’가 악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다.
   
   둘째, 악의 평범성에 대한 재고(再考)다. 즉 ‘내’가 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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