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확보에 사실상 실패한 정부를 향한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이 뭔가 해명을 할 때마다 비판 여론에 기름을 끼얹는 모양새입니다. 백신을 일찌감치 넉넉하게 확보해서 이미 접종을 시작하는 나라들에 우리가 끼지 못했다는 단 한 가지 사실이 정부의 여러 변명과 항변을 다 궁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백신 확보를 게을리한 정부 관계자들을 질책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리더십이 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대통령은 “그간 백신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지시를 몇 번이나 했는데, 여태 진척이 없다가 이런 상황까지 만들었느냐”는 취지로 참모들을 질책했다는데 좀 어리둥절합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원전까지 신속하게 폐쇄하는 공무원들이 대통령의 지시를 여러 차례 어겼다고는 도저히 믿기질 않습니다. 결국 대통령의 지시가 잘못됐거나, 필요할 때 지시가 없었다는 쪽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질책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책임의식 부재가 느껴집니다.

막스 베버는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잣대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라는 두 가지 대조적인 개념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이현우 교수의 설명을 빌리자면 이런 차이입니다. “신념윤리에 집착한 정치인은 신념의 실현 그 자체에만 가치를 두기 때문에 신념 실현의 결과가 처음 의도와 다를 때는 그 책임을 어리석은 세상 탓으로 돌린다. 따라서 대중의 어리석음을 뿌리 뽑아야 하는 과제가 생긴다. 반면에 책임윤리에 충실한 정치인은 이념과 가치 실현도 중요하지만, 타협적이고 현실적 결과를 만들어 내고 결과에 책임지는 태도를 보인다.”

이 교수는 “베버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책임윤리를 망각하는 순간 정치인의 신념은 이미 ‘좌절된 신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책임윤리에 우선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합니다. 짐작하시다시피 지금 우리의 불행과 우려는 책임윤리보다는 신념윤리를 앞세우는 지도자로부터 비롯됐을지 모릅니다.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의 최고 덕목은 공감을 앞세운 설득 능력입니다. 물론 여기서 설득 대상은 자신에 대한 지지자뿐 아니라 반대자까지 포함됩니다. 하지만 신념윤리만 앞세우는 지도자는 지지자들을 동원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만 집중합니다. 반대 의견을 가진 집단까지 설득해 지지하도록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러한 통합의 리더십, 설득의 리더십의 요체가 바로 공감과 책임윤리라는 게 막스 베버 읽기의 핵심입니다. 다시 이현우 교수의 주장을 빌리자면 우리는 책임윤리가 부족한 리더십, 구시대 유물 같은 리더십을 따라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 교수는 “현재 문 대통령의 리더십은 책임윤리는 없이 신념윤리만 내세우고, 반대자에 대한 설득 대신 지지자 결속을 통해 정권 유지를 꾀하는 독선적 리더십”이라고 진단합니다.

2021년 새해는 또다시 ‘정치의 해’입니다. 4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승패가 판가름 나면 정치권은 바로 2022년 대선을 향해 달려갈 겁니다. 이 정권 들어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든지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현실적인 정치 일정표상 우리는 또다시 제왕적 대통령을 뽑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2021년은 제대로 된 리더십을 찾아나서는 첫해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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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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