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함영준의 인생극장]  내가 만난 아시아 지도자들과 문 대통령
  • facebook네이버 밴드youtubekakao 플러스친구
  • 검색
  1. 오피니언
[2635호] 2020.11.30
관련 연재물

[함영준의 인생극장]내가 만난 아시아 지도자들과 문 대통령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jmedia21@naver.com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 22일 청와대에서 2020년 G20 화상 정상회의(2일 차)에 참석해 제2세션의 주제인 ‘포용적·지속가능·복원력 있는 미래’와 관련한 의제 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인생을 살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보는 경험을 누렸다. 기자, 청와대 비서관, 공기업 임원, 대학교수 등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또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위로는 대통령, 총리, 권세가, 부자, 명망가에서부터 아래로는 사기꾼, 살인자, 조폭, 홈리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형을 접했다. 그래서인지 사람 보는 안목에서 비교적 크게 실패하거나 잘못 보지는 않았다고 자부한다. 대부분 내가 보고 느낀 대로 (그 사람은) 행동하고 처신하고 살아갔다.
   
   물론 사람에 대한 판단을 그르칠 때도 있다. 대개 내가 감정이나 욕망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판단할 때다. 즉 내가 간절히 원하는 욕망이 있고, 상대방이 그 바람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내 눈에 ‘콩깍지’가 씌기 쉽다. 아니면 극히 개인적인 관계, 예컨대 가족, 친구, 연인 또는 경쟁자 등일 경우 판단이 자주 흔들리게 된다.
   
   사람 판단에 어느 정도 자신을 갖는 데는 오랜 기자생활을 통한 직업상 경험이 큰 몫을 했다. 요즘 기자에 대해 말이 많지만 원래 기자란 이권이나 ‘내 편 네 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진실(truth)과 공익(公益)이란 관점에서 냉철하게 시시비비를 따져야 하는 직업이다. 최근 뒤숭숭한 시국을 보면서 과거 내가 만나본 국가 지도자들 중 인상 깊었던 두 명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교 분석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지난 2월 스스로 물러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맛(95) 전 총리다. 그는 1981년부터 지금까지 총 24년간 총리를 지냈다. 나는 그가 21년째 총리를 하던 2000년에 만났는데 대단한 친한파였다. 이승만이나 박정희식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거치지 않았더라면 한국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겠느냐며 개발독재를 옹호했다. “사실 국민 원성을 들으며 죽을 때까지 권좌를 유지하고 싶은 지도자는 별로 없다고 봅니다. 은퇴한 뒤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죠. 문제는 퇴임 후 정치보복이에요. 알다시피 신생국 지도자들은 손에 흙을 묻히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는 1996년 ‘역사 바로세우기’ 명목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것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답변에 군더더기가 없고 솔직했다. ‘수상이 된 외과의사’라는 회고록 제목이 말해주듯 외과의사답게 명확하게 병(현실)을 진단하고 환부에 메스를 댔으며, 올바른 처방을 통해 말레이시아를 개혁과 발전으로 이끌었다. 두루뭉술하거나 추상적 해법인 ‘말의 성찬’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 번째는 사실상 1987년부터 지금까지 34년째 캄보디아를 강권통치하고 있는 훈 센(74) 총리이다. 1998년 만났을 때 그는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고, 두 손으로 공손히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날 총리관저에는 일본의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NHK 등 유수 언론이 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훈 센은 나와 먼저 인터뷰를 했다.
   
   “일본은 이미 캄보디아에 6억달러를 지원해준 고마운 나라인데 고작 200만달러 지원해준 한국 기자를 왜 먼저 만나주셨습니까?”
   
   의외로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일본은 과거부터 대국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1945년 독립할 때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약소국가였습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경제발전도, 민주주의도 이룩한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지구촌 약소국가들의 롤모델 같은 나라인 한국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수억, 수십억달러보다 더 값진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내내 의자에 기대지 않고 꼿꼿이 허리를 편 공손한 상태로 기자를 응대하는 ‘독재자’ 훈 센의 이 말을 듣고 나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물었다.
   
   “왜 마하티르와 함께 동남아 국가에서 대표적인 반미(反美) 지도자로 꼽힙니까?”
   
   그는 싱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결코 이념주의자도 아니고 좌파나 우파도 아니고, 친미나 반미도 아닙니다. 실용주의자일 뿐입니다. 지금 제 아들이 미국 육사(웨스트포인트)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는 대단한 전술·전략의 소유자였다. 인터뷰한 이후 22년이 지났는데도 그는 여전히 캄보디아의 최고 통치자다. 내가 이 두 지도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이념(추상적 이상주의자)이 아닌 실용성(구체적 현실주의자), 명확한 견해와 솔직한 태도, 긍정적 한국관 등 세 가지였다.
   
   내가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노무현 정권 들어서 2개월여 지난 2003년 5월이었다. 그때 노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고 매우 어수선한 시절이었는데 당시 민정수석이던 그는 공권력이 관용적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과거 우리나라는 기회주의, 불의, 친일파, 군부독재가 득세하면서 공권력이 정당하게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는 공권력 행사를 자제하고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한국 현대사는 반칙과 특권과 불의의 역사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문 수석이 1960~1970년대 대학가 민주화 세력의 역사관·인식·담론에 철저히 머물러 있는 ‘운동권 범생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학생→운동권→고시준비생→변호사 경력이 전부이던 당시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진짜 세상물정에는 어두운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인터뷰 내용을 얼마 뒤 칼럼을 통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날 대담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내 머릿속에는 앞으로 노 정권,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상황이 평탄치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현실을 보는 시각, 대처방법, 장래에 대한 전망이 일견 낭만적이고 유연하며 선의가 충만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내게는 나이브(naive)하고 미성숙됐으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주간조선 2003년 12월 4일 자 ‘관용적 공권력의 희생양’)
   
   이후 17년이 지났고 당시 문재인 수석이 대통령이 된 지도 3년7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어떤 모습일까. 좌파 언론인 홍세화씨가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이란 칼럼에서 밝혔듯이 그는 대선 전 국민과 수시로 만나고 언론과 소통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직접 기자와 브리핑이나 간담회를 가진 것은 고작 6회에 불과했다.(김대중·노무현 150회, 이명박 20회, 박근혜 5회) 지금 부동산 문제로 들끓는데도 그는 오히려 부동산 문제가 잘 안정되고 있다고 하고, 1년 전 ‘국민과의 대화’에선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했다.
   
   중요한 나라 상황 고비 고비마다 보여주는 문 대통령의 침묵, 또는 유체이탈적 언행, 그리고 참으로 우려되는 현실 인식 판단 능력을 홍씨조차 지적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 내가 만난 아시아 지도자의 모습을 오버랩해 본다. 과연 문 대통령은 이들이 보여준 △구체적 실용성 △명확한 견해와 솔직한 태도 △긍정적 한국관 등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