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복학생 시절 중국어 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군생활 하면서 다 까먹은 전공필수 중국어를 다시 익히기 위해서였는데 그때만 해도 중국어 학습이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게 중국어를 가르쳤던 분은 상하이에서 건축설계사로 일하다가 한국에 온 조선족 출신이었습니다. 한국 물정에 어두웠던 이분은 수업 중간중간 담배를 피워 물고 저와 한국 속사정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답하길 즐겼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어느 날 “말세”라면서 혀를 끌끌 차더군요. 사정인즉슨 서울 강남에 들렀다가 개 미용실을 봤다는 겁니다. 이 양반은 “개 털 깎는 데 어떻게 그렇게 돈을 막 쓰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진짜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침대에서 주인과 같이 잠을 자는 반려견들이 적었을 테고, 개인주택의 마당을 지키는 개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개 미용실도 그렇게 흔하지 않았을 겁니다.

중국인 선생과 개를 둘러싸고 나눈 그때의 대화는 서로의 인식 차를 드러냈습니다. 그분이 개를 보는 시선에는 평생을 같이하는 ‘반려’의 대상보다는 ‘먹을 것’이라는 쪽에 더 방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어릴 때 마당에서 개를 키웠고 당시만 해도 개고기라고는 먹어본 적이 없던 저로서는 꽤 충격이었습니다. 나중에 이분의 고향인 옌볜에 가서 ‘개장국’ 집이 즐비한 광경을 보고 나서야 그 선생의 한탄이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그때와 비교하면 아마 한국의 반려견 산업은 수백 배 성장했을 겁니다. 개를 아끼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제 애완견이라는 말도 쓰지 않습니다. 애완이라는 말 자체가 개를 장난감 정도로 여기는 사람 중심의 잘못된 용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TV를 켜기만 하면 반려견을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넘쳐나고, 집 밖으로 산책만 나가도 자식 대우를 받는 반려견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은 약 511만가구라고 합니다. 이는 전체 가구의 23.7%라는데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3분의 1 수준입니다. 미국은 69%, 영국은 68%, 일본은 66%가 반려견을 키운다니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실로 견공들의 나라입니다. 지금 추세로는 우리 역시 이들 선진국 수준으로까지 반려견 양육 가정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함께 반려견은 명실상부한 산업의 대열에 오를 것으로 여겨집니다. 반려견 산업에는 대기업들도 속속 뛰어들고 있는데 펫숍이나 반려견 미용실, 장례업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과 벌써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이들 소상공인들은 반려견 산업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반려동물 업무를 관장하는 농림축산식품부 대신 중소벤처기업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담 부서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도 하고 있습니다.

이번주 커버스토리 ‘동물판 n번방’ 기사를 보셨는지요. 이성진 기자가 취재한 이 기사는 반려동물 세상이라는 요즘 세태에 비춰보면 진짜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대상이 사람에서 동물로 바뀌었을 뿐, 작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n번방 사건의 복사판으로도 보입니다. 사람들이 애정을 쏟아붓는 반려동물들이 활보하는 세상에서 동물을 상대로 한 가혹 행위를 즐기는 사람들은 분명 위험한 일탈자들입니다. 이들의 잔혹한 놀이터가 더 위험한 이유는 죄의식을 못 느끼는 이들의 행동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사람이 안전한 세상이 되려면 진짜 동물부터 안전해져야 할지 모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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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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