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이켜보면 지난 1월 하와이로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당시 30년 근속 안식 휴가를 받아 큰 맘 먹고 가족들과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는 멀리서 들리는 풍문에 불과했습니다. 중국 우한에서 이상한 전염병이 돈다니까 중국 사람들을 조심하자고 우스갯소리 정도로 얘기했습니다.

다행히 하와이에는 중국 관광객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행객 중 지금처럼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더욱 못 봤습니다. 하와이에서 제가 들렀던 그림 같은 카우아이섬이 전염병 도피처가 될지 그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난 9월 주간조선 할리우드 통신에 등장한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은 카우아이섬의 자택에서 가진 영상 인터뷰에서 “지난 3월 하순 런던에서 영화 ‘신데렐라’를 찍다가 코로나19를 피해 가족과 함께 낙원과도 같은 이곳에 와서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카우아이섬에서는 얼마 전까지 코로나19 전염을 우려해 외지인의 방문을 아예 틀어막았다고 합니다.

제가 해외 여행을 갔다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첫 코로나19 환자가 보고된 지난해 12월 31일 이후 11개월 만에 코로나19 전 세계 누적 확진자수는 60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지구상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피할 곳은 별로 보이질 않습니다. 카우아이섬도 지금은 사람들의 출입을 막지 못한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가 남극뿐이라고 얘기합니다. 감기 바이러스도 살지 못하는 추운 남극만이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피난처라는 겁니다. 이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구의 정복자처럼 인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코로나19라는 정복자의 위세에 눌려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꺼립니다.

2020년 한 해가 훗날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요. 아마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와 인간이 싸운 해라고 첫머리에 기록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외의 숱한 인간사는 밖으로 밀려나든지, 작게 몇 줄로 처리될 듯싶습니다. 이번호 주간조선 송년호를 마감하면서 올 한 해 국내 뉴스를 장식했던 사진들을 추려 보니 역시 예년처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성추행 의혹을 받던 서울시장의 자살과 우리 사회의 막장을 들춰낸 n번방 사태,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호자가 착취자로 고발된 윤미향 사건 등 우리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를 장식하는 첫 번째 뉴스는 역시 코로나19로 정했습니다. 세밑을 강타한 코로나19의 위세에 안타깝게도 정부가 자랑하던 K방역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중입니다. 일상을 위협하는 코로나19의 위세는 아마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쉽게 꺾이지 않을 기세입니다. 2020년 한 해를 보내며 많은 사람의 속을 태우는 것은 게임 체인저라고 불리는 백신의 부재입니다. 2021년 한 해 역시 백신의 부재 속에 코로나19에 계속 시달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우울함을 더합니다.

전문가들도 2021년이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2021년이 ‘시험대의 해’이자 ‘전환점의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위기를 변화와 기회로 돌리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그 과정에서 백신 쟁탈전이 벌어지는 등 나라별로 명암이 엇갈릴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대한민국도 2021년이 반전의 한 해가 될 수 있을까요.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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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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